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강소기업협회 조찬포럼…의료계 문제 "이기적 집단 경쟁은 사회악"

26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한국강소기업협회가 주관한 포럼에서 '100세 철학자'로 알려진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100세 넘게 살아보니 행복으로 가는 길은'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사진/김성화 기자
26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한국강소기업협회가 주관한 포럼에서 '100세 철학자'로 알려진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100세 넘게 살아보니 행복으로 가는 길은'이란 주제로 강연을 했다. 사진/김성화 기자

“인생은 60세부터 시작이고, 80살 되기도 전에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보야.” 흔히 하는 말이라도 한 세기(世紀)를 살아온 학자의 깊이감은 다르다.

26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한국강소기업협회가 주관한 포럼에서 ‘100세 넘게 살아보니 행복으로 가는 길은’이란 주제로 강연을 한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104세)는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이는 듯 했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어떻게 저렇게 기억력도 좋으시고 정정하시지”란 말이 들려왔다.

김 교수는 이날 “나는 초등학교 선생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했고, 철학을 공부해서 우리 사회에 정신적 지도자가 될 수 없을까가 내 꿈이었다”며 ‘꿈’을 화두로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갈등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기적 집단은 사회악이다"

꿈을 위해 초등학교 교사에 머물러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김 교수는 일본으로 건너 가 대학에 진학하고, 이어 북한에서 중·고등학교 교사직을 시작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김 교수는 “그 나라에서는 자유로운 교육이란 불가능 했고, 마치 빙판에다 씨를 뿌리듯 의미가 없어 보였다”고 회고했다.

탈북 후 서울에서 다시 교편을 잡은 김 교수는 계속해서 철학 공부를 놓지 않았고, 연세대에서 재직하던 당시 모시던 인촌 김성수 선생을 보며 인간관계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 경험에 대해 김 교수는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 째가 “직장과 인간관계에서 아첨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이 잘못돼야 내가 잘된다, 저 가게가 문을 닫으면 우리 가게가 잘된다, 유능한 사람을 끌어 내리고, 친구들을 비방하고, 정신적으로 뒤지거나 하면 앞선 사람을 훼방 해버리는 경쟁을 하지 말라”고 꼽았다.

세 번째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절대로 편가르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편을 가르는 사람은 진실과 정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는 집단 이기주의가 되고, 그런 사람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떻게 큰 생각을 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26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한국강소기업협회가 주관한 포럼에서 현재 의대증원 갈등에 대해 "집단 이기주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성화 기자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26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한국강소기업협회가 주관한 포럼에서 현재 의대증원 갈등에 대해 "집단 이기주의 경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성화 기자

김 교수는 최근 의료계 갈등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던졌다. 김 교수는 “이기적 집단이 경쟁을 하게 되면 대화를 하지 않고 투쟁을 하게 되고, 현재 의사들의 문제도 그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기주의자는 종교를 열심히 믿어도 필요가 없고, 아무리 수양을 쌓아도 행복해지는 건 없다. 물질적 이기주의만이 아니라 고정관념, 선입견으로 이기적인 사람들은 사회의 벽을 만들고, 그런 이기적 경쟁은 사회의 악이다”고 일침했다.

이어 김 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직장에 처음 들어가면서 ‘인간관계에서 갈등 없이 편하게 살아봤으면’란 생각을 하는데 옳은 생각이 아니다”며 “사회는 갈등을 해결하면서 성장하고, 해결하지 못하면 그 사회가 무너지게 된다”고 말을 더했다.

◆선의의 경쟁과 공동체 의식 "큰 목적을 가져라"

해답은 뻔하다. 개인의 욕심을 목적에 두지 않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연세대에 있을 때 처장이니 학장이니 많은 권유를 받았지만, 친구 교수들 중에 나보다 유능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가는 것보다 더 낫다며 추천을 해줬다”며 “한 평생 연세대에서 살았고 양보를 했어도 손해본 건 없다, 나도 다른 일을 하면 되니까”라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후배 교수들에게 ‘총장되겠다, 학장되겠다, 처장되겠다’ 하지 말고 총장의 존경을 받는 교수가 되라고 말한다”며 “제일 좋은 교수는 총장의 존경을 받는 인격과 학문을 가진 교수이고, 총장의 임무는 나보다 존경 받을 수 있는 학자를 모셔두는 것이며, 그럼 자연히 좋은 대학이 된다”며 선의의 경쟁을 강조했다.

