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보릿고개는 보리 이삭이 익어가는 산 구비를 돌아가는 고개가 아니라,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하여 덜 익은 보리이삭을 베어다가 삶아서 허기진 배를 채우던 시기를 말한다. 가을에 수확한 양식(쌀·고구마 등)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음력 4~5월, 춘궁기(春窮期)·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6.25전쟁 이후 세대(특히 1970년 이후 출생한)는 이 보릿고개라는 말을 실감하지 못하리라. 이런 가슴 아리는 시절을 회상한 노래가 2015년 진성이 절창을 한 <보릿고개>다. 이 곡을 2020년 미스터트롯 정동원이 절창하면서 대한민국을 울렸다. 정동원 팬클럽은 <우주총동원>, 그들이 눈물을 총동원했다.

가수 진성과 정동원은 어린나이에 엄마 손을 놓쳐버린 아픈 가슴을 공유하고 있다. 진성이 스스로 노랫말을 짓고 김도일이 멜로딩 한 이 노래를 어찌 풀어야 하나. 가사는 가슴이 미어지듯 눈물이 절절 맺히고, 곡조는 디스코인데 진성의 목소리는 울고 있다. 디스코트로트라는 말을 붙여보자. 사랑이 익으면 별이 되는데, 한이 영글면 노래가 된다. 이 노래는 진성의 어린 시절의 한이 익은 통곡(慟哭), 2019년 미스트롯, 2020년 미스터트롯에 다 불린 애창곡(愛唱曲)이다. 왜 그럴까. 원곡 가수 진성이 노래 속 화자이기 때문이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아야 우지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통곡이었소.(가사 전문)

노랫말에 대한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울어라. 보릿고개는 지난 가을에 추수를 한 나락(벼, 쌀)이 다 떨어진 4월~5월의 절기다. 보리도 아직 익지 않아서 베어 먹을 수도 없고, 풀뿌리와 찔레·송구(소나무의 새순이 자란 대궁)껍질을 벗겨서 배를 채우던 시절이다. 옛날 생각에 자꾸 코끝이 시큰거린다. 한자어로는 맥령(麥嶺)이라고 한다. 그 시절은 그랬다. 그때는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끼니 아닌, 굶주린 배를 채우며 목숨을 연명(延命)했었다. 그 시절은 출생은 축복이고 생존은 목표였다. 그래서 유랑민이 생기고 굶어 죽는 사람 또한 허다하였다. 이 사람들을 춘궁민(春窮民) 또는 춘곤민(春困民)이라 하였다. 춘궁맥령난월(春窮麥嶺難越)·춘풍기풍춘색궁색(春風飢風春色窮色)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봄철 보릿고개 넘기 어려우니, 봄바람도 배고픈 바람이고 파릇한 봄 색깔도 궁색하게 보인다는 말.

진성(眞成)은 1960년 전북 부안군 행안면 출생, 진성철이다. 그가 태어난 시절도 보릿고개에서 벗어난 시기가 아니다. 하루 3끼니 떼우기도 어렵고 배를 채우기는 더욱 어려웠다. 밥그릇에서 쌀알을 볼 수 있는 날은 추석과 설날, 그리고 조상님의 제삿날이었다. 산 사람은 초근목피로 배를 채우다가 조상님 덕에 나물제삿밥을 얻어먹던 시절이 그때까지 이어진다. 진성의 대표곡은 <태클을 걸지 마>, <안동역에서>, <보릿고개>, <채석강>, <못 난놈> 등이다. 그의 아버지는 유랑극단 단원이었고, 늘 집에 없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다. 어린 시절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냈다. 5~6세 때 옆집 할아버지에게 창(唱)을 배웠고, ​고달픈 시간을 노래로 달래며 지냈다. 덕분에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로 알려졌었다. 그는 12세 때부터 중국집 배달·신문팔이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러던 중 유랑극단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다가 16세부터 대타가수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17세 때부터 서울 야간업소에서 노래를 불렀지만, 돈벌이가 안 되어 새벽부터 리어카를 끌며 과일을 팔았다. 그러던 중 1997년 <님의 등불>로 데뷔했다. 진성은 부안초·부안중·부안고를 졸업하였다. <안동역에서>로 오랜 무명의 터널을 빠져나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달리던 진성의 인기열차가 잠시 멈췄었다. 2016년 12월 KBS 가요대상 이후, 진성의 암투병이 시작됐다. 림프종 혈액암이었다. 49세에 진성의 노래가 좋아서 그의 카세트 테잎을 5년간이나 듣고 다니다가, 우연히 추어탕집 주인의 소개로 결혼을 한 부인 용미숙의 가슴을 졸이면서 2017년 2월 수술을 했다. 심장병 때문에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로. 가수는 12월이 대목이다. 진성은 휴업, 그렇게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갔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와서 무대에서 열창한다. 진성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노래를 붙들고 우는 가수다.

<보릿고개>를 눈물어린 눈동자 반짝거리면서 열창한 정동원은 어른스럽다, 잘 생겼다, 국민손자 하동 프린스에서 서울 선화예술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명물신인(名物新人) 출현. 14살 2020년 미스터트롯에서 남진은‘괴물신인이다’라며 최고의 찬사를 건넸다. 2007년 하동군 진교면 출생. 그의 노래에 배인 한(恨)의 옹달샘은 무엇일까. 어린 동원이를 남겨 두고 떠나간 그의 생모(生母)는 지금 어디에서 숨을 죽이고 <우주총동원>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 노래로 동원은 2018년 전국노래자랑 함양군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어서 색소폰으로 <나그네 설움>을 연주했고, 연말결선 우수상을 받았다. 정동원의 팬덤 트로트는 백년가웅(百年歌雄) 춘개추화만만(春園秋花萬滿)이다. 백년에 한 번 피어나는 13월의 병아리 꽃, 봄 정원에 그득하게 피어난 무르익은 꽃노래여. 우주총동원이여~.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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