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서민들 어려움…한가위도 풍성하지 않아
위정자들, 백성 어려움 살핀 정조처럼 민의 경청해야

올해 추석은 풍성하지 않다. 서민들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코로나19로 민생이 직격탄을 맞았다. 홍수와 태풍의 피해로 농어민들의 가슴도 타들어가고 있다. 배달 라이더들은 아예 추석 연휴에 쉬지도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 지도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여느 때 추석이라면 휴식을 취하면서 독서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지 않는가. 코로나19와 태풍으로 민생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도 민생 현장을 찾아야 한다. 리얼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른바 ‘청람(聽覽)’ 위주의 추석 행보에 나서야 할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조했던 ‘청람’은 지식이 많은 참모들이나 측근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을 넘어 ‘국민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을 말한다. 농어민, 중소상공인, 배달 라이더, 청년 창업자들의 어려움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바로 ‘청람’인 것이다.

조선시대 정조는 선대왕들의 묘소로 가는 행차인 ‘능행(陵幸)’을 통해 ‘청람’을 공식화했다. 즉 ‘상언(上言)’과 ‘격쟁(擊錚)’의 제도를 활성화한 것이다. 상소(上疏)는 일반 백성들이 작성할 수 없으나 ‘상언’은 모든 백성이 작성할 수 있는 문서이다. ‘격쟁’은 국왕의 ‘능행’ 길에 징과 북을 두드려 행차를 막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을 일컫는다. 

김준혁 한신대교수는 ‘리더라면 정조처럼’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정조의 능행 중에만 총 3355건의 상언, 격쟁이 있었고(상언 3232건, 격쟁 123건) 정조는 환궁하여 이에 대한 모든 조처를 취했다. 이 모든 것을 정조는 읽고 해결의 지시를 내린 것이다. 백성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는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조의 빈번한 ‘능행’은 백성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그들의 억울함을 해소해 주고 나라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진정한 목적이 있었던 셈이다.

정조의 自號(자호)는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다. ‘만 개의 냇물을 밝게 비추는 달의 주인이 되는 사람’이란 뜻이다. ‘만 백성을 밝게 비추는 성군(聖君)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풀이된다. ‘태양의 주인’이 아닌 ‘달의 주인’이란 표현은 정조의 사상적 성취와 자겸(自謙)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하늘(天)이 ‘태양의 주인’인 만큼 자신은 ‘달의 주인’만 되어도 만족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물론 정조의 ‘청람’은 ‘萬川明月主人翁’을 구현하기 위한 한 방편이다. 

필자는 붓글씨를 쓸 때, ‘萬川明月主人翁’을 ‘萬川明月主旨翁(만천명월주지옹)’으로 바꿔 쓰고 있다. ‘만개의 냇물을 밝게 비추는 달의 참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다. 지금은 민주사회이기 때문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추석을 앞두고 9월25일 연이은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은 강원도 양양군을 방문했다. 정 총리는 현남면 해송천 도로유실 현장에서 피해 실태를 청취하고 “정부는 매우 빨리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하고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9월 26일에는 섬진강댐 과다 방류로 수해를 당한 전남 구례군과 경남 하동군을 찾아 복구 현장을 둘러봤다. 정 총리는 구례군 마산면 상하수도사업소 앞에서 김영록 전남지사와 김순호 구례군수로부터 현지 피해 상황을 청취했다. 소병철서동용 민주당 의원으로부터는 수해 원인 조사에 반드시 주민들 의사가 반영되는 통로를 만들어달라는 건의를 받았다. 특히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이 ‘섬진강 수해 참사’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피해 배상과 철저한 원인 규명을 촉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얼굴을 붉히지 않고 시종 현장의 소리를 진지하게 들었다고 한다. 

정 총리는 이어 경남 하동군 화개읍 화개장터로 이동해 김경수 경남지사와 윤상기 하동군수, 그리고 상인들로부터 피해 복구 상황을 청취했다. 그는 상인들과 주민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위로하면서 화개장터에서 현지 농산물을 구입했다.

필자가 정치부 기자 시절 겪은 대다수 정치인들은 식사를 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원맨쇼’를 한다. ‘청람 제로’의 정치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정 총리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청람의 정치인’이었다. 최근 정부의 각종 회의에서도 그의 ‘청람 행보’는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廳覽’은 지도자의 기본 덕목이다. ‘萬川明月主旨翁’이 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조한규 중소기업신문 고문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