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고용 침체, 기업 환경 크게 악화…최저임금 1만원 공약 고집 말아야

민주노총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월 225만원, 시급 1만770원으로 정하고 협상에 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인 시급 8590원 보다 25.4% 인상된 금액이다. 민노총은 이 같은 요구안을 주장하는 근거로 올해 노동자 가구의 실태생계비가 225만7702원으로 추산되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성장과 고용이 침체되고 기업의 경영환경 또한 크게 악화되고 있는 시점에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2.9%)의 8배가 넘어서는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 민노총도 올해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25.4% 인상안을 결정하기까지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민노총은 당초 16일 열기로 했던 최저임금 관련 기자간담회를 연기하는 등 내부적으로 의견을 취합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 나온 결론은 25.4% 인상으로 귀결되었다.

반면 사용자 측은 코로나 사태로 위축된 기업 활동을 이유로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 혹은 삭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60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0.8%가 내년 최저임금에 대해 ‘동결’이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7.3% 올해보다 낮아야 한다며 ‘삭감’ 의사를 표시했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소상공인들의 사정은 더 다급해 보인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10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소상공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결정’을 내려달라며 사실상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임시직 고용 비율이 높은 편의점주협의회는 점주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호소하면서 ‘최저임금 삭감’, ‘업종별등적용’, ‘주휴수당 폐지’ 등을 요구해 민노총과 대척점에 서있다.

실제로 코로나 사태의 충격으로 우리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달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를 단행하면서 밝힌 경제 현황을 보면, 4월 수출액은 전년 대비 24% 줄면서 무역 수지도 99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0.2%로 2월 전망보다 2.3% 포인트나 낮춰 잡아 본격적으로 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취업자 수도 줄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5월 취업자 수는 지난해에 비해 39만 명(-1.4%) 줄어들었다. 취업자 수는 3월부터 5월까지 세달 연속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5월 실업자는 127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만3000명 늘었는데, 이는 1999년 통계 집계 이후 5월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민노총이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25.4%로 결정한 것은 황당하고 무리한 요구로 받아들여진다. 민노총이 대폭 인상안을 밀어붙이면서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실태생계비 225만원’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 다른 요인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것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을 반드시 이행하라는 민노총의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 정부는 이듬해 최저임금을 16.5% 인상하면서 2020년까지 1만원 공약을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3년간 약 16%씩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2017년 16.4%를 마지막으로 2018년과 2019년에는 각각 10.9%, 2.9% 인상에 그쳤다. 2020년 최저임금은 1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8590원이다. 따라서 지난 2년 동안 노동계가 양보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모두 합쳐 계산하면 대략 25% 정도 나오는 것으로 추산된다.

2021년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해가 되기 때문에 임기 전에 대통령의 공약 사항을 지켜 달라는 민노총의 요구는 일견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 전체가 대공황 수준의 경기 침체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현재의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깊은 터널과 같은 상황에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반드시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지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청와대와 정부부처 어디서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소득주도성장은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서서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설명하고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설득시켜나가야 한다. 결자해지(結者解之),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가 앞장서 내놓은 약속이니만큼 정부가 책임을 지고 풀어야 할 것이다.

이원호 경제학박사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