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엄청난 굉음을 내며 이륙하던 군용기 바퀴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전날 아프가니스탄 카블공항을 이륙하는 미군수송기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뉴스로 본 탓이다. 미군이 마지막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날 카블공항은 한마디로 지옥같은 상황이었다. 이륙하는 군용기에 서로 매달리려고 뛰고 달리는 군중의 모습은 금세기 최악의 비극적 모습이다. 이 비행기를 타면 목숨을 건지지만 타지못하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이 와중에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국외로 탈출하였다.   

6.25전쟁중 태어난 나는 평생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이 우리나라의 동맹인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살았다. 전쟁중 안죽고 태어난 것도 미국 덕분이고 전후 어린시절 굶어죽지않은 것도 미국의 원조물자 덕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평생동안 미국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인간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선도국가이기 때문이다.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이 있는한 인류도 대한민국도 안전할 거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허겁지겁 철수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평생꾸어온 꿈이 산산조각 깨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말이 철수이지 명백한 패퇴의 모습이다. 

우선 두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하나는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세계최강 미군은 왜 패배했을까였고 또하나는 미국의 인도주의 가치관은 어디로 갔을까였다. 아프가니스탄 패배를 철수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변명은 스스로 지킬 수 없는 나라를 위해 미군이 주둔하고 싸울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엄청난 변명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갑자기 바뀐 것은 없다. 그들 정부는 오래전부터 부패했고 무능했고 군은 허약했다. 탈레반은 여전히 질겼고 지독했다. 어느 나라 보다도 정보력이 뛰어난 미국이 이걸 모르고 장기간 군을 주둔시킨건 아니었을 겄이다. 미국이 패한 결정적 이유는 국내정치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미군주둔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고 이게 정치권의 발목을 잡았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반드시 적을 격퇴시키라는 여론이 없는한 첨단무기 사용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미국의 이런 상황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도 탈레반도 꿰뚫고 있었다. 패배의 주원인은 미국이 열심히 싸울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패퇴한 뒤에 나온 변명이 바로 이것이다. 너희들이 열심히 싸우지않으니 우리도 제대로 싸우지않았다는 것이다. 

두번째 의문은 미국의 인도주의정신은 어디로갔는가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인도주의다. 모든 제도와 정책이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시작한다. 인도주의는 인류가 유지해가야할 가장 소중한 가치다. 미국은 인권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파시스트국가들과 싸웠고 대부분 승리했다. 독재와 인권탄압을 피해 자기나라를 탈출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택한 곳도 미국이다. 국제무대에서 인권과 자유를 옹호하고 앞장서서 이끌어온 것도 미국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선망하고 지지한 것은 바로 미국의 인간존중 가치때문이었다. 이번에 미국은 인본주의를 내던졌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인권도 내던졌지만 그동안 미국을 돕던 수만명에 이르는 공무원, 군인, 언론인, 적극협력자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이들의 안전과 목숨을 생각했다면 먼저 이들을 탈출시키고 철군을 해야했다. 이제 이들 협력자들은 탈레반 치하에서 대부분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미국을 믿고 지지하는 것은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보다 미국의 인도주의 가치관때문이었는데 이제 이 가치관은 더이상 믿기 어렵게 되었다. 이런 비난을 감수하고도 냉정하게 미군을 철수시킨것 또한 미국의 국내정치 때문이다. 한명이라도 미군의 희생을 줄이고 빨리 철수시키라는 유권자들의 요구에 정치인들이 부응한 것이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등 군부에서는 미군을 일시 증강시켜 탈레반의 공세를 막고 미군협력자들을 안전하게 탈출시키자는 건의를 했지만 무산되었다. 마크 밀리는 2000년도 초에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었고 장군진급 후에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사단을 지휘한 이 분야의 최고 군사전문가지만 정치인들의 장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이제는 전쟁의 승패도 가치관의 존폐도 모두 정치권에 달렸다.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정치만능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예전에는 정치인이 대의명분을 세우고 국민을 설득했다. 지금은 모든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 타협하고 굴복한다. 유권자의 뜻이 국민의 뜻이라고 하고 다수가 민의라고 한다. 

과연 유권자가 국민전체를 대표하는가. 다수결은 합리적인가. 미국이 수많은 협력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갑자기 철군하는걸 본 전세계인이 앞으로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주장하는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의심없이 지지할 것인가. 

인류의 지속가능을 생각하는 사람, 국가의 안전과 번영을 생각하는 사람, 우리지역의 이해타산을 먼저 따지는 사람, 나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섞여있는게 유권자집단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산 미국이 정치에 흔들리고 있다. 정치가 모든걸 지배하는 세상이다. 군사 외교 경제 문화 언론 종교도 정치가 쥐고 흔든다. 주한미군의 주둔과 철수도 미국과 대한민국의 정치인에 달려있다. 

우리나라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번에 뽑힌 대통령과 그 세력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정말 잘 뽑아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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