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경제 활동 멈추면서 원유값 폭락 이에 자연 회복
화석연료 무한정 소비하면서 성장하는 방향 점차 사라질 듯

지난 달 21일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가 발생했다. 이날 5월 인도분 미국 서부 텍사스 원유(WTI)가 배럴 당 –37달러를 기록했다. 마이너스 가격은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주고서 원유를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석유 수요는 줄었지만 공급은 넘쳐나 원유업체가 이를 저장할 공간이 없다보니 돈을 얹어서라도 떠넘겨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물론 마이너스 유가는 일시적인 가격 왜곡일 가능성이 높다. 북미 지역에서 저장 장소가 마땅치 않자 인수 시점이 임박한 5월 물량을 일제히 내다팔아서 발생한 비정상적 가격이다. 이날 마이너스 가격에 거래된 물량은 5월 인도분에 한해서였다.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6월 인도 물량은 배럴 당 20달러 선에서 정상 거래되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최근 유가 하락세는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산업수요가 줄었고, 전 세계적으로 개인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개별수요마저 급감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3월 6일 산유국 연합체(OPEC+)가 감산 합의 연장에 실패했다. 코로나 사태로 국제 유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OPEC+가 감산에 합의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의외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 합의 실패 후 석유 생산량을 한계치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선언해 유가의 수직 하락하도록 방치했다.

올해 초까지 배럴 당 60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 유가는 현재 1/3 토막 나 2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 사이에 감산에 합의해 ‘V자형 가격 반등’도 있었지만 이내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하루 970만 배럴 감산하기로 합의한데 비해 글로벌 수요는 하루 2000만~3000만 배럴 감소하고 있어 시장에서 공급 과잉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몇 달 동안 지속된다면 글로벌 원유저장 탱크가 가득 차는 ‘탱크 톱(tank top)’에 이르게 되어 다시 한 번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하게 될지도 모른다.

국제유가가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축된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어야 하는데, 이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모든 조건이 코로나 확산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고 해도 국제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수준까지 회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코로나 펜데믹은 기존의 경제사회 혹은 경제 질서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교역의 활성화가 세계 경제 성장의 바탕이 된다는 믿음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서 생산 중단과 이동제한령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체인(GVC)의 리스크가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각국은 생산과 공급의 해외 의존도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이며, 이로 인해 세계적인 규모의 인적·물적 교류의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수요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시기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경제활동이 멈추면서 발생한 자연환경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훼손되었던 자연이 속속 복원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대기오염이 심각했던 중국과 인도 등지의 대도시에서 맑은 하늘이 다시 나타난 것은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동안 지구 환경보호를 위한 신재생 에너지 개발 이유를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설명해 왔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석유수요가 급감하게 되자 복원되는 자연환경의 변화를 실제로 확인한 만큼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서둘러야 하는 커다란 명분이 생겼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 경제활동은 재개되고 성장은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무한정으로 소비하면서 성장하는 방향은 앞으로 점차 사라져 나갈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는 인류가 석유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바야흐로 석유시대의 종말이 한걸음 다가오고 있다. 

이원호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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