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사고, 밀어부치기식 낡은 유산 버려야
창의성과 다양성으로 4차산업혁명 대비해야

지난 14일 20년 동안 현대차그룹을 이끌었던 정몽구 회장이 물러나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후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어 왔으나, 이번에 회장에 취임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현대차그룹을 책임지는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본격적인 3세 경영체제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의선 체제의 출범은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 상황과 맞물려있다. 자동차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변화의 바람에 노출되어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중장기적으로 보면 내연기관차에서 친환경자동차로 옮겨가고 있으며,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고 있다. 기술혁명과 시장축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 정의선 체제가 출범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현대차그룹의 결단은 시의적절하다. 

그동안 현대차는 오너 경영을 세습해 오면서 모범적으로 성공한 사례를 보여 왔다.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자동차 불모지인 우리나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자동차 산업이 뿌리를 내리는데 공헌했다. 다음으로 창업주의 동생인 고 정세영 회장은 포니 개발을 통해 자동차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미국 시장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포니 정’이라는 애칭으로 세계적인 경영자 대열에 합류하면서 현대차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정몽구 회장은 품질경영을 뚝심으로 밀어 붙여 현대·기아차를 세계 5대 브랜드로 키웠으며, 자동차 산업의 변방에 머물렀던 우리나라를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제 관심은 3세대로 넘어온 정의선 체제가 앞선 성과를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까에 모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정의선 신임 회장이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느냐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기아자동차 사장을 맡았을 때 디자인 경영을 통해 기아차를 흑자 전환시키고, 현대차와 대등한 규모로 성장시킨 사례를 들어 경영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몽구 회장의 아들이라는 배경에 힘입어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아 온전하게 정 회장의 경영 능력으로 인정하기에는 다소 미흡한 감이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만, 당장은 정 회장이 발표한 취임사를 통해 그의 경영철학과 미래 비전을 엿볼 수 있다. 정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고객·인류·미래·나눔이라는 4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4가지 키워드에는 현대차그룹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모두 담고 있다. 

먼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성장시킨 앞선 세대의 성과를 계승하겠다고 밝혀 정 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정통성을 이어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품질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완벽한 품질’을 통해 고객의 삶의 질을 높여 나가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현대차그룹의 미래에 대해서는 전기차와 수소차 개발과 같은 자동차 전문기업으로서 역할은 물론이고, 수소연료전지 기술과 도심항공모빌리티(UMA), 로보틱스, 스마트시티와 같은 친환경 모빌리티 사업을 빠르게 현실화시켜 인류에게 한 차원 높은 삶을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모태가 되는 현대그룹은 자동차, 건설, 중공업을 통해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끌었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린 기업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정 회장의 취임사 말미에도 언급되듯이 '안되면 되게 만드는' 그룹 정신에 그 동안 현대가 이룩한 모든 성과와 가치가 압축되어있다. 하지만 '안되면 되게 만드는' 정신에는 양면성이 있다. 압축 성장 시기에 선진국을 따라 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가치가 반드시 필요했지만, 반면 획일적인 사고와 밀어붙이기 경영의 부작용도 발생한 것도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가치는 창의력과 다양성이다. 정의선 체제 출범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현대차그룹은 과거 이룩한 성과에서 계승·발전 시켜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낡은 관습을 잘 선택해야 한다. 여기에 현대차그룹의 미래와 정의선 체제의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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