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전기차와 관련한 이슈가 뜨겁다. 지난해 말 LG전자가 캐나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을 개발·생산하는 합작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하면서 전기차 시장이 들썩였다. 글로벌 가전업체인 LG와 세계적인 자동차부품회사가 합심해 차세대 자동차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기차 개발 능력을 갖춘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할 수 있다는 걱정에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현대차그룹이 세계 최대 IT기업인 미국의 애플사와 협력해 전기차를 생산할 것이라는 뉴스를 전했다. 최초로 알려진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먼저 기아자동차의 조지아 공장에서 애플카(가칭) 생산을 담당하고, 애플은 기아에 약 4조원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지아 공장에서 2024년까지 연간 최대 40대만대 규모의 전기차 전용 생산 설비를 구축한다고 전해졌다.

현대차와 애플의 협력 소식에 시장의 반응은 크게 갈렸다. 긍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현대·기아차의 약한 고리인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분야의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미래 전략이 ‘모빌리티 서비스’라고 밝히고 있어 애플과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그동안 애플이 기술을 전수하지 않고 하청업체에 생산만 맡겨 온 과거 사례를 볼 때 결코 대등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따라서 기아차가 애플의 단순한 하청업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차와 애플의 협력 소식이 전해진지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 8일 현대차는 공시를 통해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결정된 바는 없다”면서 “애플과 합작 협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유추해본다면 현대차와 애플이 전기차 생산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협상이 일단 결렬된 것으로 추정된다.

협상이 중단(혹은 결렬)된 원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미국의 일부 언론에 따르면 현대차가 애플과 애플카 생산을 협의하면서 이 사실을 사전에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에서는 현대차를 스티브 잡스 이후 애플이 고수하고 있는 ‘신비주의’의 희생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협의 도중에 언론에 공개되어 애플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사실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애플이 지향하는 하청업체 관리 시스템을 고집했다면 현대차그룹도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당장은 전기차 분야에서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쌓아온 성과를 감안하면 추격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애플의 단순한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기지로 전락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협상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올해 새로운 플랫폼인 E-GMP를 적용한 신형 전기차 모델 3종을 내놓을 예정이다. 특히 이 달에는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차 CV 티저 이미지가 공개되는 등 전기차 시장에서 존재감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강점을 지닌 애플과 협력 관계가 무산된 점이 다소 아쉽지만, 이는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을 발굴해 보완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애플이 자사의 자율 전기차 생산을 위해 글로벌 자동차업체들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상황은 녹녹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닛산과 협상도 무산되었고, 폭스바겐도 애플과 협력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다고 전해진다. 현대차그룹도 언급한 자동차업체들 만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이룩한 성과를 감안한다면 전기차 시장의 경쟁에서도 애플 없이 충분히 실력 발휘가 가능하다. 추후에 애플과 재협상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현대차그룹은 이점을 염두에 두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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