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한국대중가요 100년 최초의 그랑프리 트롯 어워즈에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대상을 받았다. 2020년 미스트롯·미스터트롯 총결산 무대, 이 행사는 우리 대중가요 유행가와 가수를 총 망라한 이벤트였다. 1941년 서울 출생, 1959년 19세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를 하여 61년 동안 무대에 섰던 가요 여제(女帝)도 이 날은 흔들렸다. 노래 인생 총결산의 무대라고 여겼기 때문이었을까. 그녀의 3대 애착곡(愛着曲)은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다. 그 중에 단 1곡을 들어 올리면 바로 '동백아가씨'다. 이 곡은 2019년 미스트롯 경연에서 김양이 ‘하수의 무리수팀’(한가빈·설하수·홍예나·라니·은표·조은별)으로 절창을 했던 곡조다.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한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울다가 지친 동백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가사 1절)

1절 뒤에 이어지는 낭랑한 중간대사는 선율과 노랫말을 감칠맛 나게 이어준다. ‘물새 날고 파도치는 아주까리 섬/ 빨간 열매 정을 맺는 아가씨 귀밑머리/ 뱃사공아 노를 저어 떠나면 언제 오나/ 심술치마에 담은 이 동백꽃 누구를 주랴.’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한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가사 2절)

이 노래는 색소폰 연주곡 중의 백미(白眉, 중국 촉한의 마량 5형제 중에 눈썹이 흰 마량이 가장 뛰어난 데서 유래)다. 이 노래는 입으로 읊조리면 감흥이 가슴으로 녹아 흘러내린다. 서양 대중노래의 묘미가 선율에 있다면, 우리 것은 노랫말에 감흥이 매달려 있다. 노래를 하는 화자가 주인공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 서양 노래는 오선지 위에 선율이 올라앉은 격이고, 우리 유행가는 선율 위에 민초들의 삶을 젖은 빨래처럼 걸쳐놓은 것과 같다. 이 노래는 프랑스의 실제 이야기 소설 '춘희'가 우리나라로 건너와 '동백아가씨'로 번역된 뒤, 유행가로 환생된 후 다시 같은 이름 영화로 제작되었던 노래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우리 대중가요는 영화나 드라마 주제곡이 히트의 중심에 서며, 주제가를 부른 가수가 대중들의 인기를 누렸었다. '외나무다리', '하숙생', '맨발의 청춘',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 등이 이런 주제가다.

소설 '춘희'(동백아가씨)의 스토리를 풀어 보자. 1850년을 전후하여 파리 5대 극장가 특별석에 밤마다 나타나 한 달의 25일 간은 흰 동백꽃, 5일간은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꽂음으로서 자신의 생체리듬을 표시해 온 화류계의 퀀이 있었다. 그녀는 고급 창녀, 마리 뒤 프레시스였다. 그녀는 프랑스의 시골에서 가난한 홀아비의 딸로 열 살 때,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하여 한 접시의 수프와 처녀성을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열두 살 때, 맨발에 누더기를 걸치고 파리로 올라왔다. 이 창녀를 사랑한 사람이 소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뒤마 페르의 사생아 아들 알렉산드르 뒤마 피스(1824~1895)였다. 안타깝게도 그가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이유 여행을 하고 돌아와 보니 마리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1847, 23세). 당시 동갑내기였던 뒤마피스는 울면서 글(실제 이야기)을 쓰기 시작하여 3주일 만에 소설로 완성했다. 그 글이 바로 소설 '춘희'(椿姬)다. 이 소설은 프랑스 신문 일간지에 연재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854년 이 소설을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오페라로 상연한다. La traviata, 타락한 여인이다. 상연 극 중에 주인공 비올레타가 들고 나오는 흰 꽃과 붉은 꽃이 바로 동백이다. 동백(冬柏) 꽃말은‘그대를 사랑한다, 맹세를 지킨다’이다. 그래서 결혼식에서 약속의 상징으로 쓰기도 한다. 라 트라비아타를 춘희(椿姬)로 번역하는데, 춘(椿)은 동백이란 뜻이니 춘희란 곧 동백아가씨인 셈이다.

이미자는 우리 유행가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90년대 앨범 600 여장, 노래 2,100여 곡을 통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녀는 통속적인 노랫말로 대중들과 소통했고, 2009년 그녀의 노래인생 50년을 그림에세이로 '동백아가씨'를 발간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2013년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인씨앰예술단(단장 노희섭)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였다. 이미자의 폐활량은 일반인의 2.5배, 그녀는 말하듯이 노래를 하는 성대구조를 가졌단다. 폐활량은 색소폰 연주자의 신체적 비기(祕技), 이러한 비기를 바탕으로 연주하는 멜로디에 노래의 사연을 실어보면 감흥은 어떨까. 이미자는 2019년 노래 인생 60년 기념으로 전국 16개 도시 순회공연을 했었다.

이 노래는 1964년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곡이다. 김기 감독이 연출하고 신성일, 엄앵란이 열연한 영화다. 노래는 원래 최숙자가 취입할 예정이었으나, 계약금액 문제로 딸 정재은을 임신하고 있던 이미자가 불러 대박을 터뜨린다. 이 곡은 우리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100만장 음반 판매를 기록하며, 가수를 엘레지의 여왕으로 만들어준다. 이 곡은 ‘얼굴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구절이 빨갱이를 연상한다고 하여 금지되었다가 1987년에 해금되었다. '동백아가씨'는 베트남전쟁 월남 파병 장병 비둘기부대의 사단가가 되었을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남녘 바닷가를 불게 물들인 동백꽃이 눈에 선하다. 동백꽃은 세 번 핀단다. 나뭇가지에서 피었다가 떨어져서 땅바닥에서 다시 피고, 다시 사랑하는 연인의 가슴에 피어나는 꽃.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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