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사랑하는 연인끼리 멀어졌다가 다시 만나면, 두 손을 마주 잡고 <사랑하기 때문에> 노래를 듀엣으로 허밍(humming)하시라. 그러면 식었던 사랑의 온도계가 다시 올라 가고, 영원히 사랑하게 되리라. 이 노래는 1987년 25세로 요절한 발라드 가수 유재하의 보물 같은 유품곡(遺品曲)이다. 이 노래는 조용필이 1985년 먼저 발표했던 곡인데, 이후 김현식이 이끌던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키보드 주자로 활동하던 유재하가 1987년 자신의 창작곡과 함께 발표하면서 같은 음반에 수록했다. 둔탁한 듯하지만 애절한 허스키 보이싱으로 부르는 발라드, 첫 만남과 중간의 이별과 다시 마주하는 사랑의 여정을 산문처럼 얽은 이 노래는 유재하의 실제 사랑 이야기다. 누구나의 사랑 첫 단추는 마주하는 눈망울에서 발광(發光)되어 가슴으로 흐른다. 오~ 나의 첫사랑 그대여, 처음으로 느꼈던 그대의 눈빛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가.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어제는 떠난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내 모든 것 드릴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커다란 그대를 향해/ 작아져만 가는 나이기에/ 그 무슨 뜻이라 해도/ 조용히 따르리오/ 어제는 지난 추억을/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내 모든 것 드릴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가사 전문)

첫 만남, 해맑은 미소, 분홍빛 추억, 푸르게 빛바랜 기억, 잊지 못하여 스스로를 미워하는 나, 다시 돌아온 너, 사랑하기 때문에, 내 모든 것을 드리리라 다짐하는 나, 우리 이대로 영원히. 모든 것이 사랑의 현실이다. 유재하의 모든 음악은 서울대 음대를 다녔던 여자 친구와의 첫 만남부터 몇 번의 헤어짐, 그리고 재회에 이르는 과정을 솔직하게 담은 연애 일기란다. 그가 남긴 <우울한 편지>는 첫 만남 이후 2년 간 퇴짜를 맞으며 구애를 펼친 그가, 처음 받았던 편지를 소재로 만들었다. 상대방(유재하)에 대한 연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담은 그녀의 편지는 이미 비극적 사랑을 예감했다. ‘일부러 그랬는지 잊어버렸는지/ 가방 안 깊숙이 넣어 두었다가/ 해어지려고 할 때 그제서야/ 내가 주려고 쓴 편지를 꺼냈네/ 집으로 돌아와서 천천히 펴보니/ 예쁜 종이위에 써내려간 글씨/ 한 줄 한 줄 또 한 줄 새기면서/ 거짓 없는 너의 마음을 띄웠네/ 나를 바라볼 때 눈물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 나를 바라볼 때 눈물짓나요/ 마주친 두 눈이 눈물겹나요/ 그럼 아무 말도 필요 없이 서로를 믿어요/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그대는 아는 가요 아는 가요/ 내게 아무 관계없다는 것을/ 우울한 편지는 이젠.’사연이 가슴 아리는 편지였나 보다. <그대 내 품에>는 사랑을 구애하는 그의 애타는 마음을, <우리들의 사랑>은 사랑이 받아들여진 벅찬 기쁨을, <지난날>은 짧은 이별의 서글픔을, 그의 대표곡 <사랑하기 때문에>는 다시 돌아온 그녀에 바치는 헌정곡(獻呈曲)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작품자이면서 가수인 싱어송라이터 유재하는 1962년 안동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그의 짧은 생애 중 유일한 음반이다. 그를 기리는 유재하음악장학회도 설립되었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유복했다. 초등학교 때 아코디온과 첼로를 연주하고 기타를 퉁기면서 노래를 했다니 짐작이 간다. 영화배우 이소룡을 흠모하여 헤어스타일과 패션까지 흉내를 내며 다녔단다. 유재하의 요절인생(夭折人生)은 운명(運命)인가 숙명(宿命)인가 신명(神命)인가. 운명은 앞에서 날아오는 돌덩어리라서 눈만 똑바로 뜨고 있으면 피할 수가 있다. 하지만 숙명은 뒤통수에서 따라오는 화살이라서 피할 수가 없다. 운명과 숙명을 합친 것이 신명이다. 그래서 유재하는 이승을 등진 후에 더 빛나는 가객으로 칭송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神)은 다 알고 있을 테다. 우리네 갈갈한 인생길을~. 허~ 간혹 아닐 수도 있으련만.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1987년 25세 유재하의 요절(夭折)이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os, BC 460~377)예언이었다고 하면 과하리라. 하지만 그의 죽음을 애도한 예술가들의 안타까운 화두에 꺼이꺼이 목이 메임을 어이하랴. ‘유재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자주(自主)를 실현한 최초의 아티스트였다. 그의 죽음으로 한국 발라드 음악은 100년 퇴보했다.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일부러 나의 데뷔 일을 11월 1일로 삼았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가수 김동률·신승훈의 안타까운 소회다. 그렇다. 예술가는 하늘 여행을 떠났고, 그가 남긴 예술(노래)은 대중들의 감흥에 흔들거리며 허공중에 맴돈다.

유행가는 노랫말로 시대 상황적인 대중들의 정서와 이성을 대변하고, 가락과 장단으로 민중의 감성과 서정적 음유를 주도한다. 이러한 노래는, 머리로 부르는 노래·입으로 부르는 노래·가슴으로 부르는 노래·영혼으로 부르는 노래·몸으로 부르는 노래로 분류할 수 있다. 머리로 부르는 노래는, 사유와 음유를 동반하는 노래다. 입으로 부르는 노래는, 이쪽 귓구멍에서 저쪽 귓구멍을 통하여 관통하는 소리이고,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는 대중들의 가슴 방에 녹아들어 묶고·삭고·익어서 세월을 더 할수록 맛을 더하는 토종 간장처럼 우려진다. 영혼으로 부르는 노래는, 깨어 있는 영혼을 흔들거나 잠들어 있는 영혼에 자극을 가하여 깨운다. 한편 몸으로 부르는 노래는, 가사와 가락보다는 퍼포먼스 같은 율동과 안무에 더 비중을 두어 청각적 음유보다는 시각적 유희의 역할을 한다.

우리 대중가요 100년사에 유재하처럼 서둘러 이승을 등진 가인(歌人)들이 많다. <사의 찬미>(1926) 윤심덕 29세. <새 노래>(1968)차중락 27세. <0시의 이별·마지막 잎새>(1971) 배호 29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1976) 하수영 34세. <여고졸업반>(1975) 김인순 35세. <KIM JUNG HO LIFE>(1983) 김정호 33세. <난 정말 몰랐었네>(1978) 최병걸 38세. 유작 <내 사랑 내 곁에>(1991) 김현식 33세.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1990) 장덕&장현은 35세. <서른 즈음에>(1994) 김광석은 32세. <사랑할수록>(1993) 김재기(부활)는 25세. <우리는>(1993) 김성재(듀스)는 23세 등등. 삼가 서둘러 가신님들의 명복을 빈다. 의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어쩌자고 의학의 경계를 넘어 예술과 인생의 길고 짧음을 설파했는가. 인생은 시(時)이고 예술은 시(詩)인데...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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