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참여 시스템도 장애 있어…“근본적 원인은 예산·관리” 반박도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지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내 무인민원발급기에 부착된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전국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 지난 17일 오전 서울의 한 구청 종합민원실 내 무인민원발급기에 부착된 네트워크 장애 안내문. 사진/연합뉴스

잇따라 발생하는 행정 전산망 마비의 책임을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중소기업에서 찾는 움직임이 정부와 여당에서 나타나고 있다. 공공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가 제한됐던 대기업을 끌어들이면 전산망 마비는 사라질 것이란 논리다. 반면 대기업이 맡은 시스템도 여러 장애를 일으킨 전례가 있는데다, 근본적인 원인은 중소기업의 부족한 기술력이 아니라 부족한 예산에 있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2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다르면 현재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에 대기업의 입찰을 허용토록 하는 소프트웨어진흥법 개정안이 추진되고 있다.

소프트웨어진흥법은 지난 2013년부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상출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은 사업 금액과 관계없이 입찰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도입 당시엔 자산 규모 5조원 이상의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했고, 이후 2016년엔 10조원 이상으로 기준이 상향했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한 이 규정은 공공 시장을 대기업이 하청 등을 통해 독식하는 것을 막고, 중소‧중견기업에 제공되는 기회를 넓히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지난 17일 장애를 겪으면서 전국적인 행정망 마비를 일으킨 ‘새올행정시스템’이 중소 IT 업체가 구축‧운영했단 것이 드러나자 대기업에 비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기술력 부족이 원인이란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대기업의 입찰 제한은 원래 중소기업이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여유를 주자는 취지였으나, 기술격차는 줄지 않았고 공공전산망의 잦은 장애의 원인이 됐다는 논리다.

지난 21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첫 번째 문제는 대기업의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참여 제한”이라며 “올해 3월 법원 전산망 마비, 이번 행정 전산망 마비도 모두 중소업체가 개발한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기술력이 공공 전산망 품질을 개선할 것이란 주장에 대해 ‘대기업 만능론’이란 반박도 적지 않다, 대기업 참여 제한이 잇따르는 오류 사태의 본질적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SK주식회사 C&C가 컨소시엄을 꾸린 우정사업본부 차세대 금융 시스템 구축 사업 ▲LG CNS 컨소시엄이 개발을 맡았던 차세대 사회보장 정보시스템 등 대기업이 주도한 공공 서비스도 모두 대규모 장애를 피해가지 못했다. 민간으로 범위를 넓히면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네이버 서비스 장애도 있다.

또 대기업이 정보기술(IT) 계열사를 세우고 소프트웨어 개발을 지시하며 그룹 내 일감을 몰아주던 관행에서 비롯된 국내 시스템통합(SI) 사업 방식의 폐단부터 개선해야 한단 주장도 있다.

민간 IT 서비스 시장은 모든 업종 가운데 내부 거래 비중이 가장 높은 폐쇄적 시장 구조와 하도급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그간 공공 소프트웨어 시장은 중소·중견기업의 유일한 공개입찰 시장 역할을 해왔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대기업의 참여 제한이 행정 전산망 장애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볼 수 없다”며 “기본적으로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 관련 예산을 증액해야 하고, 과업이 너무 자주 변경되면서 품질이 낮아지는 관리 차원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대기업의 입찰 제한이 풀리면 IT 중소기업의 배척과 시장 쏠림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현재 과기부의 동향에 따르면 (대기업의 입찰 참여를 허가하는) 소프트웨어 진흥법 개정안은 준비 단계에 머물러있다”라며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분류해 각계의 목소리를 듣고, 중소기업 경쟁 보호에 대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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