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최근 독일의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이 테슬라에 이어 두 번째로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직접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배터리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폭스바겐과 테슬라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도 배터리 생산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조만간 메이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속속 배터리 제조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아 기존 배터리 제조업체와 경쟁이 불기피할 전망이다.

자동차 제조업체의 배터리 생산 계획이 구체화됨에 따라 이른바 ‘K-배터리’라 불리는 우리나라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사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는데 큰 이견이 없었다. 그동안 연구·개발 및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술을 축적하고 시장을 넓혀왔다. 일본 업체들을 멀찌감치 따돌렸고,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거세지만 품질 면에서 우위를 보이며 앞서나가고 있다.

2020년도 전 세계 연간 누적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을 봐도 우리 업체의 활약이 돋보인다. 비록 1위는 중국업체 CALT가 차지하고 있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 2위, 삼성 SDI가 5위, SK이노베이션이 6위에 자리 잡고 있다. 나머지는 3위인 일본의 파나소닉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업체다. 중국 배터리업체가 대부분 내수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 K-배터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전기차가 41만대 이상 팔린 유럽 시장에서 우리 업체의 배터리가 70%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세계 1, 2위 전기차 생산업체인 테슬라와 폭스바겐이 배터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겠다고 선언한 배경은 다음의 몇 가지 요인으로 설명된다. 첫째, 전통적으로 자동차 생산업체들은 ‘갑’의 위치에서 협력업체를 관리해 왔다. 그런데 전기차 시대에 접어 들면 핵심 부품인 배터리 생산업체에게 갑의 지위를 위협받게 된다. 따라서 자동차 생산업체가 지금까지 누려온 갑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배터리 생산 내재화를 추진하게 된 것이다.

둘째, 자동차 생산업체의 경쟁력과 관련이 있다. 내연기관차의 생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품은 엔진인데, 글로벌 자동차 생산업체 중에서 엔진을 외주로 하는 업체는 없다. 엔진의 경쟁력이 곧 완성차의 경쟁력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총 동원해서 엔진을 개발해 왔다. 하지만 전기차 생산에서는 배터리가 내연기관차의 엔진에 해당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따라서 전기차 생산체제로 전환되면 배터리의 성능이 자사의 경쟁력이라는 판단 하에 배터리 내재화에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셋째, 자동차 생산업체의 수익성의 문제이다. 최근 들어 배터리 가격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전기차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40% 정도에 이른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기차를 생산하면 할수록 배터리 업체가 수익의 많은 부분을 가져가게 된다. 자동차 생산업체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구조임에 틀림이 없다. 배터리를 전기차 생산의 수직계열화에 포함시켜 수익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기차 배터리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분야로 자동차업체가 지금 당장 뛰어 든다고 해도 금방 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은 전문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폭스바겐이 배터리를 자체 생산하기까지는 앞으로 7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향후 전기차 생산에 가속이 붙기 시작하고, 배터리 내재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그 기간이 훨씬 단축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자동차업체가 배터리 생산에 참여하기 시작한다면 그 동안 이 분야에서 승승장구해온 우리 배터리업계에게는 분명한 위협 요인이다. 이제 배터리 생산업체도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새로운 전략을 수립한다. 먼저 가격 경쟁력 뿐만 아니라 주행거리, 안정성 등에서 후발 주자인 자동차 생산업체들과 격차를 벌릴 수 있도록 배터리 기술 고도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다음으로 배터리를 중심으로 전기차 전장 분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해 경쟁력을 선점해야 한다. 다행이 우리나라 배터리 업체인 LG, 삼성, SK는 세계적인 IT기업들로 충분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이 분야로 진출이 크게 어렵지 않다. 차세대 자동차로 전기차가 대세로 떠오르면 기존의 내연기관차 생산업체와 구글, 애플과 같은 글로벌 IT업체들 간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다. 이제 배터리업체들도 그동안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배터리 시장에서 벗어나 전기차 시장 전체를 놓고 경쟁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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