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5대 은행 대기업대출 8조원 이례적 급증
중기대출(5.3조원) 앞질러…회사채시장 침체 탓
유동성 악화에 대기업 은행대출 수요 늘어날 듯
[중소기업신문=이지하 기자] 은행권의 대기업대출 증가세가 가파르다. 그동안 대기업들이 은행보다는 회사채 시장에서 대거 자금을 조달하며 은행 대출 규모가 빠르게 줄었지만, 지난달 5대 은행의 대기업대출이 8조원 이상 불어나는 등 올해 들어 대출 증가폭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화사채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유동성 악화에 은행을 찾는 대기업의 발길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3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원화대출 잔액은 1170조733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달보다 19조8688억원 늘어난 것으로, 지난 2015년 9월 이후 최대 규모의 증가폭이다.
5대 은행의 원화대출이 10조원 이상 증가한 것은 지난달을 제외하고 2015년 10월(14조2840억원)과 11월(13조1099억원), 2019년 10월(10조4353억원) 등 3차례 뿐이다. 올해 들어 원화대출은 1월에 5조2775억원, 2월에 5조5320억원으로 매달 5조원 가량 늘어나고 있다.
원화대출 가운데 기업대출의 3월 증가액이 13조4568억원으로 전월(3조6702억원)의 4배 가량 증가했다. 이는 이례적으로 대기업대출이 8조949억원 급증한 영향으로, 중소기업대출(5조3619억원)의 증가폭을 3조원 이상 초과했다.
대기업들은 통상 회사채와 같은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온 만큼 은행 대출 규모가 많지 않았다. 그동안 대기업대출의 증감 규모는 커봐야 매달 2조원 안팎에 그쳤다.
국내 은행의 대기업대출 잔액은 지난 2014년 12월 말 168조9000억원에서 2015년 12월 말 164조4000억원으로 4조5000억원 축소됐고, 2016년 12월 말(154조7000억원)에도 9조7000억원이 쪼그라들었다. 2017년 12월 말 잔액은 149조600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6% 줄었다.
이처럼 대기업대출이 크게 줄어든 것은 대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대출금을 상환하는 동시에 경영에 필요한 사업자금을 은행이 아닌 회사채나 기업어음(CP), 주식 발행 등을 통해 시장에서 직접 조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채권시장이 얼어붙자 대기업들이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에 설정해 둔 은행 한도성 거래여신을 실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은행들도 대기업대출에 대해 완화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과거 조선·해운·건설업종에서 시작된 기업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서 적극적인 대출 취급을 제한했던 부실위험이 현저히 낮아진 데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옥죄기 여파에 수익성 확보를 위해선 기업대출 확대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에 조선 등 일부 업종을 중심으로 기업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선제적인 위기관리가 중요해졌고 신용위험평가도 엄격해지면서 대기업대출을 늘리기가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라며 "지난해부터 이러한 이슈가 사라지면서 우량 대기업을 중심으로 여신 취급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권의 대기업대출 연체율은 하락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부실채권비율은 1.10%로 1년 전보다 0.32%포인트 떨어졌다. 대기업대출 부실채권비율은 2.10%에서 1.50%로, 중소기업대출은 1.05%에서 0.89%로 각각 하락했다.
대기업대출의 부실채권비율은 지난 2017년 말 2.85%에 달했지만, 이후 매달 빠르게 줄면서 2018년 말 2.10%로 떨어졌고 지난해 6월에는 1.95%, 12월에는 1.50%를 기록하는 등 감소세가 가팔라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대기업들의 자금조달에 비상이 걸린 상황으로, 우량 대기업들 조차 채권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미달이 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며 "당장 사업자금이 필요한 대기업의 은행 대출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