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빼빼로데이 행사를 하는 11월 11일에 중국은 광군제로 들썩인다. 역사는 빼빼로데이가 오래되었지만 지금은 광군제가 더 유명하다. 광군제가 단기간에 주목을 받게 된 원인은 단연 매출 규모다. 광군제가 처음 시작한 2009년 5천만 위안을 기록한 알리바바는 지난해 4982억 위안(약 83조 9천억 원)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12년 만에 만 배 가까이 급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광군제의 상상을 초월하는 매출액은 14억 중국 인구를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광군제의 진면목은 어마어마한 물동량을 일산분란하게 처리하는데 적용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적 진보에서 찾아야 한다.

일례로 빅데이터의 활용은 상당히 경이롭다. 알리바바는 지난 10년간 축적한 7억 명이 넘는 빅데이터를 AI 기술과 결합해 활용하고 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계절별 특징과 매출 시간, 소비자층의 분석 등을 통해 저장된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물류 조건을 도출한다. 이를 바탕으로 광군제 행사 기간에 밀려드는 주문을 정확하고 빠르게 배송하고 있다.

굳이 광군제 이야기를 소환한 이유는 이 행사가 현재 중국이 지닌 첨단 기술의 현주소를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세대 산업과 관련된 AI, 빅데이터, 5G, 신재생에너지, 소비자용 드론, 전기차 및 수소차 등은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이거나 무섭게 성장하는 분야다. 따라서 이를 활용한 산업도 ‘중국 제조 2025’ 전략 아래서 차츰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단순한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중국의 기술력이 이토록 빠르게 성장한 원인은 무엇일까? 중국이 차세대 산업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중앙집권적인 정치제도와 경제 및 기술 발전의 후진성에 있다. 다시 말하면 기존 산업에 대한 추격보다는 차세대 산업에 국가적인 역량을 집중해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줄여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AI와 빅데이터,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선진국에서도 새롭게 시작하는 분야로, 중국 입장에서는 선진국과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현재 미래 산업 분야에서 가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분야는 전기차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의 자동차업체가 글로벌 자동차업체의 내연기관차 수준을 따라 잡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점을 간파하고, 차세대 자동차인 전기차에 대해 소비자 보조금 지급하고 생산자에게 전기차 할당량을 부과하는 등의 정책을 펼쳐 전기차 산업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2018년 이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정부의 주도하에 진행된 첨단산업 육성 전략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과 갈등이 심해짐에 따라 중국의 미래 전략은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첨단 산업의 대표주자인 화웨이는 미국의 끊임없는 견제로 회사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또한 중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굴기’도 미국 등 주변국의 협조가 없다면 달성이 불가능한 과제다. 첨단 산업의 핵심 소재인 반도체의 자립이 없다면 ‘중국몽’은 일장춘몽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중국 미래 전략의 본질적인 위기는 따로 있다. 바로 경제와 정치체제의 괴리에서 발생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의 장기집권 시나리오가 진행되면서 경제 부문의 희생이 쌓여가고 있다. 내부 결속을 위해 홍콩 민주화를 억누르는 대가로 전 세계로부터 경제적 고립을 자초했다. 또한 정부 정책에 쓴 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인 알리바바의 성장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중국 내 혁신기업들은 차츰 성장 동력을 잃게 될 것이다. 

중국의 첨단산업은 ‘중국몽’이라는 이름하에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지금은 경직된 정치 체제로 인해 그동안 쌓아온 경제적 성과가 무너지게 될지 모를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의 제제로 중국 첨단산업의 성장이 제약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본질은 경제 발전 속도에 정치 체제가 따라오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내부 요인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합리적인 시각이다.  

‘모순은 체제 내부에서 발생한다’는 마르크스의 역사철학 이론이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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