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소통하는 CEO가 성공하는 시대가 왔다. 막걸리 한 잔에 걸치는 한 소절 유행가락이면 감흥의 맛깔이 더욱 빛나리. 그런 대표곡이 2019년 류선우가 지어서 강진의 목청에 걸친 ‘막걸리 한 잔’이다. 이 노래를 2020년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 영탁(1983년 문경 출생, 본명 박영탁)이 불러 원곡가수와는 또 다른 환호를 받았다. 곡의 메시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사랑. 어머니에 대한 애정·막내아들에 대한 대견스러움이 소절마다 녹아 있다.

온 동네 소문났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장가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 더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들 많이 컸지요/ 인물은 그래도 내가 낫지요/ 고사리 손으로 따라주는 막걸리 한잔/ 아버지 생각나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 아장아장 아들놈이 어느새 자라/ 내 모습을 닮아버렸네/ 오늘따라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날처럼 막걸리 한잔.(가사 일부)

노래의 모티브와 소제는 막걸리다. 한 잔의 술, 인생사 희로애락의 동반. 노랫말에는 아버지가 그 아버지의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원망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한다. 막걸리를 매개로 감흥과 눈물을 버무린다. 막걸리는 찹쌀과 멥쌀·보리·옥수수·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배합하여 발효시켜서 걸러 낸 술이다. 맑은 술을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서 만든 술. 빛깔이 탁하고 알코올 성분은 낮다. 발효된 재료를 주물러 거르면 빛깔이 흰색으로 탁하여 탁주·탁배기로 부른다. 막 거른 술이라 하여 막걸리, 희다고 하여 백주, 집마다 담그는 술이라 하여 가주, 특히 농가에서는 필수적인 술이라 하여 농주 등으로 불린다.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에는 좋은 술을 뜻하는 미온(美醞)·지주(旨酒) 등으로도 적었고, 제주도에서 모주(母酒)라고도 부른다. 왕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라는 말. 인목대비(영창대군의 생모, 1584~1632)의 어머니 노씨 부인이 광해군 때 제주도로 귀양 가서 술지게미를 우려낸 막걸리를 만들어 값싸게 팔았는데, 왕비의 어머니가 만든 술이라고 대비모주(大妃母酒)라 부르다가 나중에는 대비를 빼버리고 그냥 모주라고 불렀다. 이 막걸리의 주재료인 쌀은 1960년대부터는 식량부족으로 술 원료로 사용이 금지되었다가 1970년대 후반 쌀 막걸리가 다시 만들어졌고, 2020년에는 쌀 막걸리가 전통주의 대표 브랜드로 대중들의 컬컬한 목청을 시원하게 축여준다.

우리 고유의 술(막걸리)은 유행가요의 주요 모티브였다. 1932년 채규엽은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로 식민지 시대 민초들의 가슴팍을 후벼 팠다. ‘이 술은 눈물이냐 긴 한숨이냐/ 구슬프다 사랑의 버릴 곳이여...’1956년 황정자는 ‘오동동 타령',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로 6.25전쟁으로 상처 난 민초들의 빈 가슴을 위무했다. 이 노랫말에 걸친 동동주도 막걸리의 하나다. 1960년대에는 김용만이 ‘술 전쟁>이란 절창으로 비틀거리는 저자거리를 휘저었었다. 1994년 최백호는 ‘낭만에 대하여’로 노래 속의 막걸리를 위스키로 격상시킨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서 도라지 위스키 한잔을 걸치고, 짙은 색소폰 소릴 들으며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진다.

유행가는 세태의 변화를 치렁치렁 달고 있는 세월 따라 자라는 나무이기도 하고, 노래가 탄생한 시대의 완료된 보물단지이기도하다. 민초들의 술잔, 막사발이기도 하고 세월이라는 강물 결에 흘러가는 돛단배이기도 하다. 태평한 노래, 분통 터지는 노래, 한탄하는 노래는 인류 역사의 7000여 년 궤적에 걸쳐서 흘러갔거나 흘러왔거나 흘러갈 감흥들이다. 트로트 열풍이 부는 이 시절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막걸리 한 잔’을 읊조려보면서 송강의 권주가도 곁들어보자.

정철(1536~1594)은 이해타산이 혼탕된 세상을 풍자하는 장진주사(將進酒辭)를 읊었다. 그의 시 속의 술도 막걸리다. ‘한잔 먹세 그려, 또 한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술잔을 헤아리면서 무진 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에/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꽃상여에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속새·떡갈나무·백양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가는 비·굵은 눈·쌀쌀한 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술의 기원은 1만2000년 전. 중국 북부 허난 지역 신석기마을 지아후(Jiahu)에서 발견된 항아리 흔적이다.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지 발표(2004.12)에 의하면 포도·호손열매·꿀·쌀로 만든 발효 음료는 BC 7000~6650년경에 생산되었단다. 서양음악의 묘미는 선율에 있고, 우리 유행가의 묘미는 오선지에 드러누워 있는 노랫말이다. 이 매력과 마력을 합친 노래가 바로 ‘막걸리 한 잔’, 유행가의 진수다. 오늘 한 잔의 막걸리를 곁들이며 축배를 들자. 노래하는 CEO를 위하여!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 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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