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속 등거리 외교로 자국 이익 극대화 추구
제국주의적 유산 버리고 공동이익 중시 정책 마련해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인해 전 세계가 양국의 눈치를 보느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느라 바쁜 나라가 있다. 바로 프랑스다.

최근 들어 프랑스는 동지중해에 대한 영향력 확대에 몰두하고 있다. 그리스를 등에 없고 키프로스 인근의 자원개발에 참여하려는 의도를 보이는가 하면 과거 식민지였던 레바논에 대한 정치·경제적 지배권을 유지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프랑스는 최근 그리스가 지원하는 키프로스 인근에서 천연가스 채굴권을 얻어냈다. 키프로스는 터키 남부에 위치한 섬나라로 터키 또한 이 일대에 대한 자국의 자원개발권을 주장하며 프랑스의 개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프랑스는 이를 무시한 채 개발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그리스와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동지중해상의 주둔을 늘릴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레바논에 대한 관여는 더욱 적극적이다. 레바논은 최근 수도 베이루트에서 발생한 초대형 폭발참사로 190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다치는 불상사 속에 건국 100주년을 맞았다. 이에 과거 식민지에 대한 위무와 축하를 겸해 레바논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레바논 국민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84세의 여가수 페이루즈를 만났다. 초대형 폭발참사에 분노한 민심에 밀려 내각이 총사퇴하고, 새 총리가 선출된 상황에서 이를 수습할 정치인이 아닌 여가수를 만난 이유는 레바논 정치 문제에 깊이 개입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두 사례 모두 동지중해 권에서 입지를 확대하려는 것으로 읽히지만, 이는 넓게 보면 유럽 내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유럽 외곽지역에서 입지를 강화해 유럽 중심부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인데, 이같은 전략은 근세 초기부터 이어져온 프랑스의 대외 전략과도 맥을 같이 한다.

프랑스의 전략은 등거리 외교다. 그 시발점은 16세기 초 신성로마제국을 이끌던 합스부르크가의 황제 카를 5세와 전쟁을 벌이던 프랑수아 1세가 파비아 전투에서 패한 뒤 포로로 잡히면서부터다. 프랑스 왕실은 신성로마제국과 다툼을 벌이던 오스만제국과 손을 잡고 동서에서 합스부르크가를 협공했다. 이후 오스만제국은 두 차례나 신성로마제국을 침략했음에도 불구하고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합스부르크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었던 프랑스는 루이 14세 시절인 17세기 중반 유럽 내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같은 프랑스의 등거리 외교는 루이 15세 때인 18세기 중반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가가 통치하던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는 데까지 이어진다. 오랜 숙적과의 동맹이었기 때문에 ‘외교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이 동맹 관계는 루이 16세와 오스트리아 왕실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결혼함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이 동맹은 결국 오스트리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감에서 비롯된 프랑스 혁명을 초래하지만 유럽 내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프랑스의 등거리 외교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마크롱 대통령이 보여주는 등거리 외교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여건 또한 프랑스가 나서기 좋은 바탕을 마련해주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갈등으로 유럽 문제에 깊이 관여할 여유가 없고,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선언한 뒤 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스스로 거둬들이려 하고 있다. 또 다른 강국으로 대접받는 독일은 과거 두 차례나 전쟁을 도발했던 원죄 탓에 입지가 크지 않다.

이처럼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좋은 여건이 마련된 상태인 만큼 과거처럼 등거리 외교를 통해 유럽 밖에서 입지를 다진 뒤 유럽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의도가 프랑스 국익 측면에서는 절대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프랑스의 의도가 옳은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키프로스 인근의 자원개발을 통해 그리스와 터키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거나 레바논에 대한 간섭을 통해 과거 식민지를 정치적으로 좌지우지하려는 게 과연 옳은 길일까.

프랑스의 태도는 과거 제국주의적 유산을 유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프랑스가 진정으로 국익을 생각하고 국제적 지배력과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자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구태에서 벗어나 지역의 갈등을 조정하고 공동의 이익을 중시하는 정책과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곽영완 국제·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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