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트로트 열풍을 타고 새로운 노래 바람결이 풍컬풍컬 불어온다. 토속적인 노랫말과 가락을 혼융(混融)한 풍물로 투박하게 빚었는데, 대중들의 인기대박이다. '범 내려온다'를 부르는 저들은 광대인가, 소리꾼인가. 아니면 풍각패인가. 정신없는 사운드에 요란한 옷차림, 판소리 같은데 드럼과 베이스 기타가 곁들여지고, 요상한 춤사위가 철퍽거린다. 동서양이 만난 듯하지만 혼돈 속의 창조다. 퓨전이라고 말하기엔 우리 것이 풍만하다. 혼융의 능선 저 너머에 구부러진 새 언덕이 생겨난 듯하다. 중독성도 있고 혼란 속에 안도의 감흥도 있다. 헤비메탈이나 락 가닥으로 얽지 마시라. 왜 한국관광공사에서는 '범 내려운다'를 홍보영상으로 삼았을까. 그들은 이 노래를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라고 자리매김을 했다. 장림(長林) 깊은 골로 내려오는 범(호랑이) 노래를.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 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 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 난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졌것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 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동개 같은 앞다리 전동 같은 뒷다리/ 주홍 입 쩍 벌리고/ 자라 앞에 가 우뚝 서/ 홍앵앵앵 허는 소리/ 산천이 뒤덮고 땅이 툭 꺼지 난 듯/ 자라가 깜짝 놀래/ 목을 움치고 가만히 엎졌을 제/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가사 일부)

'범 내려온다'는 구전(口傳)·민전(民傳)으로 내려온 노랫말에 이날치가 가락을 입히고, 부른 전통음악형식을 차운(次韻)한 일탈 같은 창조 장르다. 가장 토속적인 음악으로 친근감이 있는, 진부하지 않은 중독성을 가진 종합풍물노래다. 30년 단위로 복고(復古)를 반복하면서 진화해 온 우리 노래마당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 바람잡이 같은 명품이다. 1960년대에 대중가요 유행가의 한 갈래 물길을 튼 트로트가 1990년대 전통가요부활로 순풍에 돛을 달았었다. 잠잠하던 트로트가 2020년대에 다시 날개를 친다. 이 트로트 열풍은 언제쯤 또 잦아들까, 그리고 30년쯤 뒤인 2050년대에 다시 허공중을 날아다니는 드론처럼 복고의 날개를 달고 빙빙빙 돌면서 회오리칠 것이다. 오늘의 이 열풍은 잠시 뒤면 쉬르르 꼬랑지를 보이며 가라앉을 바람이다. 이 뒤에는 <범 내려온다> 같은 장르가 판을 칠 것이다. 1900년대 토색(土色), 1930년대 왜색(倭色), 1950년대 양색(洋色), 1960년대 신토색(新土色)으로 융화된 진화가 30년 단위로 윤회한 것이 2020년대 트로트 열풍이다. 그런 맥락으로 치면 '범 내려온다' 같은 노래의 등장은 일탈되고 돌출된 돌연변이가 아닌 우리식의 창조임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날치(밴드)는 2019년 결성된 음악 그룹, 판소리를 대중음악으로 재해석하는 팝 밴드다. 경기민요를 록으로 재해석한 ‘씽씽’이 해체 된 후 그 맴버 장영규와 비슷한 시기에 해체된 ‘장기하와얼굴들’의 베이스 정중엽이 결성을 주도했다. 여기에 판소리꾼 권송희·박수범·신유진·안이호·이나래가 보컬로 참여하였다. 드럼은 ‘씽씽’부터 함께한 이철희가 맡았다. 이들은 2018년 11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수궁가'를 재해석한 '드라곤 킹'을 공연하며 처음 만났고, 이 작업의 성과에 힘입어 팀으로 결성되었다. 전통적인 판소리 공연과는 결이 다른 공연을 펼치게 된 보컬들은 ‘국악의 세계화’와 같은 거창한 명분을 경계하면서, 그저 대중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이길 원한다. ‘이날치’라는 그룹 이름은 조선 시대 판소리 명창 이날치를 오마주(hommage, 다른 작품 주요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 프랑스어 존경·경의) 한 것이다.

이날치(李捺治, 1820~1892)는 담양 출생으로 서편제의 거장이었다. 박유전의 직계로 성량이 풍부하고 창법이 출중하여 나팔소리와 새소리를 동물소리 그대로인 듯 절창하였단다. 그의 주특기는 '심청가'이다. 서편제(西便制)는 조선 철종(1831~1864) 때의 명창인 박유전(1835~1906)에 의해 창시된 판소리 유파의 하나이다. 서편은 전라지방의 서편이라는 의미, 광주·나주·보성·강진·해남 등지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서편제 명창은 박유전·김채만·이날치·정창업·김창환 등이다. 현대에 전수받은 명창은 김소희가 대표적이다. 동편제는 운봉·구례·순창·흥덕(현, 고창군 일대) 지역 중심의 노래다. 이날치는 전라도 동복(화순군 동복면)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유씨 집안의 머슴살이를 하다가 남사당패를 쫓아가 줄광대를 하였다. 이후 광주에서 성장하였다. 본명은 경숙(敬淑)이나 줄을 타는 광대를 하면서 ‘날쌔게 줄을 잘 탄다’하여 ‘날치’란 이름이 붙여졌단다. 이날치는 '새타령'·'심청가'·'춘향가'에 능하였으며, '춘향자탄가'를 더늠(명창이 독특한 발림과 사설, 소리를 짜 넣어 만든 대목)으로 넣었다. 그가 새타령을 부를 때 진짜 새가 날아들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런 가수들이 많이 나와야 진짜 한국노래(K-Song)가 세상을 공명(共鳴)시킬 수 있을 터이다. 장림(長林) 깊은 골에서 호랑이가 어흥~ 하고 내려오듯이 대중들을 감흥 시킬 옛 명창(名唱)들을 능가하는 가수들이 번쩍거리길 빌어마지 않는다.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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