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가 기침하면 일본경제는 감기에 걸리고, 한국경제는 병원에 입원한다’는 말이 있었다. 7~80년대 우리 경제의 미국 의존도가 심했던 시기의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어서 사용되었다. 2000년대 이후 대(對)중국 수출이 미국을 추월하면서 중국 의존도가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미·중 무역 전쟁이 첨예화되면서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두 나라 모두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중 갈등 관계가 단기간에 쉽게 풀릴 가능성이 낮아지면서부터다. 실제로 바이든 시대는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서는 미중 관계가 어느 정도 완화되기는 하겠지만, 중국 견제라는 미국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에 변화가 없어 극적인 화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에 따라 바이든 시대에 미중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이에 따라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 전 KDI에서 나온 ‘바이든 시대 국제통상환경과 한국의 대응전략’이라는 보고서는 미·중 갈등이 지속할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통상관계의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보고서는 바이든의 통상정책은 “다자간 협력과 국제규범을 중시한 자유무역을 지향”하고 있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무역규범을 수립을 강조하고 있어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또한 미국 내 제조업 경쟁력을 제고를 통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공급망(GVC)을 재편하려는 움직임으로 한중일 삼국이 연결된 동아시아 GVC의 변화(혹은 균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동아시아 GVC가 변화한다면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는 분명한 위협 요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담당해 온 중국에 자본재 및 중간재 수출이 많았다. 하지만 통상관계의 변화로 글로벌 생산기지가 중국에서 동남아로 점차 옮겨가게 된다면 최대시장인 중국 수출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 낮아진 중국의 비중을 아세안 국가가 메꾸게 될 경우, 우리에게 새로운 시장이 창출된다는 점에서 기회요인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앞서 언급한 KDI 보고서는 CPTPP에 가입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중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CPTPP 가입은 수출시장의 다변화를 촉진하여 대중 수출의존도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실제로 CPTPP 가입은 기존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하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CPTPP 가입을 추진하기 전에 점검해 보아야 할 사항이 있다. CPTPP의 전신인 TPP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 주도하에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현재 미국은 탈퇴하고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이 다시 가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아직까지 정해진 것은 없다. 미국의 재가입을 지켜보고 난 후 천천히 가입을 추진해도 늦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중국 주도로 출범한 RCEP에 이미 참여하고 있어 많은 나라 사이에 동시다발로 FTA가 체결되면 효과가 반감되는 스파게티 볼 효과(Spaghetti Bowl Effect)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정책으로 미중 갈등이 계속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어느 정도의 강도로 진행될 것인지 아직은 짐작하기 힘들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 양상을 지켜보면서 대응 방안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새우등이 터질 우려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두 나라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담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대응 전략을 수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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