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행가에 색깔의 물이 들면 대중들의 감흥빛깔도 오색창연(五色蒼然)해진다. 노랫말의 색깔을 따라 세상에 유행이 생겨난다. 우리나라 유행가 100년 역사 속에 원색의 물이 들었던 노래들이 그 증거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내밀던 손시향의 <검은 장갑> 노래가 불린 때는 검정색 장갑이 품절되었고, <노오란 샤쓰의 사나이>가 히트한 시절에는 노랑물결이 거리를 누볐었다. 윤항기의 <장밋빛 스카프>, 한혜진의 <갈색 추억>, 남일해의 <빨간구두 아가씨> 등의 노래는 발표 이후 이 노랫말 색깔의 유행을 불러 일으켰다. 1997년 설운도가 부른 <보랏빛 엽서>는 2020년 미스터트롯 결승으로 향하는 관문에서 임영웅이 불러서 1위, 진(眞)을 차지했었다. 임영웅의 목청에 보랏빛이 걸리면 세상은 임영웅 팬덤들의 가슴팍에는 보라물결이 일렁거린다. 임영웅의 팬클럽 이름은 『영웅시대』이다. 그들의 가슴팍에 휘갈겨 쓴 보랏빛 일기장을 곁눈질로 읽어보자.

보랏빛 엽서에 실려 온 향기는/ 당신의 눈물인가 이별의 마음인가/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보려 해도/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당신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늘도 가버린 당신 생각에/ 눈물로 써 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가사 전문)

2020년 미스터트롯 결승전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준결승전 1라운드 레전드 미션은 화려했다. 이때 심사위원으로 청빙(招聘)된 원곡 가수 레전드는 남진·주현미·설운도, 그들의 히트곡 중 한 곡씩을 경연 참가자 혼자 부르는 개인전 미션. 그날의 마지막 경연자는 임영웅,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인 그의 등장에 객석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그는 <보랏빛 엽서>로 보랏빛 심금을 울리는 가창력을 뽐냈다. 관객들은 큰 박수를 보냈고 앙코르를 외쳤다. 레전드 설운도는 ‘저도 가슴이 찡했다. 배웠다. 저도 이렇게 부르겠다. 죄송하다. 그동안 이렇게 못 불러서’라고 해 웃음을 안겼다. 임영웅은 감격해 고개를 숙였다. 임영웅은 잃어버렸던 옛 사랑에 대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열창으로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시청자들의 가슴팍에는 첫 사랑의 보라물결이 넘실거렸다.

보라색은 파랑과 빨강이 겹친 색. 우아함·화려함·풍부함·고독·추함 등의 다양한 느낌이 있어 예로부터 왕실의 색으로 사용되었다. 보라색은 품위 있는 고상함과 함께 외로움과 슬픔을 느끼게 하며 예술감·신앙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또한 푸른 기운이 많은 보라는 장엄함, 붉은색 기운이 많은 보라는 여성적 화려함 등을 나타낸다. 한자로는 자색(紫色)이라고 한다. 붉은 흙빛 같은 검붉은색이다. 흑색과 적색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오간색(五間色, 홍·벽·녹·유황·자)의 하나로 가장 어두운 색이다. 보라색은 천연 안료에는 없는 색이어서 남(藍)과 연지 혹은 홍(紅)을 합하여 사용했다. 조선 후기의 당상관(堂上官, 정3품 이상의 관료)의 관복을 보면 적색 바탕에 흑색 망사를 이중으로 사용하여 자색을 연출했다. 자주(紫朱)색, 자지(紫地)색이라고도 한다.

<보랏빛 엽서> 원곡 가수 설운도는 1958년 부산 해운대 출생인 본명 이영춘이다. 그는 1980년대 말 유행가의 톱스타로 급상승한 중견가수 송대관과 태진아와 앞뒤를 견주며 트로트 장르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본인이 부르는 노래를 직접 작곡하게 되었고, 정통트로트에서 벗어나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 돋보이는 곡을 불렀다. 그의 아내 이수진은 1980년대 충무로 영화배우이다. 그녀는 설운도와 결혼을 하면서 꿈과 이상을 설운도의 인생에 걸었다. 이수진과 설운도는 우리나라 가수와 영화배우 커플 1호다. 이수진은 2012년 이태원에 이탤리언 레스토랑 ON21을 오픈했다. 이들의 처음 만남은 어색했다. 설운도는 무명가수, 이수진은 잘나가는 영화배우로서 등급과 무게가 달랐다. 1987년 어느 드라마 종연방송 자리, 설운도 옆에 이수진이 앉았는데, 그날 이후 설운도는 사생결단의 구애(求愛) 작전 돌입한다. ‘초면에 실례지만, 정말 미인이십니다. 고향이 어디세요? 아이고, 저랑 같은 부산이네예. 제 신곡 나오면 들어주세요.’ 그리고 ‘수진씨, 우리 결혼합시다.’ 세 번째 만남에서 청혼한 사나이, 그가 무지막지한 설운도다. 이들 부부는 ‘설그랜트 앤 드류슈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서 따온 것인데, 이 영화에 출연한 작곡하는 남자 휴 그랜트와 작사하는 여자 드류 베리모어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설운도는 아내 이수진을 자신을 지켜주는 하나의 회초리라고 한다. 설운도 노래의 80%를 그녀가 작사했다.

임영웅은 1991년 포천 출생, 포천의 아들 임 히어로, 트로트의 히어로다. 그는 설교하듯, 말하듯이 노래하면서 감동을 전한다. 감정전달 능력이 뛰어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보랏빛 엽서>·<두 주먹>·<배신자> 등을 불러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영웅 팬덤의 주인공이 되었다. 2020년 미스터트롯 진(眞) 1등. 포천 송우초·갈월중·동남고를 거쳐 경복대 실용음악과에서 공부했다. 임영웅의 노래는 장적통성(長笛通聲) 시흉감장(始胸感長)이다. 길고 기~인 피리 관대(管帶)를 은근하게 통과하고, 비로소 대중들의 가슴팍으로 후벼 드는 기~인 감흥이다. 촉촉하게 베어드는 영웅의 가향(歌香, 노래 향기), 날마다 피고 피어 가슴을 활활, 화~알 활~ 타오르게 한다. 그는 2015년 포천시민가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토박이 포천의 아들이다. 이어서 그 해 상·하반기 청소년트로트가요제에서 금상과 은상을 수상했다. 2016년에는 전국노래자랑 포천시편에서 신유의 <일소일소 일로일로>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해 가수로 정식 데뷔를 한다. 2020년 미스터트롯 결승전에서 우승을 한 그는 30세(이립 而立, 남자는 서른 살에 자립한다는 공자의 말)에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 영웅(英雄), 경쟁에서 이긴 꽃떨기. 5살 때부터 영웅이를 홀로 키운 엄마의 미용실에도 손님들 발길이 줄을 잇는다.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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