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공화국 황제’로 18년 권력 누리다 외연 확대하다 몰락
푸틴·시진핑 합법적으로 장기집권하고 있지만 성공 가능성 낮아

1804년 12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황제의 관을 썼다. 1789년 프랑스혁명 발발 이후 혁명전쟁을 치르며 혼란을 겪던 프랑스를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1797년 동지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지 불과 7년, 프랑스혁명으로부터 따지면 15년만이었다.

당시 프랑스의 정치 체제는 왕정을 무너뜨리고 수립된 만큼 공화정 체제였다. 나폴레옹은 황위의 타당성과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국민투표를 통해 황제의 관을 썼다. 프랑스의 새 주화에는 ‘프랑스 공화국-나폴레옹 황제’라는 모순적인 표현이 새겨졌다.

이후 나폴레옹은 유럽 전역을 석권하며 승승장구했지만 결국에는 영국을 주축으로 하는 대불동맹의 반격에 막혀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 패배로 엘바 섬에 유배됐다가 탈출해 일시적으로 권력을 되찾았지만,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또 다시 패하는 바람에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뒤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그가 권력을 누린 기간은 18년이었다.

‘공화국 황제’라는 모순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권력을 유지한 나폴레옹의 사례가 역사적으로 유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로마 공화정 말기 독재관으로 장기 집권하면서 황제가 되려했던 카이사르가 선례였을 테지만, 반대파의 반발에 막혀 죽임을 당한 카이사르에게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게 나폴레옹의 비극이었다.

두 사례 모두 비극으로 끝났지만 왕정국가가 아닌 공화정 국가에서 권력자가 권력을 오래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독재라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황위는 독재를 유지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우리도 멀지 않은 과거 한 때 그랬고 오늘날도 공화정의 탈을 쓴 채 독재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례는 세계 전역에서 차고 넘친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중국의 시진핑이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최근 러시아 국민투표에서 확정된 개헌에 따라 2036년까지 권력을 유지할 발판을 마련했다. 이번 개헌 결과로 푸틴은 현 임기인 2024년 이후 6년 임기의 대통령직에 두 차례 더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때까지 권력을 유지한다면 지난 2000년 옐친의 후임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그로서는 36년간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올해 68세인 그가 84세까지 권력을 장악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사실상 종신집권이나 다름없다.

2012년 말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취임한 시진핑은 2014년 명실상부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주석에 취임한 뒤 일인 독재체제를 강화해 왔다. 시진핑의 독재가 표면화된 것은 2017년 10월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이른바 '시진핑 사상'을 중국 헌법에 명문화하면서부터다.

‘시진핑 사상’이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지역 발전을 도모해 이른바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한다는 것으로, 일대일로(一對一路)같은 정책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이 사상을 마르크스 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과 함께 헌법에 포함시켜 스스로를 이들과 동등한 사상가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2018년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중국 국가주석 3연임을 금지하는 헌법 조항을 빼버리면서 장기집권과 독재체제를 법률적으로 완전히 굳혔다. 당시 서방을 비롯한 외부에서 시진핑을 시황제인 진시황을 빗대어 '시황제(習皇帝)'라고 조롱한 것도 이 때문이다.

푸틴과 시진핑 모두 장기 독재체제를 굳히는 과정에서 국민투표나 헌법 개정을 통하는 합법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동의를 이끌어낸 바탕은 효율성이다. 푸틴과 시진핑 통치 아래서 러시아인들과 중국인들은 국가가 효율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그들에게 권력을 주고 유지할 수 있게 해줬다.

문제는 효율성만 따지다보니 장기 독재를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독재 권력은 내부 통합을 위해 반드시 외부로 눈을 돌린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의 동중국해 갈등 유발 등이 그것이다. 외부 세계와 달리 내부인들은 이마저도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판단한다. 권력을 독점하는 장기 독재의 모순이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 혁명이 지금까지 회자될 만큼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혁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분산하는 3권 분립이라는 민주적인 제도가 정착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도 권력 분산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았지만 ‘공화국 황제’라는 모순을 감추기 위해 지나치게 외부로 확장하다 몰락을 맞았다.

과연 푸틴과 시진핑은 예외일까. 나폴레옹이 활약하던 시기의 ‘공화국 황제’가 2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21세기에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비록 그들의 독재가 그때와 마찬가지로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모양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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