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바이든 행정부가 대선 공약 중 하나였던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대한 계획안을 발표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피츠버그 연설을 통해 도로, 다리, 항만 등 기반 시설 재건과 제조업과 차세대 산업 지원 등에 약 2500조원에 달하는 재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이를 통해 수백만 개의 일자리 창출과 미국 경제 활성화를 이끌어 내고, 궁극적으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인프라 개선에 가장 많은 약 1500조원이 투입되는데, 이는 1930년대 뉴딜 정책과 마찬가지로 인프라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번에 발표된 인프라 개선도 도로, 교량, 항만 등을 건설하는 ‘교통 인프라 개선’과 신규 주택 및 공공주택을 건설하는 ‘주거 인프라 개선’을 골자로 하고 있어 전통적인 방식의 뉴딜 정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제조업과 차세대 산업을 위한 R&D 지원으로 이전의 뉴딜 정책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도전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가 바로 인프라’라고 강조하면서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주문하고 있다. 과거의 인프라 투자뿐만 아니라 오늘과 미래의 인프라에 투자해 중국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세계 경제에 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번 인프라 투자가 지니는 의미는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 ‘패권 유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한편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대의 목소리는 정치권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현행 21%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28%로 올리겠다고 말한데 대해 미 공화당은 반발하고 있다. 공화당은 재정지출 확대는 필연적으로 증세를 유발하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경제계에서 나오는 반대 의견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다. 지난해 미국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고자 투입한 6조 달러와 이번에 발표된 인프라 투자 규모를 합치면 8조 달러(약 9000조원)에 달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돈이 풀렸다고 말한다. 더욱이 올해 백신 공급으로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다면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따라서 추가적인 재정 지출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이번 투자 계획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의 찬성을 이끌어내지 못해도 계획안을 밀어붙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서도 바이든 행정부 내에 포진하고 있는 현대화폐이론 신봉자들은 재정 지출이 확대되더라도 인플레이션은 없을 것이라 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단행할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 및 경제 활성화가 목적인 인프라 투자 분야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미국 경제가 좋아지면 우리 수출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제조업과 R&D 지원이다. 미국이 중국과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강조하면서 언급하는 분야는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및 친환경 등인데, 이는 우리의 주력 산업 내지는 미래 먹거리 산업과 직접적으로 경쟁한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분야기 때문에 미국의 대규모 투자와 지원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미국 경제는 지향점이 달라서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산업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무섭게 추격해 오는 중국을 견제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과 경쟁을 선언하면서 글로벌 산업 구조 재편이 불가피하다. 이제 우리도 변화하는 국제경제 질서에 맞춰 협력 분야와 경쟁 분야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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