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대중가요의 인기도 시(節氣, 절기)와 때(時氣, 시기)가 있다. 1990년에 발표된 김수희의 <애모> 노래가 그 전형이다. 이 노래의 인기는 발표 3년 뒤인 1993년에 날개를 달았다. 이 곡은 그 당시 KBS 가요톱10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를 제치고 골든 컵을 받은 주인공 노래다. 그 해 김수희는 연말에도 가요대상을 받았고, 뒷날 박정현이 영어로 번안하여 히트를 하기도 했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이 노래는 2020년 트롯 전국체전에서 글로벌 보쌈팀(완이화·재하·김윤길)의 화려한 무대로 리메이크 되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얼 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세월의 강 물결을 따라 옛 님은 흘러갔어도 내 마음의 강에는 늘 동동동 떠 있는 배가 첫사랑이다. 그대 등 뒤에 서면 눈물이 나던 당신~.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데/ 얼 만큼 나 더 살아야/ 그대를 잊을 수 있나/ 한 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 드는데/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여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남자여/ 당신은 나의 남자여.(가사 전문)

사랑 때문에 침묵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님의 등 뒤에 숨어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사랑은 이미 세월의 강을 건너갔다. 사랑하는 님 앞에서 침묵은 금·은·동 중에서 가강 낮은 자리에 있다. <애모>(愛慕)는 사랑하고 그리워하여 환장을 한다는 상사병(相思病)의 씨앗이다. 사랑 이(愛) 그리워 할·서러워할 모(慕), 유건영은 어쩌자고 유행가 제목을 이리도 눈물 그렁거리게 붙였는가. 뒤틀리는 이 가슴팍 책임지셔라, 작사 작곡가여~.

김소월(1902~1934. 영변 출생, 33세 요절)이 남겨 둔 <애모> 시를 이 노래에 걸쳐보면 가슴팍이 더 쑤신다. ‘왜 안이 오시나요/ 영창에는 달빛/ 매화 그림자는 산란히 휘젓는데/ 아니, 눈 감고 요대로 잠을 들자/ 저 멀리 들리는 것/ 봄철의 밀물소리/ 물나라의 영롱한 구중궁궐/ 궁궐의 오요한 곳/ 잠 못드는 용녀의 춤과 노래/ 봄철의 밀물소래/ 어둠은 가슴속의 구석구석/ 환연한 거울 속에/ 봄 구름 잠긴 곳에/ 소솔비 나리며/ 달무리 둘러라/ 이제도록 왜 안이 오시나요/ 왜 안이 오시나요.’소월이 애모한 연인은 오산학교 시절 알고 지낸 3세 연상 오순이라는 누이였으리라. 소월은 그 오순을 뒤로하고 할아버지의 권유로 할아버지 친구의 손녀 홍단실과 결혼을 했었다. 이 연상의 여인은 19살에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갔다가 3년 뒤 남편에게 매 맞아 사망했단다. 그때 소월 김정식은 아픈 마음을 안고 오순의 장례식에 참석했었단다. 그리고 돌아와서 사랑했던 그녀를 위한 한 편의 시를 적는다. 그 시가 <초혼>이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우리나라 전통 구비문학(口碑文學)에도 이런 사연을 품은 것이 많다. 이런 사랑은 민족감정이 적절하게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가슴을 따끈따끈하게 데워준다. 이런 설화에 나타나는 사랑은 대개 영혼불멸사상을 담고 있다. 신라시대 《수이전》의 수삽석남조(首插石楠條) 이야기를 풀어보자. 주인공 최항은 자가 석남인데, 사랑하는 여인을 부모의 반대로 만나지 못하고 속을 태우다가 몇 달이 지나 죽고 말았다. 그런데 죽은 지 여드레 째 되는 밤중에 항은 그의 사랑하는 여인의 집에 나타났고, 여인은 그가 죽은 줄도 모르고 좋아하며 그를 맞았다. 그때 항의 머리에는 석남화(石楠花, 철죽꽃 일종)가 꽂혀있었다. 항은, ‘부모님이 너와 같이 살아도 좋다고 해서 왔다’며 여인을 데리고 항의 집에 갔다. 그러나 대문이 잠겨 항이 혼자 먼저 담을 넘어 들어갔는데, 금새 나오겠다던 항이 날이 새도 나타나지 않았다. 밤이 새고 그 집의 하인이 나오자 여인이 항과 같이 왔던 이야기를 하니, 하인이 그의 죽음을 말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여인은 항이 나누어주어 머리에 꽂고 있던 석남꽃을 가리키며, ‘그분도 이걸 머리에 꽂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관을 열어보니 머리에 석남화가 꽂혀있고, 옷도 금세 새벽 숲을 걸어 나온 듯 했다. 여자는 항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울다가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항이 깜짝 놀라 되살아나 스무 해를 같이 살다가 죽었단다.

<애모>를 부를 당시 38세 본명 김희수, 예명 김수희. 그녀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숙명여고 졸업 후 미8군 무대에서 블랙캣츠라는 여성그룹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가수 활동은 1976년 <너무합니다>가 히트하면서다. 이어서 1982년 <멍에>, 1984년 <잃어버린 정>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인기를 누렸으나, 1984년 대마초사건으로 활동정지 되었었다. 이후 1986년 <남행열차>로 가요계에 복귀하면서 제2의 전환점을 만든다. 그녀는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팬들에게 사랑 받으며 여자 조용필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2020년 트롯 전국체전에서 글로벌보쌈팀으로 <애모>를 열창한 완이화는 미얀마에서 출생하여 태국으로 가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5년 차, 13세 다문화가정 소녀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얀마의 대중가수였다. 이화의 아빠는 미얀마 소수민족인 카렌족, 음반작업 중에 돌아가셨다. 그 앨범을 엄마와 함께 마무리한 이화의 꿈은 아빠처럼 가수가 되는 것. <애모>는 이화의 꿈을 이루게 해 주리라. 세월의 강을 넘어 우리들 첫사랑의 기억은 간들간들 흘러갈 테니~.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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