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 전력감을 원하는 기업의 채용방식
대내외 경제 여건의 악화로 고용시장이 위축되면서 청년 구직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관세정책, 미・중 갈등 등으로 인해 우리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채용에 나서는 기업이 줄어들고 있으며 채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규모를 대폭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경제는 저성장과 저투자로 인한 저고용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 채용방식도 공채방식에서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경력직을 우대하고 있어 스펙 중심으로 취업을 준비해 온 청년 구직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25년 신규 채용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전국 100인 이상 기업 500개사(응답기업 기준)를 대상으로 2025년 1월 13일부터 2월 5일까지 전문 조사기관에 의뢰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0.8%가 신규 채용계획이 있다고 응답하였는데 이는 202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는 것이 경총의 설명이다. 기업들은 채용계획마저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조사 결과다.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의 70.8%는 ‘수시 채용’만 실시한다고 응답하였으며 신규 채용 시기는 인력 수요가 발생하면 채용한다는 응답이 85.8%를 차지하였다. 대다수 기업이 특정 시기에 무관하게 채용하는 것으로 나타나 공개채용보다는 수시 채용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우리에게 익숙한 상・하반기 정기 공채와 같은 대량 채용방식은 점차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신규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이라고 응답한 기업의 비율은 81.6%에 달하고 있다.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은 2023년 이후 높아지고 있는데, 수시 채용과 더불어 채용시장의 가장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직무 경험 혹은 경력직을 선호하는 추세는 취업준비생에게는 또 다른 허들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채용 연계형 인턴제도가 일반화되지 않은 현실에서 취업준비생이 직무 관련 실무경험을 쌓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는 기업들이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지인을 통하거나 학교 추천 위주의 비공개 채용방식이 일반적이었으나, 한국경제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체계적인 인재 채용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1982년 삼성그룹이 공개 채용형식의 대규모 신입사원을 모집하면서 새로운 채용 트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뒤이어 LG, 현대, 대우, SK 등 5대 그룹이 정기 공채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대기업들이 상・하반기 공개채용을 정례화하고, 인적성 검사와 표준화된 면접 절차를 도입하여 일괄 전형(서류-필기-면접 등)을 통한 체계적인 채용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에는 채용 규모와 공채 일자를 두고 대기업간 눈치 경쟁도 치열해져 매년 고정된 날짜(하반기는 11월 첫 번째 토요일 등)에 거의 모든 대기업이 공채시험을 치르게 되는 관행이 확립되었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 경제환경이 급격하게 변모하면서 대량 채용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게 되어 삼성그룹을 제외하고 주요 대기업의 공개채용 규모는 대폭 줄이고 대신에 필요한 인력을 즉시 채용하는 수시 채용방식이 늘어나게 되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직무 중심의 수시 채용으로 전환하였으며 LG그룹은 2020년 공채를 폐지하여 수시 채용을 도입하였다. SK그룹 역시 2020년 이후 계열사별 수시 채용을 확대하였다. 네이버, 카카오 등 IT 대기업은 초기부터 수시 채용 중심으로 운영하여 공채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그동안 대기업은 대규모 인력 채용을 통해 필요한 인력을 교육(양성)하는 방식을 운영해 왔으나, 직무 중심의 수시 채용 비중이 늘어나면서 즉시 전력감인 경력직을 선호하게 되었다. 대기업도 결국 인력양성보다는 인력 활용에 주안점을 두게 되면서 대학 등 인력공급기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안정적인 일자리의 대명사인 대기업 공채가 줄어들고 경력 중심의 수시 채용이 대세로 등장함에 따라 우리 고용시장은 대변혁에 직면하게 되었다.
대기업의 경력직 우대는 필연적으로 중소기업, 중견기업 전문인력의 연쇄 이동을 가져와 해당 기업의 인사관리에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력 채용방식은 변화하게 마련인데 지금처럼 대기업이 인력양성보다는 즉시 전력감 채용을 우선한다면 아무도 신규인력 양성에 투자하지 않게 되어 채용시장의 변화는 불가피해질 것이다. 결국 경력직 채용 증대가 중소・중견기업의 인력 빼가기로 흐르지 않도록 중장기 인력수급 계획은 물론 대기업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성남시혁신지원센터장 김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