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전 화장실 청소로 시작 '업계 1위'
사람이 전부다…4만명 모두가 정규직
HDI 멘토대학서 만난 삼구아이앤씨 구자관 대표
"6·25전쟁을 겪으면서 유복했던 가정환경도 끝이 나면서 생계로 뛰어들어야 했어요. 초등학교 졸업장은 37년 만에 되찾았고, 청계천과 도림천 일대를 돌며 아이스케키는 물론 구두닦이, 신문, 메밀묵, 찹쌀떡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손과 발이 시렵지 않았던 1968년 5월의 어느 날, 모두가 기피하던 화장실 변기를 청소하며 구슬땀을 흘렸고, 그렇게 산수(傘壽)의 나이가 됐지요"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의 말이다. 구 대표는 7일 오후 서울 중구 시그니처타워에서 '지혜를 유산으로 남기는 CEO 멘토링'을 주제로 열린 인간개발연구원(HDI) 'HDI 멘토대학 5기' 특별강연회에 연사로 나와 지나온 인생을 청년들에 들려주었다.
전미옥 중부대 교수가 코디네이터로 참여해 진행을 맡았으며, 현장에는 12명의 학생들이 참석했다. 온라인에서는 28명의 학생들이 줌(ZOOM)으로 시청했다. 발열체크와 소독 등의 절차를 거쳐 철저한 방역수칙 하에 강연은 진행됐다.
◆사람이 전부다…전 직원 명함 교부·정규직 채용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다. 구 대표는 이를 몸소 실천하는 중이다. 황혼의 문턱에 서면 누구나 그간의 인생을 정리해 책으로 낼 법도 하다. 그러나 구 대표 사전에 그럴 일은 없다. 한사코 "나는 자랑할 것이 없다"며 손사래를 칠 정도다. 그는 회장님 직함마저 어색하다고 한다. 손주뻘 되는 학생들에게도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서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농익은 벼의 모습을 떠올렸다.
구 대표는 "우리 회사는 사람이 전부다"며 "1968년 처음 남의 집 화장실을 청소할 때 그 기억을 잃지 않으며, 그때 그 마음가짐과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미화부터 경비, 주차, 조리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직원 4만명이 우리 회사를 대표하며 일을 한다"며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지 않는 것이 서비스산업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나부터 50년 전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삼구아이앤씨는 명함이 동일하다. 수평적이며 자율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구 대표는 자신의 집무실을 줄이면서까지 직원들의 사무 공간을 넓혔다. 사무실에는 공용 드레스룸부터 폰부스, 쉼터, 수면방, 안마방 등 없는 것이 없다. 직원의 건강까지 책임진다며, 시각장애인 안마사까지 고용했다. 물론 정직원이다.
직원 모두 일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한 구 대표의 배려다. 비정규직도 없다. 외주 파견업체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관리 인력을 제외하면 대부분 계약직이나 일용직을 운영하는 아웃소싱 업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정직원으로 고용하면 4대 보험료나 퇴직금 등 회사 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인사 발령을 포함해 한 달 명함 값만 4~5억원에 달한다"며 "비용을 아낄 수 있지만, 명함을 주변 사람들에 내밀어 본 직원들은 모두 고마워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궂은 일을 한다고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지만, 명함 한 장으로 일에 대한 긍지와 자긍심을 불러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월사금도 내지 못했던 유년시절의 꿈
삼구아이앤씨는 1968년 청소대행업체로 시작해 '인력소싱업체의 삼성'으로 불리고 있다. 올해 매출액은 1조700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법인 수만 27개(국내 20개·해외 7개)에 달한다. 직원 수만 4만556명(국내 3만5000여 명·해외 5000여 명)이다. 또 인력을 파견하는 고객사는 575개사이며, 전국 현장 2112개소를 관리하고 있다.
현재 미국 뉴저지와 델러웨어에 물류센터를 설립, 배송대행업도 뛰어들었다. 중국에서는 반도체 웨이퍼 제조와 장비 세척을 하고 있으며, 베트남에서는 맛바오 BPO를 인수, 아웃소싱 업무도 하고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유럽도 진출한 상태다. 미얀마와 멕시코, 인도네시아도 진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단 한 곳도 친인척을 앉히지 않았다. 구 대표 가족도 회사 지분에 1원 한 장 관여하지 않는다. 심지어 구 대표 본인조차 회사 자금 집행에 있어 결재하지 않는다. 모두 사장에게 맡겨 놓는다. 27개 법인 사장 모두 반드시 공채 사원으로 들어와야만 취임할 수 있다. 현재는 공채 7기가 총괄사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올해까지 공채 35기가 들어왔다.
