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연초부터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전 세계 자동차 업체의 생산 라인에 비상이 걸렸다. 폭스바겐, GM, 포드, 도요타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시적인 생산 중단이 잇따르고 있다. 경쟁사에 비해 재고를 많이 확보해 상대적으로 여유롭던 현대차그룹도 4월에 접어 들면서 반도체 대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차 울산 공장이 이달 7일부터 14일까지 휴업하기로 결정한데 이어 미국에 있는 기아차 공장도 다음 주 이틀간 공장 가동을 중단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대란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공급 측면과 수요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공급 측면의 원인은 자동차 생산 예측의 실패로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줄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완성차업체들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자동차 판매 감소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 예상하고 반도체 주문량을 줄여 나갔다. 하지만 백신 공급과 함께 경기 회복의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갑자기 늘어난 신차 주문에 반도체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공급 생산 병목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설상가상으로 연 초 미국 텍사스 지역의 한파로 시장점유율 1위와 3위 업체인 NXP와 인피니언 공장이 멈춰선 데 이어 2위 업체인 르네사스 일본 공장의 화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다음으로 수요 측면은 전기차의 생산과 관련이 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4~5배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전기차 생산이 늘어나면서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이전까지는 내연기관차 업체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전기차 생산에 총력전을 펼칠 수 없었다. 하지만 전기차 분야의 선두주자인 테슬라의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실적이 급속하게 호전되자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테슬라의 약진에 위기감을 느낀 내연기관차 업체들이 지난해부터 전기차 생산에 대규모 투자를 속속 선언하고 있다. 전기차 생산이 예상보다 빨리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차량용 반도체 수요를 증가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반도체 품귀 현상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는 특성상 업체별로 주문 제작하는 다품종·소량생산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시장의 규모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그리고 NXP, 르네사스, 인피니온 등 생산업체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아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 더욱이 전 세계 차량용 반도체 위탁 생산의 70%를 차자하는 TSMC 입장에서도 수익성이 낮은 차량용 반도체를 우선적으로 생산하도록 배려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반도체 품귀 현상이 최소한 올 연말까지, 비관적인 경우에는 1~2년 정도 더 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 정부와 자동차업계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먼저 정부가 주도해 ‘미래차-반도체 연대·협력 협의체’를 발족시켰다. 자동차와 반도체 업체가 힘을 합쳐 국내 공급망 안정화를 꾀하는 한편 미래차를 위한 반도체 시장을 선점하는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이와 별도로 자동차업계도 차량용 반도체의 내재화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전장 부품 사업을 맡고 있는 현대모비스는 지난달 31일 중장기 성장전략 콘퍼런스를 개최해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내재화 계획을 세우겠다고 선언했다. 단기적으로 어려움은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차량용 반도체의 자급화를 통해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을 미연에 차단해 나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사실 우리나라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 부문에 있어서 주요 자동차 생산국에 비해 한참 뒤처져있다. 무역협회가 최근 발표한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현황 및 강화방안’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의 매출액 기준 세계 점유율은 미국 31.4%, 일본 22.4%, 독일 17.4%, 한국 2.3%로 나타났다. 자동차 생산대국의 위상에 맞지 않게 핵심 부품 산업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차량용 반도체의 국내 생산을 늘려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해당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 나갈 필요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몇 년 전 일본이 반도체 소재·부품에 대해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자 우리는 단기간에 이들 제품을 국산화해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이번 차량용 반도체 대란도 지난번 소부장 산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생산을 제고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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