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계에 새로운 말(言)이 탄생했다. 옛날에는 자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거나 잘 부르는 노래를 애창곡 혹은 18번 곡조라고 했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내 노래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더 좋아한다. 내 가수(나의 가수)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특정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팬덤(fandom, 광신자 같은 팬)이라고 한다. 이들의 모임을 팬클럽이라고 한다. 2020년 3월 14일 토요일 저녁 8시, TV조선은 영웅(a hero)을 탄생시켰다. 포천 미용사의 외아들 임영웅(1991년 포천 출생). 내일은 미스터트롯 결승전 시상식, 특별생방송 시청률은 35.7%, 종합편성채널 사상 최고의 시청률이었다. 그 피날레는 우승(眞) 가수 임영웅의 인생곡(출전한 가수가 선정한 곡) '배신자'다.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청춘 내 순정을 뺏아 버리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을까/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얄밉게 떠난 님아/ 얄밉게 떠난 님아/ 내 순정 내 행복을 짓밟아 놓고/ 얄밉게 떠난 님아/ 더벅머리 사나이에 상처를 주고/ 너 혼자 미련 없이 돌아서서 가는가/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

이 곡은 1969년 가수 도성이 부른 '사랑의 배신자'. 같은 해 '배신자' 제목으로 배호가 불렀다. 같은 노랫말 같은 가락이었다. 그래서 원곡 가수를 도성·배호로 착각한다. 앞의 제목은 도성, 뒤 제목은 배호를 원곡 가수라고 해야 하리라. 이 노래 작곡가 김광빈은 배호의 네 번째 외삼촌, 종로1가 궁전캬바레에서 노래도 했고, 피아노와 아코디언 연주자로 이름을 날렸다.

2020년 대한민국 국민들의 한(恨)을 흥(興)으로 발산시키는 내일은 미스터트롯 프로그램이 시동을 걸었다. 1만7000여 명의 참가 가수를 태운 거대한 유행가 함선(艦船). 이 유행가 함대(艦隊)는 국민 감흥의 바다 위에 정지했고, 3월 14일 최종발표를 했다. 오디션 프르그램의 대미(大尾), 그야말로 대양(大洋)을 향한 새로운 출발선에 다시 선 것. 지금부터 100년 1000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오래 흘러온 노래는 오래 흘러간다.

그날 임영웅이 영웅으로 거듭났다. 대한민국 최초의 공개 오디션을 통한 트로트 황제에 등극한 것. 심사위원 마스터 총점, 대국민투표를 합산한 중간점수에서, 찬또배기 이찬원에 이어 2위를 달렸던 그는 실시간 국민투표에서 역전승을 했다. 그에게는 상금 1억 원, 수제화 200켤레, 대형 SUV 스용차와 안마 의자, 조영수 작곡가의 신곡 등 부상(副賞)이 전해졌다.

'배신자' 작곡가 김광빈은 2008년 향년 86세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 1922년 평북 신의주에서 태어나 중국 산둥성 지난(제남)중고교와 지난대학 음악과를 졸업했다. 해방광복 후 귀국한 그는 1950년대 김광빈악단을 조직하여 우리나라에 유럽풍음악을 알렸으며, MBC 초대 악단장을 지냈다. 당시 그의 형 김광수(배호의 셋째 외삼촌)이 KBS 악단장이었다. 배호는 김광빈에게 드럼을 배웠고, 그의 악단에서 활동했다. 배호의 첫 음반 취입곡 '굿바이'와 '사랑의 화살', 데뷔곡이자 히트곡인 '두메산골'도 김광빈 작곡이다.

배호의 본명은 배만금, 아명은 배신웅이다. 그는 1942년 중국 산동성 제남시에서 독립투사 배국민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해방 후 1946경부터 서울 창신동에서 살다가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갔으며, 1955년 서울로 와서 영창학교(성동중)를 다녔다. 이후 부친 별세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 모자원에서 생활하면서 삼성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가 1956년 서울로 와서 외삼촌 김광빈에게 드럼을 배우며 대중음악에 입문하였다.

2020년 대한민국은 유행가에 흥(興)하고, 분(憤)하고, 통(痛)한다. 치세락(治世樂)·난세분(亂世憤)· 망국탄(亡國嘆). 평화로운 시대에는 즐거운, 어지러운 시대에는 분통 터지는, 나라가 망한 때는 한탄의 노래가 불려진다. 유행가는 역사다. 시대이념과 민초들의 감성을 버무린 돛단배. 오래 흘러온 곡조가 오래 통창(通唱)된다. 트로트 열풍시대, 기업마다 애창곡 노래가 생겨나면 얼마나 좋을까. CEO와 사우들이 어울려 우렁우렁 함께 부르는 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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