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자동차에서 촉발된 반도체 품귀가 스마트폰과 가전제품, PC 등 IT산업 전체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당초 자동차용 반도체의 수요 예측 실패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전 IT산업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나마 오른 가격에도 물량 확보가 불투명해져 관련 국내 기업들은 초비상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반도체 품귀 현상은 차량용 마이크로 컨트롤 유닛(MCU)의 수요 예측 실패에서 시작되었다. 자동차를 비롯해 가전, 산업용 기기에 들어가는 MCU는 제품의 프로세스, 입출력 제어 등을 담당한다. 핵심 부품이기는 하지만 고급 기술이 아닌 범용제품으로 기기의 특성에 맞춘 다품종 소량 생산의 특성을 가진다.

한편 MCU는 시장 규모는 약 17조원으로 그리 크지 않다. 수익성 또한 높지 않기 때문에 생산업체도 마이크로칩(미국), 인피니언(독일), NXP(네덜란드), 르네사스(일본), ST마이크로(스위스) 등 반도체업계에서는 2군에 속하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기업은 1군 업체에 해당하는 삼성, 인텔, TMSC 등과 협력해 그동안 큰 문제없이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을 계기로 전 산업에 걸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붕괴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따라서 갑자기 닥친 반도체 대란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예상되는 파급효과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원인은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불러온 가수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기 침체로 자동차 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 반도체 생산업체들은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생산을 늘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자동차 수요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자동차업체들이 부족한 반도체 확보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에 나머지 IT업체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 생산 라인이 자동차용 반도체로 돌려질 것에 대비해 재고 확보를 위한 가수요가 발생해 반도체 부족이 IT산업 전반으로 번지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 원인은 ‘유통사(대리점) 사재기’에서 찾을 수 있다. MCU 유통은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반도체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하지만, 대부분의 중소 IT업체들은 유통사를 통해 제품을 구매한다. 그런데 반도체 부족 현상의 장기화 조짐에 따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글로벌 유통사가 공급을 줄이고 사재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더욱이 미국이 중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규제하자 중국 기업들이 반도체 제품을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싹쓸이하고 있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결국 현재 반도체 부족의 원인은 수요자 입장에서 미래에 불확실성으로 충분한 재고를 확보하려는 ‘가수요 심리’와 공급자 입장에서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한 ‘사재기 욕심’이 빗어낸 합작품이라 하겠다. 가수요와 사재기는 일차적으로 생산차질과 판매가 인상을 가져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수요 예측을 어렵게 해 시장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각국은 현 사태를 타파하기 위해 반도체 신규 투자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를 직접 손에 들고 공격적인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반도체 특별법 제정을 통해 반도체 국산화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EU, 중국, 일본 등도 마찬가지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자칫 반도체 공급 대란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반도체와 코로나 방지용 마스크를 직접 비교하는데 다소 무리가 있지만, 지난해 마스크 대란 당시 너도나도 마스크 생산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다수의 생산업자들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원호 중소벤처무역협회 해외시장경제연구원 부원장·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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