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 앤트그룹IPO 중단 지시…시장 혼란 가중
비판 세력 손보기 위해 권력 휘두르지만 결국 실패

중국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은 위대한 군주면서도 폭군으로 알려졌다. 그는 뛰어난 통치 능력과 전략을 바탕으로 사분오열 상태에 있던 중국 대륙을 하나로 통일했다. 그럼에도 진시황에게 폭군의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게 된 계기는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이다. 이전에 그가 이룩한 수많은 업적을 분서갱유가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분서갱유는 통일 제국을 이룩한 진시황이 학자들의 정치적 비판을 막기 위해 의약과 점복, 농업 등 실용서적을 제외한 사상서를 불태우고, 이듬해 이에 반발하는 유생들을 매장한 두 사건을 묶은 탄압책을 말한다. 분서갱유는 대표적인 문화 탄압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흔드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 깔려있다. 그러나 분서갱유는 역사 발전의 퇴보만 가져왔을 뿐, 권력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현대 중국을 크게 후퇴시켰던 문화대혁명도 ‘20세기 분유갱유’로 불리고 있다. 문화대혁명의 목표는 파사구(破四舊), 즉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 낡은 관습을 타파하여 새로운 사회주의 문화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명분이고 실상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벼랑 끝에 몰린 마오쩌둥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으킨 대규모 반달리즘(문화 파괴 행위)에 불과하다. 결국 문화대혁명도 중국 사회와 중국인들에게 씻지 못할 큰 상처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사실 분서갱유와 문화대혁명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게 언급한 이유는 최근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현상에서 또 다른 분서갱유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인 앤트그룹의 상장이 갑자기 연기된 건이다. 얼핏 시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상장이 연기된 숨은 원인을 파헤쳐보면 이번 사건이 결코 가볍지 만은 않아 보인다.

앤트그룹은 지난 5일 상하이와 홍콩 증시에 동시 상장할 예정이었다. 앤트그룹의 IPO 금액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인 340억달러(약 38조원)로 전 세계의 관심을 불렀다. 하지만 상장 사흘 전 앤트그룹 관계자들이 정부의 금융감독기관에 불려가 면담을 한 직후 상장 중단이 발표됐다. 이는 중국 자본시장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로 시장은 크게 동요했다.

심각한 일은 상장 중단의 원인이다. 중국 증감회는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에 대해 “졸속 상장을 막은 것은 투자자와 시장에 대해 책임지는 행위”라고 밝히고 있지만, 시장에서 이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관리의 말을 인용해 앤트그룹 IPO 중단은 시진핑 주석이 개인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고 보도했다.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이 지난달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금융서밋 연설에서 ‘중국 정부가 엄격한 금융 규제로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에 격노한 시진핑 주석이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을 직접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이번 앤트그룹 사건이 규모나 파급력에서는 분서갱유나 문화대혁명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권력 기반에 도전하는 비판적인 세력에 손보기위해 무리수를 강행한다는 점에서는 닮은꼴이다. 더욱이 시진핑 주석이 2기 집권을 준비하면서 직면하게 될 수많은 비판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제2, 제3의 앤트그룹 사건이 나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현대판 분서갱유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한 이래 사회주의적 정치체제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체제가 성공적으로 융합하는 모습을 보여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시진핑 정부가 장기집권을 계획하면서부터 정치와 경제의 아슬아슬한 동거는 균열을 보이고 있다. 정치가 경제(혹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경제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시장은 왜곡되고 글로벌 신뢰도는 추락해 성장은 정체되고 만다.

앞서 언급한 분서갱유와 문화대혁명이 실패한 원인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의 흐름을 강제로 막았거나 혹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왜곡했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 정부는 과거에 이미 두 번이나 실수했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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