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구조조정 해법 수직계열화
기업 간 금액·지분 놓고 감정싸움만
원재료 나프타 가격 경쟁력 확보·설비 합리화로 NCC 생산조절 가능 “기업간 자금사정·지배구조 등 입장차 커…정부가 촉매 역할 해줘야”
중국·중동발 공급 과잉의 직격탄을 맞은 석유화학 업계가 연말까지 구체적 사업재편 계획을 내기로 정부와 약속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뚜렷한 가닥을 잡지 못한 채 갈등만 깊어지는 분위기다.
안정적 원료 수급과 효율적 설비 운영을 위한 석화사와 정유사 간 수직 계열화 원칙만 세웠을 뿐 서로 입장 차가 너무 커 답보상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나서 촉매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선(先) 자구노력, 후(後) 지원’을 고수하며 뒷짐만 지고 있다”며 원망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여수, 대산, 울산 등 국내 3대 석화 산업단지에서는 지난달 20일 구조개편 협약 이후 단지별 정유사를 중심으로 석화사들의 통합 제안이 활발히 오가고 있다.
석화사가 원유를 다루는 정유사와 손을 잡으면 원재료인 나프타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설비 합리화를 통해 NCC 생산능력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 논의 초기부터 이 같은 수직 계열화가 핵심 방안으로 거론됐다.
국내 최대 석화 산단인 여수에서는 정유사인 GS칼텍스를 둘러싸고 LG화학과 롯데케미칼, 여천NCC의 카드 맞추기가 시작됐다. 최근 LG화학은 여수에 있는 NCC 공장을 매각하고 GS칼텍스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NCC를 통합 운영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 역시 GS칼텍스와 수직 계열화를 추진하거나 여천NCC와 에틸렌을 통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여천NCC 지분을 나눠 가진 한화솔루션과 DL케미칼의 이해관계가 달라 갈등을 빚고 있고, 중심에 있는 GS칼텍스는 석화화학의 미래가 암울해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대산에서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정유 시설을 갖춘 HD현대오일뱅크와 합치는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는 롯데케미칼의 NCC를 HD현대케미칼로 통합하고, 여기에 HD현대케미칼 모회사인 HD현대오일뱅크가 추가 출자하는 방식이다.
울산에서는 정유사인 SK에너지에서 나프타를 공급받는 SK지오센트릭과 대한유화가 NCC를 통합함으로써 수직 계열화를 이루는 구상이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대한유화가 자금 문제로 SK지오센트릭 인수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구조조정 원칙에는 다 공감하지만, 기업마다 자금 사정, 지배구조, 해외 본사와의 이해 조율 같은 복잡한 현실이 가로막고 있어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다”면서 “기업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어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