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탄생 모티브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 창의와 융복합 창조의 잣대를 덜어대더라도 가름하기는 쉽지 않을 터다. 유행가 트로트는 1곡7재의 보물, 작사·작곡·가수·시대·사연·사람·모티브가 요소다. 이 중에서 노랫말을 짓고 멜로디를 얽는 사람들을 합쳐서 오늘날은 작품자라고 한다. 1989년부터는 작사·작곡가협회를 한국가요작가협회로 통합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공·사적인 만남에도 인연이 있듯이 가요 작품자도 연분이 있고, 이들의 궁합과 가수와의 연분이 대중들의 인기온도계를 오르내리게도 한다. 이런 노래의 대표곡이 2013년 김연자의 목청을 통하여 세상에 나온 '아모르파티'다. 스스로 작사의 신이라고 칭(稱)하는 이건우가 노랫말을 얽고, 명콤비 윤일상이 곡을 엮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 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인생이란 붓을 들고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말해 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여/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 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 파티 아모르파티.(가사 일부)

이 노래를 부를 당시 김연자는 55세였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의 세월 강, 오선지 위에 먼저 살다 간 철학자의 주창이 노랫말로 펼쳐졌다. 대중가요 작품자들 생각의 진화다. ‘신은 죽었다’고 설파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운명애(스스로의 운명을 사랑하라)가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하여 세상에 나왔다가 유행가수의 목청을 통하여 대중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이 노래를 2019년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트롯여친(하유비·숙행·송가인·김희진)이, 2020년 미스터트롯에서 김수찬이 열창을 한 곡조다. 리틀남진·끼수찬·프린수찬의 간들간들 율동과 김연자의 도포자락 댄스를 연상하면서 '아모르 파티' 노래에 취해보시라.

우리나라 대중가요는 1920년~2020년, 100년간 진화해왔다. 구한만 토색·식민지 시대 왜색·해방광복 및 6.25전쟁기의 양색·베트남 전쟁기의 신토색이 그 변화다. 이 과정에서 1960년대에 활발하게 불린 유행가 트로트를 본격적인 신토색(新土色), 한류의 갈래로 친다. 이 과정에서 철학이 유행가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공자와 그 후학들이 지은 책, 예기(禮記)에 설파한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는 말을 '아모르 파티'(Amor Fati)에 담은 것. 그래서 10대부터 100대까지 이 노래에 덩실덩실 더덩실~ 하는 것이다.

아모르파티는 ‘필연적인 운명을 긍정하고, 이것을 감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것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상.’ 이런 생각을 하면서 김연자의 빙글빙글 도포치맛자락 율동에다가 노래 가락을 걸쳐보시라. 노래의 키워드는 빈손·소설 같은 애기·모든 걸 잘 할 순 없어·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붓을 들고 그리는 인생·방황하던 시간·거짓말·쏜 화살·추억·나이·거품·지나간 사랑·연애·결혼·눈물·이별’이다. 이 모든 단어를 합치면 아모르 파티(Amor Fati, 내 운명에 대한 사랑)가 된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는 '즐거운 학문'·'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에서 아모르파티를 언급하였다. 자라투스트라는 독일어 자라투스트라(Zarathustra), 영어 조로아스터(Zoroaster)다. 기원전 이란의 북부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는 예언자. 그의 이름을 딴 종교가 조로아스터교(배화교, 拜火敎)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서 철학을 말했다. 그 철학이 이건우·윤일상을 통하여 유행가로 만들어지고 21세기의 새로운 트렌드의 문을 연 것이다. 사람은 운명과 숙명을 구분 지으려 하지만 신(神)은 한 사람의 운명과 숙명을 한 쪽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다.

작사가 이건우는 1961년 출생,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교수다. 외국어대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작사가의 길을 걷는다. 그는 히트곡 제조의 신수(神手)다. 작사가는 언어를 만지작거리며 단어의 촉감과 무게를 저울질 하고, 세태의 모양을 글자로 조합하며 오선지 위를 기승전결로 얽어 간다. 3분 내외의 시간, 조충전각(雕蟲篆刻)이다. 뾰족한 가시 끝에 벌레를 조각하고 글자를 아로새기는 것과 같다.

김연자는 1959년생, 1974년 16세에 '말해 쥐요'로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광주 수피아여고를 졸업하였으며, 인기는 1981년 '노래의 꽃다발' 트로트 메들리 음반을 발표하면서다. 이후 '진정 인가요', '수은등', '씨름의 노래'(천하장사), '아침의 나라에서', '10분 내로', '쟁이쟁이' 등 히트곡을 이어간다. 생각과 생각을 합치면 사유의 무늬가 생기고, 그 무늬를 얽으면 노래가 된다. CEO들이여 사우들 생각의 무늬를 창조적으로 얽어보시라.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 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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