구 대표는 "살아있는 동안 3가지는 꼭 하지 않기로 했다"며 "첫 번째는 주례를 서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강연을 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책을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내가 세상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다만 강연은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다니는 해광학교를 통해 연이 닿아 시작하게 됐는데, 내 경험을 이야기한 것이 그들에 큰 힘이 됐다는 것을 알게 돼 나의 이야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고 부연했다.
그의 말처럼 그가 살아온 여든 인생사는 대한민국 근대사와도 맞닿아 있을 정도로 굴곡졌다. 6·25전쟁 이후 유복했던 가정환경이 무너지면서 그는 가장이 되어야 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절박했던 그에게 학교는 생계를 책임져주지 않았다. 책가방 대신 그가 맨 것은 구두닦이 통 혹은 잡다한 것들을 모아놓은 보따리였다. 아이스케키와 찹쌀떡, 메밀묵 등 안 팔아 본 것이 없을 정도로 청계천과 도림천 일대를 다녔다고 한다. 월사금을 내지 못해 초등학교 졸업장마저 가져가지 못할 정도였다.
구 대표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37년이 지난 뒤에야 가져갈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배우고 싶었고, 돈 조금만 내면 야간으로라도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다길래 그렇게 해서 간신히 졸업장을 받아왔다"고 반추했다.
이어 "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을 해보는 것이 그렇게나 소원이었다"며 "그것이 인연이 되어 6년간 동문회장을 맡으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도 그에게는 진심이었다. 2004년 61살 환갑의 나이에 04학번으로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진학해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66살에는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에서 최고령 석사가 됐다. 이후 골프부터 스키, 오토바이, 승마, 수상스키, 비행기 조종까지 더 늦기 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전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그의 좌우명이자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공정의 가치다.
◆고객사만 575개사…"내 가족처럼 생각했을 뿐"
삼구아이앤씨라는 사명은 사람, 신용, 신뢰를 뜻하는 말이다. 50여 년 전 그가 처음 청소를 시작했을 때 생각했던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다.
구 대표는 "회장님이라는 말은 청소를 천직으로 하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대신 직원을 대표해 책임질 일이 있을 때, 그 책임을 내가 지기 위해 책임대표사원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원들이 안심하고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책임을 져줄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오롯이 책임만 질 뿐 성과는 모두 직원이 갖는다"며 "직원들이 애사심을 갖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분출하도록 돕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일까. 구 대표는 직접 면접에 참여해 신입사원들을 채용한다. 특히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유심히 본다고 한다. 자기소개서 역시 자필로 받는다. 글씨를 얼마나 반듯하게 쓰는지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가 보이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고등학교에는 담임선생님이 있어 생활기록부를 보면 학생의 성장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며 "서비스업 특성상 상대방의 기분을 망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면접에서는 말투나 행동, 표정 등을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구아이앤씨는 고객사와 기본 30년 이상의 두터운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간단했다. 고객사를 내 집처럼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었다. 또한 자체 앱을 개발해 현재 관리중인 고객사 575개사의 제품을 삼구아이앤씨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마련했다. 4만여 명의 직원은 해당 고객사의 제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고, 고객사는 삼구아이앤씨를 통해 매출을 늘릴 수 있다. 일석이조의 효과다.
구 대표는 "한창 미래를 꿈꿀 학생들을 만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며 "여러분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며 배운 것도 많다. 그렇기에 도무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며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나조차도 지금 계속해서 배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러분 모두도 나를 통해 희망을 느끼고, 겸손을 잃지 않으며 꿋꿋이 발전해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구 대표는 다시 한번 힘줘 말했다. 그가 처음 화장실을 청소했을 나이, 그 나이에서 강연을 듣던 학생들의 눈가에는 빛이 돌았다. 50여 년 전의 구 대표는 오늘날 그의 모습을 생각했을까.
강연을 마치고 난 뒤, 학생들의 웃음소리에선 다가올 미래가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