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집권 메르켈과 아베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정치적 입지 달라져
아베 진정성 없어 국민에 외면...메르켈, 초기 혼란 극복하고 신뢰 회복

유럽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명의 장수 총리들이 코로나19 대처 과정에서 상반된 진성성과 그에 따른 상반된 처지로 관심을 끌고 있다. 한명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이고, 다른 한명은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다.

두 정치인은 자국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장수 총리라는 공동점이 있다. 메르켈은 역대 독일 총리 가운데 두 번째로 긴 14년의 재임기간을 유지하고 있다. 아베도 지난해 11월, 전후 일본 총리 가운데 재임기간이 가장 긴 총리가 된 이후 재임기간을 늘리고 있다. 그의 재임기간은 8년 3개월.

이들의 재임기간이 길었다는 건 이들이 지도력이 그만큼 국민에게 어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서로 다른 대처를 취함으로써 각자의 처지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먼저 메르켈의 경우 코로나19 발생 이전만 해도 입지가 계속 위축돼 왔다. 메르켈이 이끄는 중도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 연합은 반(反)난민 정서 등을 활용한 극우 정당들의 공격 속에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 등에서 연이어 부진한 성적을 올렸다. 이로 인해 메르켈은 중도 사퇴 여부가 관심이 될 정도로 곤란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코로나19 초기 확산 과정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감염 추적 실패로 확진자가 확산되자 사재기 열풍마저 몰아닥치며 비상사태 대응 능력에 의문도 제기됐다. 16개 연방주에 1000명 이상의 행사 금지를 권고했지만, 대부분의 주 정부가 이를 무시하는 등 연방정부와 연방주들 간의 불협화음도 드러냈다. 

하지만 메르켈은 이후 적절한 조처를 통해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등 적극 대처에 나섰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느리기만 했던 대응 태세도 빨라졌다. 메르켈은 우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명분을 내세워 시민들을 설득했다. 대국민담화를 통해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면서 시민들이 연대해달라고 호소했다.

독일인 대부분도 강도 높은 공공생활 제한 조치에 찬성했다. 이를 통해 독일은 점차 코로나19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15만명에 가까운 국민이 감염돼 5000여 명이 숨졌지만, 사망자 수에서 2만~3만명에 달하는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선방했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메르켈 총리와 집권당의 지지율도 꾸준히 올라갔다. 최근 공영방송 ARD의 여론조사 결과 기민·기사 연합의 지지율은 38%로 2주 전 같은 조사보다 3% 포인트 뛰어올랐다. 총선 직전인 2017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처럼 코로나19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통해 점차 인기가 회복되고 있는 메르켈과 달리 아베의 인기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아베를 바라보는 일본 내 민심은 차갑다. 무엇보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만명을 넘어설 때까지 아베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거세다.

무엇보다 아베는 올 여름 치르기로 돼 있던 도쿄 올림픽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의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축소시켰다는 비판이 국내외에서 제기됐다. 그 의혹은 결국 올림픽 개최가 연기되자마자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사실로 확인됐다.

코로나19 검사를 축소 진행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 언론은 정부가 하루 3800건의 검사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하루 평균 900건만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 사망자 발표가 조작됐다고 강조하는 등 도덕성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재난 수습보다 정치적 기반을 중시하는 아베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결국 아베에 대한 실망감은 지지율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조사에선 아베 내각 지지율이 한 달 새 6%포인트 추락한 42%로 약 2년 만에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47%)보다 낮았다.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도 지지율이 41%로 지지하지 않는 응답(42%)을 밑돌았다. 자민당 내에서조차 아베의 6월 퇴진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메르켈과 아베의 처지를 보면 코로나19가 뜻밖에도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까지 가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 차이는 아마도 국민을 대하는 진정성일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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