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꺾일 줄 모르던 벤처투자가 주춤거리고 있다. 벤처투자조합 결성 건수나 신규 투자금액이 2021년을 정점으로 이후 다소 위축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벤처투자는 벤처투자회사와 신기술금융사를 통해 주로 이루어지는데 신기술금융사를 통한 벤처투자가 더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고금리에 따른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게 가장 큰 요인이다.
벤처투자금액은 2021년 15조 9,371억원에서 2022년 12조 4,706억원, 2023년 10조 9,133억원을 기록하였다. 다만 2023년 분기별 벤처투자금액은 1분기를 저점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2024년 1분기에도 이러한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정부와 업계의 설명이다. 2024년 1분기 벤처투자 규모는 1조 8,787억원으로 2023년에 비해 6% 정도 증가한 수치이다.
그러나 글로벌 벤처투자 동향이나, 고금리 현상,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적인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딥테크 업종, 예를 들면 인공지능(AI), 이차전지, 항공우주 등 소수 업종으로 투자금이 몰리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올해 1분기 AI, 항공우주, 로봇 등 딥테크 분야에 대한 벤처투자 비율이 예년보다 높은 40%를 기록하였다. 다만 전반적인 벤처투자금액이 회복되더라도 일부 업종으로의 쏠림현상은 벤처생태계의 확장성을 저해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바이오・의료기기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한때 바이오 분야에 대한 신규 투자는 전체의 약 28%를 차지했으나 2024년 1분기에는 16%까지 떨어졌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의정 갈등이 깊어지면서 대형 병원과의 협업이 지연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들 분야 벤처기업들은 매출액감소 및 투자 감소로 인한 이중고를 겪고 있는 만큼 별도의 목적성 펀드 조성을 통해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필자는 벤처투자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들과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이들의 고민 중 하나는 신규 자본 출자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점을 토로하였다. 정부가 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을 줄 만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모태펀드의 조기 출자를 통해 민간 벤처펀드 조성을 촉진하기로 한 점은 시장 상황에 비추어 바람직한 정책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재정 여건이 어려운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민간자금을 벤처투자로 유도할 수 있도록 기존 정책과의 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벤처투자 형태는 정부가 주도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민간기능에 맡겼을 경우 과소공급이 우려되어 정부가 개입하는 형태를 이제 바꿀 때가 된 것이다. 건강한 벤처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과 투자는 연착륙을 유도하면서 민간의 역할을 강화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세계가 인정한 글로벌 대기업을 다수 보유한 국가가 유니콘 기업을 육성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우리 벤처생태계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대기업이나 민간 금융기관의 벤처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민간 모펀드 결성에 정책지원 및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올해 2월 1,000억원 규모의 제1호 민간 벤처 모펀드 결성 이후 추가 조성이 이루어지도록 시장 여건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이 안심하고 국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삼성벤처투자가 국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중에서는 투자 1위였지만, 같은 기간 국내 일반 벤처캐피탈(VC) 중 투자 1위인 한국투자파트너스의 2,174억원에 비해서는 투자금액이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나 벤처 지원정책의 촘촘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지원정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책들이 현장에서 지원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미 도입된 제도와 지원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전달체계를 기업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벤처생태계가 좀더 건강해지려면 공공의 시장개입은 줄이고 민간의 역할은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성남시 혁신지원센터장 김세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