코로나19 팬데믹 선언으로 세계 경기 급격히 위축
금융정책과 함께 대규모 재정정책 시행 서둘러야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으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모두 크게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수요 감소와 생산 중단, 소비 위축과 교역 제한 등 실물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글로벌 증시 또한 경제위기 수준의 경기 침체가 예상됨에 따라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주 미국의 다우 산업지수는 고점 대비 30% 떨어졌으며, 아시아와 유럽 증시도 매일 4~5% 대 폭락을 이어갔다. 우리나라 증시도 지난주 3번의 블랙 데이 악몽을 겪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전형적인 패닉(공황) 상태라 진단하면서, 코로나19의 진행에 따라 상황은 현재보다 더 악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만 해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중국 제조업의 생산 차질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겠지만, 여름이 오기 전에 회복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했다. 하지만 WHO의 팬데믹 선언과 함께 각국이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각국이 경쟁적으로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하면서부터 비관적인 전망이 득세하고 있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가 가장 먼저 비관적인 전망치를 내 놓았다. BI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경우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0.1%에 그치고,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마이너스 성장을 불가피하고 전망했다. 애초 BI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1%로 예상했던 점을 감안하면 전 세계 GDP의 3%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전망은 더 암울하다. 연구소에서 발표한 ‘코로나19의 글로벌 거시경제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팬데믹 상황별로 올해 세계 GDP가 최소 2조3300억 달러, 최대 9조1700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대 감소치의 경우 세계 GDP의 약 10%가 줄어든다는 것인데, 코로나19 사망자 증가에 따른 인력 감소, 이동 제한으로 인한 소비 위축, 제조 시설의 가동 중단에 따른 공급망 붕괴 등을 경기 하락의 근거로 들고 있다. 이른바 ‘D의 공포’의 그림자가 세계 경제를 뒤덮고 있는 형국이다.

‘D의 공포’에 대비해 각국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데,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미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긴급 대응책으로 '제로금리'(0%)와 700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 카드를 꺼냈고, 한국과 일본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도 글로벌 공조에 나섰다. 연준은 지난 3일 기준금리를 0.5%p 내린데 이어 이날도 1%포인트를 추가로 인하해 금리를 0.00%∼0.25%까지 떨어뜨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미국 연준과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제로금리·양적완화라는 긴급 처방전을 발표한 그날 유럽과 미국의 증시는 일제히 10% 대 폭락했다. 연준이 내놓은 통화정책은 완전히 실패한 것 같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첫째, 코로나19 사태가 정점에 도달하지 않아 앞으로 경제가 얼마나 더 나빠질지 가늠이 안 되기 때문에 연준의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금리가 충분히 낮은 상태에서 제로금리까지 내린다고 해도 시장은 유동성함정에 빠져있기 때문에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정책과 함께 경기부양을 위한 대규모 재정정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도 미 연준이 금리 인하를 발표한 16일 오후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연 1.25%였던 기준금리를 0.75%로 내렸다. 인하 폭은 0.5%포인트로 2009년 2월 이후 가장 컸다. 하지만 시장에서 0.5% 금리인하가 충분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달 금통위가 금리인하 카드를 아낀 것이 다음에 더 강력한 인하 조치를 취하게 위한 전략이었다면, 이번에 기준금리를 최소 0.75% 인하해 놓고 뒤이어 나올 재정정책을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사실 금융정책 카드는 모두 다 사용했다. 이제는 대규모 재정정책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대한상의는 이전부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와 함께 감세·추경 확대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대한상의는 정부가 편성한 11조7000억 원의 추경으로는 산업계 피해를 지원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제를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40조원 규모로 추경을 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 8일 브리핑에서 “모든 국민에게 재난 기본소득 100만원을 일시적으로 지원하자”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지급 대상과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재난기본소득 지급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이 얼핏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낮선 정책은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J.M Keyens)는 1930년대 대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덩이 파기’를 예로 들면서 정부가 공공사업이나 복지사업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하고 가계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는 보수주의 경제학자인 맨큐(Gregory Mankiw) 하버드대 교수도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한 그의 생각을 제시하면서 감세보다는 “모든 미국인에게 1000달러(약 120만원) 수표를 최대한 빨리 보내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다.

금융정책의 효과가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고 대규모 재정정책에 기대야 하는 현 상황은 1987년, 1997년, 2008년 경제위기보다 1930년대 대공황의 모습에 더 가깝다. 최근 몇몇 경제위기는 금융부문이 먼저 붕괴되었던 반면 지금은 실물경제가 먼저 붕괴되고 뒤이어 금융시장이 타격을 받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경제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극복하는 방안도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케인즈 경제학은 1970년대 이후 발생한 경제위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주류 경제학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가 대불황 시대와 닮아 있다면 ‘불황경제학(depression economics)’이라 불리는 케인즈 경제학을 다시 꺼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불황이 아마도 최적일 것(앞으로 얼마나 더 나빠질지 모른다는 의미)’이라는 맨큐 교수의 지적을 되새기면서, 정부는 불필요한 논의보다는 신속하고도 무제한적인 재정정책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논설위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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