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은 간다' 노래 속 봄은 갔다가 다시 오는 봄이다. 하지만 인생의 봄은 한 번 가면 다시 되돌지 않는다. 늦가을 마른 낙엽이 서걱거리면 물빛도 시려지고, 봄날에 들풀들이 연두 빛 옷을 걸치면 바람결도 초록으로 불어온다. 이 노래는 1953년 6.25전쟁의 불화염이 멎은 직후에 발표되었다. 손로원이 노랫말을 짓고 박시춘이 곡을 얽어서 백설희의 목청을 타고 세상에 나온 이 노래는,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 경연에서 되살아났다. 최종결승전 6위를 한 장민호의 세련된 무대연출과 촉촉한 감흥 목소리는 70여년의 세월 강을 흘러와 대중들의 눈 자락에 애련의 이슬이 맺히게 했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 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가사 1절)

'봄날은 간다' 노래 속 봄날이 현재진행형으로 지나가던 때는 1953년, 봄꽃이 만발하였다가 흐느적거리면서 지나간 뒷자락 가을의 언저리다. 6.25전쟁 직후 대구에서 백설희가 발표한 봄의 서정(抒情). 이 노래는 우리나라 시인 100명이 응답한, 광복 이후의 대중가요 중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 1위곡이다. 멜로디 부문 1위곡은 '이별의 부산정거장'(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이었다. 이러한 노래들은 노래방에서 불리어진 순위와는 비례하진 않았다.

'봄날은 간다' 1절 가사 뒤에는 중간대사가 읊조려진다. ‘봄은 머물지 않고 가버리는 것이지만/ 내 마음속의 그윽한 향기만 남기고/ 밤에는 푸른 별들이 속삭여 주고/ 낮에는 맑은 시냇물 가에/ 파랑새 노래 소리 정다운/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무릎을 꿇고서 우는 소녀는/ 백조의 포근한 나래 밑에서 잠들었다/ 은혜로운 달빛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밤/ 나리꽃 짙은 향기 풍겨나는/ 소녀의 아름다운 꿈은/ 천사는 고이 간직해 두었으리라.’ 노랫말 2·3절이 뒤를 잇는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가사 2·3절)

당시 26세였던 본명 김희숙, 백설희는 1927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6세이던 1943년부터 조선악극단 음악무용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녀는 영화배우 황해(1922~2005. 본명, 전홍구)의 아내이며, 가수 전영록(1954~. 서울 출생)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걸그룹 티아라 전보람의 할머니이기도하다. '봄날은 간다'는 백설희가 유니버설레코드 시절에 '아메리카 차이나타운'과 더불어 내놓은 작품이다. 그녀는 2010년 향년 83세를 일기로 고혈압합병증으로 이승을 등졌다. 지나간 봄날의 꽃잎처럼.

봄은 가도 사람은 남고, 사람은 가고 오지 않아도 그의 노래는 대중의 가슴속에 흐르며 애창된다. '봄날은 간다'를 흥얼거리면서 짧은 인생보다 더욱 긴(영원하기도 할) 예술을 음유해 본다. 하늘이 내려 준 계절은, 꽃 피는 봄날에는 가슴을 설레게 하고, 먹구름 소나기 속의 천둥번개는 심장을 두근거리게 한다. 오색창연(五色蒼然)한 갈바람을 마주하면 인생의 무게를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다시 흰 눈이 내리면 지나간 인생의 봄날을 회억하며 '봄날은 간다' 노래를 읊조리게 된다. 아 불그레한 인생이여, 13월의 봄꽃을 기다림이여.

여성 원곡 가수의 노래를 리메이크로 부른 장민호는 1977년 부산 출생 인천 성장, 본명 장호근이다. 그는 20세이던 1997년~1999년까지 그룹 유비스, 2004년~2005년까지 그룹 바람 멤버로 활동한 기성가수 23년차다.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 오디션 경연을 거치면서, 그는 PD 픽(pick. 선택하다)이었다는 풍설(風說)이 있었다.

'봄날은 간다' 노래는 작사가 손로원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유언처럼 남긴 말이 모티프가 되었다. '우리 로원이 장가드는 날, 나도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장롱에서 꺼내서 입을 거야. 내가 열아홉에 시집오면서 입었던 그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손로원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다가 1953년 전쟁 막바지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이 노랫말을 완성했단다. 아~ 그리운 어머니의 봄날이여.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 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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