선의의 경쟁을 위한 노력은 공동체 의식과도 연결된다. 김 교수는 “오늘까지 살다 보니 선의의 경쟁보다도 더 높은 경쟁이 있다”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하겠다는 큰 목적을 가지게 되면 내가 희생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 말 또한 흔한 답이라 여길 수 있다. 요즘 시대에 무슨 애국심이냐 되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보다도 나라가 더 잘돼야겠다고 자연히 생각을 처음 나한테 가르쳐준 사람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시다”며 “‘저 분은 나라를 위해서 태어났구나, 국민을 위해서 태어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분은 국가를 사랑하기에 자신보다 국가를 함께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뒤에서 밀어주고 지지해 주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떠올렸다.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26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한국강소기업협회가 주관한 포럼에서 "소중한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을 될 수 있게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성화 기자
김형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26일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한국강소기업협회가 주관한 포럼에서 "소중한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을 될 수 있게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성화 기자

◆"70세에도 성장하고, 80세에도 새출발하자"

김 교수가 이날 이야기의 시작을 ‘꿈’으로 던진 이유가 있었다. 김 교수는 “30대 중반에 연세대를 처음 갔을 때 회갑이 되고 정년이 되면 나이가 많은 줄 알았고, 나도 정년 될 때까지 일할 수 있었으면 바랐다”며 “25년 동안 열심히 뛰다 보니 나도 회갑이 됐고, 나를 보며 다들 늙었다고 하는데, 나는 늙은거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때 김 교수의 건강 비결에 관심이 높았고, 식단이나 습관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날 김 교수가 가장 강조한 건 ‘꿈’이다.

김 교수와 서울대학교의 김태길 교수, 숭실대학교의 안병욱 교수는 ‘철학계의 삼총사’로 불릴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김 교수는 친구들을 회상하며 “셋이 만나면 하는 얘기가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보자’였다”며 “정년퇴직 송별회에 가서 ‘늦둥이로 연세대를 졸업하는데, 졸업생은 사회 나가서 일하게 돼있으니 많이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퇴직 후 정말 약속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글도 많이 썼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82세 쯤 됐을 때 친구 셋이 모여 생각해보니 몇 살쯤 되면 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니 겨우 60은 돼서야 내가 나를 믿고, 다른 사람들도 날 믿어주고, 존경도 받는 거 같고, 자신감도 생기더라”며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반대로 성장이 끝날 때 늙는다. 그럼 성장하는 나이가 몇 살까진가, 쭉 살아보니 75세까지는 성장하더라”고 덧붙였다.

80세에 접어들며 김 교수는 “주어진 일 다 끝내고 눕자, 주어진 일을 다 하고서 늙었다고 생각하자며 살아가니 계속해서 일이 생기고, 인생을 끝내려고 하니 일이 안 끝나더라”며 “잘 가면 95세까지 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95세가 되니 나는 안 늙었더라”고 말했다.

또 이날 본 김 교수는 여전히 승부욕이 있었다. 김 교수는 “아직도 젊은 사람들과 경쟁을 한다”며 “모 매체에서 10명의 작가를 뽑았는데 80살의 내가 들어가 있더라. 글을 보면 60대가 쓴 책들이 형용사도 많고 감정도 풍부해서 제일 좋다. 그럼 내가 왜 끼었나 생각해 보니 사상은 내가 앞섰다. 감정이나 문장은 떨어져도 생각은 내가 앞섰다. ‘잘 가면 100살까지 갈지도 모르겠다, 그래 100살까지 해보자’라 마음 먹었다”고 웃었다.

김 교수를 늙지 않게 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김 교수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늙어서 이제 마무리 지어야 겠다 싶은 게 언젠가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없을 때, 그때쯤 되면 내 인생을 내가 마무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지금보니 1년이 10년만큼 소중하다.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빈 그릇에 무엇을 채워야 하나 보니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을 될 수 있게 채워야 한다, 그게 인생이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직장은 물고기가 강물에서 사는 거 같았는데, 밖에 나와보니 바다에 나온 거 같다”며 “나와 내 가정 걱정만 하면 그만큼 밖에 자라지 못한다, 친구들과 좋은 직장을 생각하면 그만큼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가 있다, 항상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고 살면 자기도 모르게 그만큼 성장할 거다”고 크게 바라볼 것을 조언했다.

지레짐작 두려워하지 말자. 움츠려 들지 말자. 김 교수는 그렇게 말을 건냈다. 김 교수는 “내가 나를 얕볼 필요가 없다”며 “살아보니 항상 새출발하게 된다. 지금도 일기를 쓰는데 지난해와 재작년 쓴걸 보며 ‘그때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실패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지금도 새출발을 한다. 진실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100세도 늙지 않았다. 80살 전에 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보다. 90살쯤 되면 마음대로 생각해라”고 나긋한 듯, 하지만 100세 철학자의 깊이 있는 목소리로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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