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의 정글노믹스(157)
AI 거품은 유익한가?

2025-01-08     장경덕
장경덕 작가·번역가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범용 로봇의 챗GPT 순간이 임박했다”고 했다. 7일 개막한 CES 2025 기조연설에서 그는 자율주행차와 로봇 개발을 위한 AI 플랫폼 ‘코스모스’를 내놓으면서 이같이 선언했다. AI가 가상 세계에 머물지 않고 물리적 법칙을 따르는 현실에서 활동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개장 초 153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후 6% 넘게 떨어졌다. 그동안 AI 혁명에 대한 기대가 과도했던 탓일까?

페이팔과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파운더스 펀드의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은 2011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하늘을 나는 차를 원했지만 그 대신 140자를 얻었다.” 140자로 소통하는 트위터(현 X)를 비롯해 SNS는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지만,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작동하는 과학기술 혁신은 실망스럽다는 말이었다. 물론 플라잉카 기술은 그 후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지금의 숱한 혁신도 더 빠르고 획기적인 진보를 바라는 이들의 눈에는 차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놀라운 과학기술 발전은 흔히 ‘가속의 시대’로 묘사된다. 기하급수적인 기술 발전에 인간과 사회 제도의 적응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그 반대의 관점에서 보는 이들도 있다. 과학기술 혁신은 사실 과거보다 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과 기술을 논하는 작가이자 투자가인 번 호바트와 토비아스 후버도 지난해 그런 주장을 펴는 책(Boom: Bubbles and the End of Stagnation)을 냈다.

호바트와 후버는 하나의 사고 실험을 제안한다. 오늘 태어난 아이는 한 세기 전에 세상에 나온 아이만큼 크고 많은 변화를 경험할 것인가? 자동차와 전기 제품, 합성 물질, 전화 같은 발명품들이 쏟아진 그때보다 지금 더 놀라운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가?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은 하와이 진주만의 미 해군 기지를 공격했다. 그로부터 4년이 채 안 돼 미국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상과학에나 나올 법했던 파괴적인 무기를 실전에 투입했다. 1961년 5월 25일 존 F. 케네디는 1960년대가 지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1969년 7월 그 꿈은 현실이 됐다. 20세기 말 인간의 삶은 그 세기가 시작될 때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어떻게 됐는가? 수많은 미래학자와 공상과학 소설가들이 2020년대에는 개인들이 로봇을 데리고 다니고, 인간이 화성을 오가고, 빈곤 문제는 해결되고, 수명은 한껏 늘어나리라고 내다봤다. 핵분열이나 융합 기술로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고 생산과 서비스의 완전한 자동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요즘의 공상과학은 그처럼 밝은 미래를 그리기보다 기후 재앙이나 초지능이 인류의 절멸을 부르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더딘 혁신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미국인들이 일하는 시간은 한 세대 전과 같은 수준이다. 과학기술 진보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인 미국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노동과 자본 투입 효과를 빼고 기술 혁신으로 이룬 성장만을 가늠하는 지표)은 1920년부터 1970년까지 거의 2%에 이르렀으나 그 후에는 평균 1%가 채 안 된다. 비트의 세계가 아닌 아톰의 세계에서 진정한 혁신의 속도는 추락하고 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주장이다.

최근 AI 투자 열풍은 거품 논란을 부르고 있다. 하지만 저자들은 오히려 혁신의 가속화를 위한 거품의 유용성을 주장한다. 전통적으로 거품은 투자자들의 망상과 광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원의 낭비이자 가치 파괴로 인식되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잘만 활용하면 기술 혁신에 따르는 거품은 경제의 대정체(Great Stagnation)에서 벗어날 강력한 엔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초기 투자자는 거품 붕괴에 따른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전체로 보면 거품은 꺼져도 혁신은 남는다는 생각이다.

정체를 벗어나자면 무엇보다 위험을 회피하거나 제거하는 데 지나치게 집착하고 안전만 희구하는 기풍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예컨대 일반인공지능(GAI)이 인류의 실존적 위기를 부를 것이라는 주장을 안전지상주의라고 비판한다. 이 분야의 기술 진보가 가속화되지 못하도록 막는 것 자체가 오히려 실존적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지금도 단순히 제품의 몇몇 기능을 추가하는 정도의 미세조정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의 미래와 인간의 삶을 바꿔놓을 변곡점은 갈수록 드물어지고 있다. 이들이 주장이 옳다면 대정체에서 벗어날 길은 무엇일까? 그 물음에 답하자면 먼저 지금의 정체를 부른 원인은 무엇인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장경덕 작가·번역가

33년간 저널리스트로서 경제와 기업을 탐사했다. 『부의 빅뱅』 『애덤 스미스 함께 읽기』 『정글 경제 특강』 등을 썼고 『보수주의』 『21세기 자본』 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