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백성들이 위탁해 준 권력을 집행하는 치자(治者)들이 나라를 반듯하게(국태민안, 國泰民安) 번영시키지 못하면 이웃나라의 간섭·관할·통감·피압을 받는다. 조선 시대 청나라의 공격을 받은 민족의 수치, 병자호란(丙子胡亂)에 매달린 공녀(貢女)의 상처가 그러했고, 임진왜란과 경술국치 이후에 매달린 상흔이 조선 예인들의 일본 압송과 근로정신대와 종군위안부 같은 실체다. 북한 공산집단이 무력남침을 해 온 6.25전쟁으로 입은 민족의 상처는 어이할까. 이러한 나라간의 충돌과 마찰의 시대이념과 대중들의 피해와 한의 감흥은 반드시 유행가로 환생한다. 임진왜란을 품고 있는 노래는 <논개>·<계월향>·<간양록>·<난중일기>가 있고, 6.25전쟁에 매달린 노래는 <슈샤인 보이>·<전우야 잘 자라>·<굳세어라 금순아>·<에레나가 된 순이> 등이다. 1953년 북한 실향민 한정무의 목청에 걸려서 우리들의 어머니와 누이들을 울렸던 <에레나가 된 순이>는 현대사의 상처를 아문 곡조다. 전쟁고아와 미망인과 실향민들의 생계와 관련하여 생겨난 호구지책(糊口之策) 생존의 길을 헤매던 어둠침침한 시절의 서글픈 서정.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냐, 이름까지 에레나로 바꾼 내 사랑 순이야~.

그 날 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이/ 석유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실패 감던 순이가 다홍치마 순이가/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이 순이/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냐// 그 빛깔 드레스에다 그 보석 귀걸이에다/ 목이 메어 항구에서 운다는 순이/ 시집 갈 열아홉 살 꿈을 꾸면서/ 노래하던 순이가 피난 왔던 순이가/ 말소리도 이상하게 달라진 순이 순이/ 오늘 밤도 양담배를 피고 있더냐.(가사 전문)

<에레나가 된 순이> 노래에서, 에레나는 주한 외국군을 상대로 접객을 하던 여성, 양공주의 애칭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던 서글픈 시대의 유물이다. 우리역사의 근·현대 분수령은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태평양전쟁 주범 일본제국주의의 패망일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패망 항복서명을 세 번 했다. 그 해 9월 2일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점령군, 미 해군 미조리함과 외무성에서 육군참모총장과 외무대신이 각각 일본 정부를 대표하여 항복 서명했다. 이어서 9월 9일 주한 군정청사령관 미국 육군 제24군단장 하지 중장 앞에서 조선 마지막 총독 아베가 광화문 총독부 2층 제1회의실에서 항복 서명했다. 그날 오전 9시 30분경이다.

그 시절은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 한반도 허리에 38선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확한 선도 그어지지 않은 채 상극적인 이념의 철갑 띠가 휘감긴 때다. 이때부터 6.25전쟁이 터진 1950년 까지를 해방정국이라고 하고, 이어서 3년 1개월 1129일간의 동족상잔(同族相殘) 불포성 잿더미가 조국 하늘을 뒤덮었었다. 역사적으로는 이 시기를 우리나라 현대의 시발기(始發期)로 친다. 양공주는 남들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우리들의 귀한 누이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우리나라 주재 외국 군인을 주 상대로 숨 가쁜 삶을 살아 낸 그들이다.

1953년 이러한 시대상을 엮어 낸 노래가 <에레나가 된 순이>다. 손로원이 노랫말을 쓰고 한복남이 곡을 붙여서 본인이 운영하던 도미도레코드에서 6.25전쟁 당시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실향민 한정무(1921~1960)가 녹음하여 불렀다. 이 노래는, 1959년 안다성(1930~청주생)이 리메이크하여 더욱 유명세를 탄다. 이때에 노래의 오프닝 대사가 낭송된다. ‘전쟁의 뒤안길엔 비극도 많았지/ 이런 눈물겨운 해후도 있었더란다/ 헬로우 헬로우~ 헬로우 하이~/ 하이 순희 순희 날 몰라 보겠어?// 사람을 잘못봤지에이요?/ 흐흐흐흐흐 하하하하하 니가?/ 웃겼찌비 하하하/ 나는 에레나가 아이겠소/ 하아하하하하’이 곡은 1953년 2월에 만들어졌다. 한복남의 아들 작곡자 하기송이 2014년 공개한 아버지의 친필악보가 그 증거다. 가요곡이라고 적힌 메모. 가요곡은 일제말기에 유행가 대신 쓰였던 용어다. 2박자 탱고리듬의 이 노래는 <잊지 못할 순희>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원곡 제목이리라. 이 노래의 사연은 임종수(1942~)와 조운파(1943~) 콤비가 지어서 태진아가 부른 <옥경이> 원곡 이름이 <고향여자>인 것과 비슷하다. 룸살롱의 서정을 품은 곡.

<에레나가 된 순이> 노래 속의 양공주는 양갈보·양색시·유엔마담·히빠리·주스걸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 일본군 기지촌에서 이어졌으며, 당시 주한 미군은 이때에 작성된 접객여성 등록검진규정을 유지하였다. 미 군정청 간부 80%가 조선총독부에서 유임된 근무원이었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인원들의 직책유지가 친일 잔재를 일소하지 못한 서글픈 역사의 갈피이다.

이 노래를 작곡한 본명 한영순. 한복남은 1919년 평남 안주에서 출생 해방 직후 월남하여 부산 아미동에 정착했다. 1947년 김해송의 주한미군 위문공연단체 KPK악단에 입단하여 6.25전쟁을 맞게 된다. 전쟁 중에 부산에서 바느질하는 재봉틀 상사를 하면서 1948년 <저무는 충무로>와 <빈대떡 신사>를 발표한다. 낮에는 국제시장에서 축음기부속품 장사도 했다. 이때 녹음기를 구입했다. 마그네틱 타입, 미국산 리베라·암팩스·모타볼 등등. 그는 이 녹음기를 이용해서 1951년 말 도미도레코드사를 차렸다. 이때 작곡한 것이 <에레나가 된 순이>다. 그는 음악교육을 받은 적은 없으나 특별한 소질로 많은 히트곡을 냈다. 1960년대에는 자작곡 <엽전 열 닷 냥>으로 히트하였으며, 1970년대까지 방송활동을 하다가 1991년 향년 73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1911년 철원에서 출생한 손로원의 행적은 분명치 않다. 다만 전국을 떠돈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이었던 듯하다. 손로현·손회몽·불방각·손불경·손영감 등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면서 <페르시아 왕자>, <샌프란시스코>, <백마강>, <비 내리는 호남선>, <홍콩 아가씨>, <경상도 아가씨>, <봄날은 간다> 등을 남겼다. 노래 속의 에레나는 원래 이름 순이를 되찾았을까. 68년 전 부산 국제시장 밤거리가 눈에 아삼삼하다.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저작권자 © 중소기업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