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행가는 인문학(人文學)의 꽃이다. 여기서 문(文)은 글자가 아니라 생각의 무늬·채색의 의미로 음유해야 제멋이 난다. 사람들 저마다의 생각을 펼쳐내는 학문. 대상을 사람으로 하면 인문학이고, 여기에 세월(역사)을 종적으로 누적하는 궤를 얽으면 인류학이 된다. 이 인문학(humanities)은 자연과학(natural science)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언어·문학·역사·법률·철학·고고학·예술·비평 등을 망라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음악·기하·산술·천문·문법·수사·논리 등을 인문학의 범주로 삼았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이런 생각을 얽은 대표적인 노래가 2005년 나훈아가 부른 <홍시>다. 이 노래의 모티브는 두 단어다. 흠뻑 익어서 붉게 말랑거리는 감 홍시와 자상한 엄마의 대비. 엄마라는 단어는 호모사피엔스(두 발로 직립 보행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의 가슴속에 담겨 있는 공통분모다. 이 <홍시> 노래가 트로트 신청곡을 불러주는 사랑의 콜센타에 호출 당했었다. ‘경남 강지원 19세. 영탁에게 나훈아의 <홍시>를 신청합니다.’ 하모니카 전주가 울려 나오는 시간, MC 성주는 감흥의 조미료 같은 멘트를 더한다. ‘야~ 이 노래 눈물 나아~’이찬원과 김호중이 감미로운 드레싱을 한다. ‘난 곶감 좋아해, 난 반시.’황금 빛줄기가 불화살처럼 퍼지는 무대 위에 영탁이 서서, 손 마이크를 입에 대고 반주 속의 하모니까 소리를 따라 좌우로 흔든다. 영탁은 인간복사기 같은 동원이를 불러 내 즉석 하모니카 연주 듀엣을 연출한다. ‘야아~ 으악 귀여워~’신청인의 탁성(濁聲)이 무대를 울린다. 무대 스크린에는 흰 눈발과 황금 눈발이 휘날린다. 사랑 땜에 울먹일세라~ 하이라이트에 신청자와 가수가 하나가 된다. ‘우와아아~’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 땜에 울먹일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 치고 돌아 앉아 우시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 불면 감기들세라/ 안 먹어서 약해질세라/ 힘든 세상 뒤쳐질세라/ 사랑땜에 아파 할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울 엄마가 보고파진다.(가사 전문)

<홍시> 노래는 나훈가가 2005년 60세에 부른 노래인데, 열대여섯 살 철이 일찍 든 청소년의 감성이 대롱거린다. 홍시(紅枾)는 생감의 떫은맛이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제거되어 단맛이 강해지고 말랑말랑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연시(軟枾) 또는 연감이라고도 하며, 연시는 물렁물렁하다고 연시라 부르고 홍시는 붉다고 하여 홍시라고 부른다. 푸른 감이 담홍색으로 익어서 감나무 가지에서 말랑거리는 계절은 깊은 가을이다. 스산한 바람이 살갗을 오므라들게 한다. 사람은 아버지에게 기(氣)를 받고, 어머니로부터 혼(魂)을 가다듬는다. 노래, 유행가 트로트는 이 기와 혼을 얽은 노랫말이고 그 노랫말이 오선지에 걸쳐진 가락이다. 그래서 흘러온 트로트의 인기 온도가 식지 않고, 오래 흘러갈 신 유행가에 대중들이 발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가요 100년사, 유행가에 걸린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몇 배나 많이 차운(次韻)되었다. 사람의 살아가는 에너지 중에서 아버지로부터 받는 기(氣)는 물리력이고, 어머니로부터 받는 혼(魂)은 감성력의 응어리이다. 유행가는 나의 감성과 너의 감성을 공명(共鳴)하게 하는 매체다. 그래서 인문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살아가는 호모사피엔스 230억여 명의 가슴속 공통단어 3개는 어머니·고향·꿈(vision)이란다. 아~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 같은 발그레한 홍시여.

1940년 진방남이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는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노래의 어머니 같은 노래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30년 차, 이 노래는 일본에서 녹음이 된 곡조. ‘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니여’노래 속의 어머니는 이승에 없다. 홍시가 익을 무렵, 그 홍시를 바라보는 자식들의 눈에는 바알간 감 알이 어머니의 얼굴로 아릴 것이리라. 192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창발(創發)한 우리 유행가는 해방광복 이전까지 4천여 곡이 발표되었다. 이 중 어머니 모티브 곡은 10여 곡. 해방광복 후 6.25전쟁 이전까지는 1949년 현인이 부른 <비 내리는 고모령>이 진수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모령(姑母領)을 배경지로 한 노래, 어머님의 손을 놓고 타관 길을 지향하는 아들의 심사를 얽은 곡조이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는 신세영이 <전선야곡>을 절창한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아래서, 장부의 길을 일러 주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사모곡(思母曲). 이 시기 판문점에서는 휴전협정의 열기가 후끈거렸고, 오늘날의 휴전선 부근에서는 고지전투가 치열했었다. 1969년 유주용은 <부모>를 부르면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등잔불 아래서 어머니와 둘이 앉아서 도란거리던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 부모의 심정은 부모가 되어서 알아차린다.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네가 부모가 되어보면 알리라. 이 노래는 김소월(1902~1934)의 시, <부모>가 모티브였다. 1973년 한세일은 <모정의 세월>, TV 드라마 어머니의 주제가를 불러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인기를 끈다. 동지섣달 긴긴밤이 짧기만 한 것은 한숨으로 지새우는 어머님의 자식 걱정이 인기 씨앗이었다. 한세일은 데뷔 초기 나훈아 히트곡을 리메이크했는데, 그중 <모정의 세월>이 대표곡이다. 이후 2005년 나훈아는 <홍시>로 대중들의 가슴팍을 후빈다. 이 노래는 <울엄마>로도 불린다.

2020년 3월 방탄소년단 정국이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홍시>를 열창했었다. 예능, <달려라 방탄 2020-에피소드 98>. 이 무대의 하이라이트, 팀 세레나데. 멤버들은 돌아가며 노래를 열창했다. 이때 정국이 <홍시>를 선곡했던 것. 흥에 취해 덩실덩실 춤까지 추는 정국은 귀여운 매력을 제대로 발산했다. 특유의 감칠맛 나는 꺾기와 간드러진 콧소리로 흥을 더했다. 트로트 노래는 나훈아도 싸이도 조용필도 방탄소년단도 싣고 바다로 흘러갈 수 있는 감흥의 돛단배다. 홍시는 장독대의 옹기 속에서 보존되면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 간식이 되고, 눈바람 속의 감나무 가지에 매달려 차가운 날 허공중을 날아다니며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길조(吉鳥), 까치들의 겨울 양식이 된다. 사람들의 감흥이 홍시처럼 익으면 행복 지수가 올라간다. 660만 중소기업인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활거린다.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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