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에서 ‘랩핑 버스’ 세워 두고 항의 시위

▲ 김용태씨가 하이트진로 갑질로 자신이 운영하는 생수 회사가 망했다고 주장하며 국회 앞에 랩핑한 차량 앞에 서 있다. 김흥수 기자

지난 8일부터 국회 정문 앞 도로 위 안전지대에는 ‘악질 하이트진로’라고 랩핑한 버스가 서 있다. 하이트진로의 부당 덤핑행위로 피해를 입은 김용태씨가 끌고 온 차량이다.

김씨는 충남 천안에서 소규모 생수회사를 운영하며 건실하게 다져갔다. 그러나 하이트진로가 지난 2006년 천안 지역에 진출하며 불행이 시작됐다. 하이트진로는 김씨 회사의 대리점을 접촉해 원가의 1/3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물품을 공급하고 각종 지원을 해줬다. 김씨는 이를 부당염매(덤핑)행위로 공정위에 제소했고, 공정위는 기나긴 조사 끝에 김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시정명령’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에 그쳤다.

그럼에도 하이트진로는 공정위의 판결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7월 대법원은 공정위의 판결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 제소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14년이 흐르면서 회사는 문을 닫아야 했고, 김씨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김씨 곁에는 지난해 3월까지 롯데의 갑질을 랩핑으로 새긴 차량을 끌고 다니던 류근보씨가 있다. 류씨는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의 롯데백화점 지하 1층에 입점했다가 갖은 갑질을 당하고 쫓겨났다. 류씨는 국내로 돌아와 롯데백화점을 상대로 피해보상을 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 보았지만 러시아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결할 방안을 찾지 못했다.

류씨는 궁리 끝에 2018년 ‘롯데 갑질 래핑 버스’를 만들어 롯데그룹으로부터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을 규합해 롯데갑질피해자연합회를 결성해 본격적인 투쟁에 나섰다. 1년여의 투쟁 끝에 롯데백화점은 류씨와 합의에 이르렀다.

류씨가 합의 후 1년 만에 김씨의 투쟁에 동참하고 나선 이유는 단 한 가지 ‘동병상련’ 때문이다. 류씨는 “서울 서초동 하이트진로본사 앞에 김씨가 천막을 치고 5년여의 시간동안 노숙투쟁을 이어가고 있는데 여름이면 천막 내부의 온도가 50도를 넘고, 겨울에는 영하 15도가 넘는다”며 “저도 버스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고난의 투쟁을 이어갔기에 누구보다 김씨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의 갑질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고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대기업 갑질의 피해자들이 많기 때문에 뒤로 물러서 있을 수만 없다”고 말했다.

김씨가 국회 앞 래핑 버스 투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오는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되길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5년에 국정감사의 참고인으로 채택되어 출석을 요청받았으나 갑자기 검찰에 긴급체포되었다”며 “다행히 영장심사 후 풀려났지만 국감출석이 불발되어 이번에는 꼭 국정감사장에 나가 하이트진로의 갑질행위를 낱낱이 폭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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