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설 롯데, 인사로 쇄신할까?
그룹 주력사 쇼핑·케미칼 책임자 교체 여부 주목 기초소재·머티리얼즈 대표 내년 3월 임기 만료
유동성 위기설에 그룹 공중분해 루머까지 등장하며 곤혹을 치르고 있는 롯데그룹 연말 인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루머가 확산되며 주가가 급락하자 롯데그룹은 급히 해명에 나섰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롯데지주가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전면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유통·화학 등 핵심 계열사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계열사 매각까지 추진되면서다. 재계는 롯데그룹이 이번 연말 임원 인사를 통해 이같은 혼란을 불식시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롯데그룹주들은 루머 이후 급락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25일 종가 3만5400원으로 신저가를 기록하며 장을 마쳤다. 지주사인 롯데지주는 지난 18일 장중 8.86% 빠지며 2020년 3월 코로나 당시 최저가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롯데케미칼은 2009년 5월 이후, 롯데쇼핑은 2006년 상장 이후 최저가를 각각 기록했다.
롯데그룹이 발빠르게 해명에 나섰지만 주가가 별 힘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연말 인사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임원 인사에서 계열사 14곳의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대규모 쇄신에 나섰다. 2022년 12곳을 교체한 이후 안정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인사폭이 예상보다 컸다. 50대 대표와 여성 인재 발탁 등으로 '올드 보이'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올해 롯데그룹 인사의 핵심은 롯데쇼핑과 롯데케미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쇼핑의 김상현 유통군HQ 총괄대표 부회장,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강성현 롯데마트·슈퍼 대표는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다. 이훈기 롯데케미칼 대표는 올해 임기를 시작한 이후 수익성 개선과 미래 먹거리 사업 발굴에 집중하고 있는데, 황진구 기초소재사업 대표와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는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된다.
먼저 롯데쇼핑의 경우, 지난해 재인임을 받은 3인의 대표이사들은 장기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중이다.
P&G를 거쳐 홈플러스 대표이사를 역임한 김상현 부회장은 롯데그룹 유통군의 첫 외부 영입 인사다. 2021년 11월 말에 유통군 총괄대표 겸 롯데쇼핑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2022년 2월부터 롯데쇼핑을 이끌었다. 김상현 부회장 효과로 롯데쇼핑은 2023년 순이익 1797억원을 기록하며 7년만에 흑자전환하기도 했다.
지난달 11일 김상현 부회장은 주요 기관투자자와 증권 애널리스트 등을 상대로 한 투자설명회에서 마켓 리더십 강화, 이커머스 사업 최적화, 자회사 턴어라운드 달성 등을 통해 2030년까지 매출액 20조 3000억원, 영업이익 1조 3000억원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쇼핑은 올해 3분기 누적 순매출액 10조 5095억원, 영업이익 325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정체에도 수익성 개선을 통한 영업이익 성장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어렵게 영입한 인물로 알려진 김상현 부회장은 연말 인사에서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단기 성과보다는 보수적인 롯데 유통군 조직문화 쇄신과 수익성 제고를 위해 한 번 더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다.
신세계 출신인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2022년부터 롯데백화점 대표로 근무했다. 2019년 신세계그룹에서 롯데GRF로 이적했다가 3년만에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랐다. 정준호 대표 역시 외부 출신 첫 롯데백화점 대표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대대적인 대수술에 들어갔다. 롯데백화점 입장에서 상징성이 큰 부산 센텀시티점 매각 타진과 함께 실적이 부진한 점포들을 적극적으로 정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부터는 분당 물류센터, 안산 공장 등 비영업 유휴자산 매각을 추진중이다. 다만, 아직 매각이 성사된 곳은 없다.
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슈퍼사업부 대표이사 부사장은 내년 3월로 임기가 만료된다. 2021년부터 롯데마트를 이끌었던 강성현 대표는 마트와 슈퍼의 '통합 소싱'으로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업무 특성상 중복된 협력사들을 일원화 해 업무 효율을 높였고, 롯데슈퍼의 온라인몰 롯데슈퍼프레시를 롯데마트몰로 흡수했다.
대표로 부임하자 마자 실시한 희망퇴직으로 발생한 일회성 비용 탓에 2021년에는 32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영업이익 540억원을 기록하며 곧바로 흑자전환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강 대표는 지난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최근 루머로 가장 곤혹을 치렀던 롯데케미칼 역시 대표이사들의 거취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그룹 위기설의 중심에 섰던 계열사다. 루머 이후에도 롯데케미칼은 2조 450억원 규모의 회사채 약정 위반 사유가 발생해 사채권자 대상 집회 소집 공고에 나서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롯데케미칼이 활용 가능한 보유 예금 2조원 등 가용 유동성 자금 총 4조원 상당을 확보하고 있고, 그룹 총 자산이 139조원에 달하는 만큼 유동성 위기는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했지만 높은 부채로 인한 시장의 불안감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이훈기 대표는 지난 3월 임기를 시작했다. 롯데케미칼로 입사해 롯데그룹 기획조정실을 거쳐 다시 롯데케미칼 해외사업을 담당하다 화학군을 총괄하는 대표이사에 올랐다. 롯데그룹 화학군에는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알미늄, 롯데에너지머티리얼드 등이 포함된다.
이훈기 대표는 전임 김교현 부회장이 이끌던 화학군의 사업구조 다각화가 숙제로 제시된다. 2022년부터 지독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지만, 이훈기 대표의 임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만큼 아직 연임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내년 3월로 임기를 마치는 황진구 롯데케미칼 기초소재사업 대표와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의 경우 연임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올해 3분기 롯데케미칼 기초화학은 365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LC USA가 보수로 인한 가동중단으로 1000억원의 손실을 보면서 1070억원의 적자를 냈고, 해외 법인 매각을 추진하는 등 현재 상황도 좋지 않다.
재계에서는 위기설의 중심에 선 롯데케미칼이 인적 쇄신에 나온다면 두 번의 임기를 마친 황진구 대표이사의 교체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년 임기로 지난 2023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이사로 취임한 김연섭 대표의 거취도 불투명하다. 롯데그룹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할 때부더 고가 논란이 있었고, 롯데그룹에 편입된 후에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기대 이하의 성과를 냈다.
올해 3분기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매출은 2114억원, 영업손실은 317억원이다. 전방산업 수요 감소로 생산량과 판매량 모두 감소했고, 환율 하락과 재고평가손실 증가가 적자 전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주가 역시 급락해 3년 전 13만 1500원에서 25일 종가 2만 7000원 수준으로 약 70% 떨어졌다.
한편, 올해 롯데그룹 인사에서 신동빈 회장의 장남 신유열 전무의 거취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지난해 인사를 통해 전무로 승진한 신유열 전무는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으로 근무중이다. 롯데그룹의 신사업을 발굴하고 총괄하는 역할이다. 신유열 전무의 거취에 따라 롯데그룹의 3세 승계 작업 속도를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신동빈 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롯데그룹 유통군의 중장기적 체질 개선에 매진하고 있는 대표이사 3인과, 그룹 위기설의 중심에 선 화학군의 대표이사들의 연말 인사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