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인 KPMG는 매년 글로벌 ‘자동차산업 동향 보고서(GAES)’를 내고 있다. 지난해까지 21년째 발간하고 있는 이 보고서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경영진 1000명과 각국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를 토대로 자동차산업의 흐름을 분석하고 예측한다. KPMG 보고서는 학술적인 논문과 달리 현장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고 있어 매년 발간될 때마다 자동차산업 동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된다.

특히 ‘2020 글로벌 자동차산업 동향 보고서’에서는 흥미로운 사실을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뒤인 2030년에는 내연기관차 비중이 대폭 줄어들고, 전기차, 수소차, 하이브리드 등 새로운 동력기관 자동차가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설문의 응답자들이 가장 점유율이 높을 것으로 본 차량은 순수전기차(BEV)로 29%를 차지했다. 이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25%, 수소전기차(FCEV) 24% 순이었다. 내연기관차(ICE)는 22%에 그쳤다.

여기서 눈에 띄는 점은 향후 10년 내 수소차가 내연기관차를 추월한다는 조사 결과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전기차의 경우 지금도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어 내연기관차 추월은 충분히 예상되지만 수소차가 이처럼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것이라는 사실은 다소 의외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2019년 세계 자동차 생산량 9323만대에 2030년 수소차의 비중을 대입해 보면 대략 2200만대 이상 생산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KPMG 보고서가 현실화된다면 늘어나는 수소차 만큼 수소 에너지 확보와 인프라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수소차 상용화에 성공했으며, 2019년부터 2년 연속 수소차 글로벌 판매 1위를 달성했다. 특히 지난해 현대의 수소차 넥쏘는 글로벌 판매량 6781대로 토요타 미라이(1960대), 혼다 클래리티(263대) 등을 압도했다. 이처럼 늘어나는 수소차 생산에서 우리나라가 중요한 생산 국가로 자리 매김하고, 이를 기반으로 수소 관련 산업이 신 성장동력산업의 하나로 발전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하지만 수소차 운행을 위한 제반 인프라 문제로 시선을 돌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실 우리나라는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인 준비가 미흡하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초 혁신성장을 위한 전략투자 분야의 하나로 수소 산업을 선정하고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수소 산업 전 분야를 고르게 육성해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로드맵 발표 이후 2년 여 지난 현재 진행 상황은 더디기만 하다.

당장 시급한 수소 충전소 문제만 해도 정부의 의욕과는 달리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 2019년 86개소의 수소충전소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36개소에 불과했으며, 지난해에도 100개소 구축을 목표로 했으나 현재 총 누적 63개소에 머물고 있다. 특히 충전소가 소재한 지역도 수도권 지역에 밀집해 지방에서 충전소를 이용하기에는 여전히 불편하기만 하다. 실제로 수소차 충전 대기시간이 2019년 1시간 이상 걸렸는데, 지난해 충전소가 많이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1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소 충전소 구축이 수소차 증가속도를 따라가질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구축된 충전소의 이용 효율성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충전소는 교통량과 주거 밀집지역 혹은 인구 이동이 많은 곳에 설치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도심 입지규제, 시설 지역 주민의 반대 등으로 접근이 어려운 외곽 공공부지에 집중되고 있어 효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충전소 건립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법적인 문제와 더불어 구축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득이 필요하다. 정부가 올해 말까지 수소충전소를 180곳 이상 구축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현대자동차 양재 충전소 재개장을 앞두고 서초구민 일부가 반대해 난항을 겪었던 사례에서 보듯이 곳곳에서 지역 주민의 반발에 부딪혀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KPMG 보고서에서 보듯이 수소차의 대중화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다가오고 있다. 민간부문에서 수소차 생산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나,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인프라(수소 충전소) 구축은 법적·제도적 개선 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기본적인 충전소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수소차 산업 육성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도심 충전소를 포함한 전국에 촘촘한 수소충전소 구축을 위해 패스트트랙이라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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