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서광의 빛줄기가 찬연하다. 일찍이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보건의료 환경의 혼망 속이지만,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트로트 열풍이 우리네 마음과 안방을 따사로이 데워준다.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즐거운 가락이 오선지에 걸치고, 혼란한 삶의 과정에는 분통터지는 노랫말이 가객들의 목청을 울린다. 그래서 가삼백만인우(歌三百萬人友)라고 한다. 옛 지도자들은 흥심(興心)이 발하면 붓을 들고 시를 읊조렸다. 오늘날 지도자들이나 기업 CEO들은 노래의 장을 연다. 이를 통하여 마음소통의 오솔길을 닦고, 징검다리를 잇는다. 이때에 불리어질 노래들에 대한 사연을 리더들이 알고서 한 자락 스토리를 풀어 놓는다면, 그 오솔길은 얼마나 반질반질해질까. 이런 CEO들에게 펼쳐드릴 오늘의 노래는 나훈아가 절창한 <테스 형!>이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 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 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 형/ 아 테스 형! 아 테스 형!(가사 전문)

2020년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나훈아가 15년여 년 만에 대중들 앞으로 귀환했다. 고희를 넘긴 가객을 향한 팬들의 환호는 열렬했다. 8개월여를 준비한, 2시간 30분 단독공연. 5억여 원의 출연료를 한 푼도 받지 않은 그는 <테스 형!>으로 소크라테스(BC 470~339)를 화자로 불러내서,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리 힘 드는지?’를 물었다. 그날 2360년 전‘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툭 던져 놓고 간 철학자는 아무른 대답도 없었다. 하지만 대중들은 저마다의 답을 마음 판에 새겼다. 그 대답의 열기는 SNS를 달구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날 가요황제의 형님에서 국민의 형님으로 환생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그리스 델포이 아폴론 신전(神殿) 기둥에 새긴 말. 그리스어로 그노티 세아우톤(gnōthi seauton). 어느 현자의 말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를 소크라테스는 인간 지혜가 신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에서, 먼저 자기의 무지(無知)를 아는 철학적 반성이 중요하다고 하여 이 격언을 자신의 철학적 활동 출발점에 두었었다.

그날 나훈아가 공연 중에 한 말이 아직도 귓전에 카랑거린다. 거듭남과 변화의 절박함을 민천성(民天聲, 민초들 목청에 우렁거리는 하늘음성)처럼 울리게 한 주창(主唱).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저마다의 관점·신념·습생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신이 부여한 개별성이고 절대성이다. 이들 중에서 너 자신을 알라, 이 어휘를 반추하지 않아도 될 이들은 뉘일까.

1947년 부산 출생 나훈아(본명 최홍기)는 잘 여물어 때깔이 환하고 반들거리는 예술가다. 대중가수로써 꿈을 파는 가객, 그는 특정행사에 흥을 부추기는 초대에는 정중하게 사양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과 닮은 예술가의 길이다. 지난 12월 17일이 57세로 이승을 덩진 예술가의 탄생 250주년이었다. 벤은 음악의 성인(聖人), 또는 악성(樂聖)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늘 74세의 현생을 살아내고 있는 나훈아에게 붙여진 가요황제란 말을 이에 견주는 것은 과한가. 나훈아의 목청에 언제쯤 자 형!(공자 형), 톤 형!(플라톤 형)이라는 노래가 걸릴까. <테스 형!>은 2020년 발표된 <나훈아의 아홉이야기>(내게 애인이 생겼어요·명자!·테스 형!·딱 한 번 인생·감사·어느 60대노부부 이야기·모란동백·엄니) 중의 대표곡이다.

기업에서 CEO가 마음으로, 목청으로 노래를 하면 사우(社友)들의 마음에는 꽃이 피어나고, 어깨에는 덩실덩실 춤사위가 걸린다. 이런 기업은 흥행한다. 그들만의 흥 문화가 자라고 그 에너지는 세상과 통한다. 아~ 풍성거리는 곡조, 흥업하는 기업의 상향(商香)이여.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 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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