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 독자적이고 일관된 정책으로 통일이뤄
우리의 데탕트 정책 시련 있어도 열매 맺을 것

“2년간의 짧은 데탕트가 끝났다.”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소식을 전하며 해외언론들이 택한 해석은 남북한 간 데탕트의 종말이었다. 데탕트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 체제가 다극화되면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을 일컫는다.

해외언론들은 최근 2년 사이 남북한이 대화와 교류를 통해 데탕트를 추진했지만,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인해 그동안의 노력이 무산되고 결국 과거로 되돌아가게 됐다고 해석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 보면 해외언론들의 해석이 맞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보면 냉전과 데탕트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그 과정에서 많은 반전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반전은 상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과거 반전을 통해 이루어진 놀라운 결과의 예를 우리는 독일에서 찾을 수 있다. 냉전과 데탕트가 반복되는 와중에 통일을 완성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했다. 냉전 체제 당시 유럽 내에서 미국을 주축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이 주도하는 공산주의 진영 사이에서 가장 극렬한 대결은 독일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 치열한 이념대결을 펼치고 있었다. 

이념대결의 정점을 이루던 1960년대 중반, 서독은 미국으로부터 위험한 요청을 받았다. 1960년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었던 미국이 서독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베트남 전쟁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위대한 사회’ 건설을 정책 이념으로 내세워 국방력을 강화했고, 소련 또한 미국에 맞먹는 군비를 갖추기 위해 군비증강 정책을 도입하는 등 극단적인 대결도 마다하지 않던 시기였다.

호주와 남한, 타이완 등은 병력을 파병했지만, 유럽 내에서 특히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시달리던 서독은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응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응징으로 미국은 서독 주둔 병력 가운데 3만명을 서독 정부와 상의도 없이 철수시켰다.

서독은 안보의 불안을 느꼈다. 서독의 선택은 소련과의 화해였다. 미국이 베트남에 치중하는 바람에 소련을 통해 동서독 간의 화해 정책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당시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가 택한 정책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 화해를 모색하는 동방정책이었다. 브란트는 1972년 말 동독과 서독 양측이 서로를 주권국가로 인정키로 하는 기본조약을 체결했다.

데탕트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국도 데탕트에 동참했다. 1972년 1월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한 데 이어 5월에는 모스크바를 방문해 브레즈네프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1973년에는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냉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 철수 등 미국의 입김이 약화된 틈을 타 소련이 동독에 엄청난 수의 재래식 무기를 배치한 데 이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등 데탕트를 흔들었다. 1980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레이건도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칭하며 대결구도를 이끌었다. 결국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에 서방과 공산 진영이 서로 불참하는 등 ‘2차 냉전’의 파고가 몰아닥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은 데탕트와 동방정책을 계속 추진했다. 그 사이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었다. 1986년 소련 서기장에 오는 고르바초프가 국내 개혁을 단행한 데 이어 1987년 레이건과 정상회담을 갖고 동독에 배치된 재래식 무기는 물론 핵미사일까지 철수시키기로 합의했다. 다시 데탕트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이었다.

서독은 소련의 변화와 데탕트를 놓치지 않았다. 이를 통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끈질긴 설득 끝에 1990년 5월 고르바초프로부터 독일 통일을 인정받았다. 그동안 독일 통일에 반대하던 영국과 프랑스도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독일의 통일 과정은 지금 당장 드러나고 있는 북한의 몽니와 미국의 비협조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화합과 통일 가능성이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과거 미국이 ‘위대한 사회’를 부르짖는 와중에 서독이 미군 철수와 주변국의 위협에 노출됐던 것도 지금의 우리 상황과 비슷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독이 독일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독자적이고 일관된 정책이다. 독자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나가다 보면 주변 여건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언젠가는 미국과 북한도 우리의 뜻을 존중하고 따를 시기가 올 것이다. 우리가 독일만큼 못할 것은 없지 않은가.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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