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억년 세월의 강에 걸린 인생 백년에 녹이 슬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기억이다. 날이 갈수록 또렷해지는 지난날은 희비, 그 속에서 사람들은 앞만 보고 나아간다. 잠시 뒤돌볼 겨를도 없다. 특히 대중들의 인기를 에너지로 삼는 대중가수들의 길은 더하다. 이들에게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다리·오솔길·징검다리가 되어 준 것이 트로트 열풍시대 각종 경연대회와 스핀오프(spin off) 프로그램들이다. 이 중 한 곡조가 가수 신성의 목청에 걸려서 시청자들의 가슴팍을 후빈 <녹 슬은 기찻길>이다. 9년여의 무명생활과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꿈은 절실했던 가수 신성(본명, 신동곤)의 애절가(哀切歌)였다. 그는 KBS 1TV 아침마당에서 5연승을 거둔 데 뒤이어 미스터트롯 오디션 참가하였다. 어이해서 피 빛인가, 말 좀 하려나. 녹 슬은 철마도 달리고 싶단다.

휴전선 달빛 아래/ 녹 슬은 기차 길/ 어이해서 피 빛인가/ 말 좀 하렴아/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 슬은 기차 길아/ 어버이 정 그리워/ 우는 이 마음// 대동강 한강물은/ 서해에서 만나/ 남과 북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 슬은 기차 길아/ 너처럼 내 마음도/ 울고 있단다.(가사 전문)

<녹 슬은 기차 길> 노래는 6.25전쟁의 상흔을 정지된 상태로 서사한 유행가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19년차의 절창. 여기에 서사된 휴전선은 강화도 교동도로부터 강원도 고성군 명호리까지의 155마일(mile) 248㎞를 말한다. 1945년 해방광복 당시 그어진 38선(개성 송악산~양군 현북면 잔교리) 이후 6.25전쟁의 총소리가 멎은 자리. 그 휴전선에 녹 슬은 철길 두 갈레가 걸쳐 있다. 이 녹 슬은 레일 위에 놓여 있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를 이 노래가 대변한다. 노래 속에 녹이 슬은 철길은 서울역~신의주를 잇는 경의선과 용산역~원산역을 잇는 경원선이다. 6.25전쟁 당시 북진공격을 하다가 멈춘 국군의 기관차는 문산 임진각에, 국군과 UN군의 북진공격으로 퇴각해 간 북한군이 버리고 간 객차가 월정리역 안쪽 비무장지대에 허물어져 가고 있다. 노래 속의 화자는 실향민이다. 6.25전쟁 중에 남쪽으로 피란을 올 때 부모님을 이북에 두고 혈혈단신으로 온 듯하다. 고향 북한의 대동강 물과 실향민으로 살아가는 남쪽의 한강은 서해에서 만나는데, 사람은 오갈수가 없음을 한탄한다. 슬픔은 넘어 한이 절절하다.

경의선은 1902년 기공되어 1911년 까지, 서울~신의주까지 연결되었으며, 1908년에는 신의주~부산까지를 우리나라 최초의 급행열차 융희호가 운행되기 시작하였다. 이 철길 위에 남북분단으로 철마가 달리지 못하고 녹 슨 채로 허물어져가고 있다. 임진각 본관 건너편 망배단 뒤편에 1953년 건설된 자유의 다리(경기기념물 162)가 놓여 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에 한국군 포로 1만2700여 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했다고 해서 ‘자유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는 경의선장단역증기기관차화통(京義線長湍驛蒸氣機關車火筒)이 6.25전쟁 당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다.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증기기관차 미카3-244호. 이 열차는 6.25전쟁 때 연합군 군수보급물자를 싣고 신의주로 향하던 도중 폭탄을 맞아 멈춰 선 증기기관차 화통이다. 개성역에서 한포역(황해북도 평산군에 있는 역)까지 올라갔던 열차가 중공군에 밀려 장단역까지 내려왔다가, 결국 후퇴하던 연합군이 북한군에 이용될 것을 우려하여 열차를 폭파하면서 이 화통만 남게 되었다. 옛 장단역 남쪽 50여m 지점 철로 옆에 붉게 녹슨 채 방치되어 있다가 2007년 11월 보존 처리하여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다.

경원선은 용산역에서 원산을 잇는 철길, 1910년에 착공하여 1913년에 원산까지 개통을 했다. 이 철길은 1950년 9월 15일 국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공격을 해 갈 때, 북한군이 버리고 간 철마가 녹 슬은 기차 길에 걸쳐 있다. 1971년 신탄리역에 철로중단점 팻말을 설치했었다.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다음 역이 2012년에 개통된 백마고지역이다. 역 이름은 6.25전쟁 당시 치열했던 백마고지전투에서 따온 이름이다. 백마고지(白馬高地)는 철원 서북방 395m 고지. 1952년 10월 6일~10월 15일까지 한국군과 UN군이 중공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국군 9사단과 중공군 113·114사단간의 전투. 10일 동안 12차례의 공방전으로 백마고지는 황폐화되었고, 중공군은 1만여 명 국군 3천5백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고지 정상의 주인도 24회나 바뀌었었다. 백마고지라는 이름은 미군 전투기 조종사가 공중에서 내려다 본, 초토화된 고지의 모양이 흰 말이 드러누워서 신음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 역 다음역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에 있는 비무장지대 안쪽 폐역, 월정리역이다. 이곳에 북한군이 기관차만 떼어서 몰고 가고 버린 객차 15량 중 1량이 전시되어 있다. 디젤 4001열차. 비무장지대 안에는 나머지 14개의 객차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팻말도 서 있다. <녹 슬은 기차 길> 노래의 형님 곡, 김희갑이 부른 <철마는 가고 싶다>도 있다. ‘바람도 넘으려다 넘지 못하고/ 녹 슬은 철조망을 붙잡고 우네/ 기적을 울리며 철마는 가고 싶다/ 아~ 한 맺힌 그 통일은 언제 오려나/ 그 언제 오려나.’

198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신성은 고등학생 시절 밴드 활동을 하며 가수에 대한 꿈을 키웠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트로트 가수 데뷔를 위한 준비를 해왔다. 2012년부터 3개의 디지털 싱글 음원을 발매했고, 2014년 첫 번째 앨범 <사랑의 금메달>을 발표했다. 그이 예명 신성(新星)은 새로운 별, 떠오르는 별이라는 뜻처럼 트로트 계에서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이름이다. 신성의 롤 모델은 나훈아다. 그는 각종 행사와 방송 무대에서도 <홍시>, <18세 순이>, <두 줄기 눈물>, <녹슬은 기찻길> 등 나훈아의 히트곡을 부른다. 녹 슬은 철마는 언제쯤 기적을 울리면서 달려갈 수 있을까.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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