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산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초가을 선선한 날씨에 친구들과 등산을 하는 것은 인생의 낙이다. 산을 찾는 이유중 하나는 나무를 보는 즐거움 때문이다. 젊었을 때는 꽃이 좋았는데 이제는 꽃보다 나무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살아보니 나무가 스승이다. 새봄에는 여린 잎새를 피우고 여름에는 무성한 가지로 온산을 덮는다. 가을에는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황홀한 절정감을 주고 겨울에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차가운 동토를 묵묵히 견디어낸다. 꿋꿋이 서있는 나무를 보면 늘 든든하고 몸과 마음을 기대고 싶다. 

몇년전 자연사랑 회원들과 국립수목원을 찾아간 적이 있다. 숲해설사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온갖 종류의 나무를 둘러보니 나무가 꽃보다 아름답다는 느낌이 새삼 다가온다. 하늘 높이 쭉쭉 뻗은 나무, 화가들의 작품에나 나올법한 아름답고 웅장한 나무들이 눈을 사로 잡는다. 그런데 한 곳에 다다르니 유난히 몸통과 가지가 심하게 구부러진 나무가 보였다. 소나무야 워낙 삐뚤빼뚤하게 생긴 것이 많지만 이 나무는 소나무가 아니었다.

"이 나무는 모양이 참 특이하네요. 성격이 좀 꼬인 나무인가 봐요."

우리 일행중 한 분이 농담조로 이런 말을 꺼냈더니 숲해설사가 예상치못한 답변을 한다.

"이 나무는 살아남기위해 역진화를 한 것 같습니다. 지혜로운 나무인지도 모르지요"

진화란 생명체가 생명을 지속해가기 유리하도록 점진적으로 발달해 가는 현상이다. 다음 세대로 생명을 이어가려면 더 건강하게, 더 매력적으로, 더 생산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진화의 일반적 방향성이다. 그런데 역진화는 생존을 위해서 이런 방향성과 반대로 변화하는 현상이다. 그러니까 이 나무는 쭉쭉 뻗고 잘생긴 나무가 먼저 잘려서 목재로 쓰이는걸 알고 일부러 쓸모없는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나무가 이런 생각을 할 수있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많은 생태학자들이 역진화이론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이 역진화가 사실이라면 이 나무야말로 '생각이 깊은 나무'가 아닐 수 없다. 

그날 귀가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우선 이 말이 떠올랐다. 맏아들부터 정성껏 키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고 장가갈 때 집까지 사주었는데 세월이 지나 잘 나가는 이 아들은 부모를 모른채하고 제대로 뒷바라지를 못한 막내아들이 고향을 지키며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업에서는 이 말의 의미를 이렇게 쓰고 있다. 스펙좋은 인재를 뽑았더니 제 잘난줄만 알고 궂은 일은 피하는데 스펙이 딸려 주목하지않던 직원이 꾸준히 헌신하면서 조직발전에 기여하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약하고 부족한 사람도 무시하지말고 배려하라는 좋은 교훈을 담고 있다. 

그날 저녁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나무가 저만 살겠다고 역진화를 하면 세상에 유용한 반듯한 목재는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요즘 정치권에서는 최종 대선후보를 뽑는 과정에서 역선택이 뜨거운 감자다. 상대진영의 대선후보를 뽑는 과정에 참여해서 가장 강력한 후보를 견제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후보를 찍는게 역선택이다. 이미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면 역선택 현상이 뚜렷히 나타난다. 갑자기 치고 올라오는 후보중에는 평소 지지기반이 아닌 곳에서 지지응답이 많아진 것으로 나오는데 역선택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상황으로 보면 역선택 현상은 더 확산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자기 정당에서 자기들 후보를 뽑으면 되는데 국민투표를 일정부분 포함시키고 있다. 이 국민투표에 파고들어가서 역선택을 하는 것이다. 참으로 치사하고 부끄러운 현실이다. 역선택이 위력을 발휘하면 그 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가 컷오프당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상대당의 능력있는 후보를 떨어뜨리고 우리가 상대하기 만만한 후보를 뽑으려고 하는 일은 추태이고 만행이다. 

역선택은 대한민국의 역진화를 가져온다. 다른당 대선후보 과정에 개입해서 가장 유능한 후보를 떨어뜨리고 만만한 후보를 상대해서 정권을 잡는 일이 벌어진다면 과연 정치발전이 이루어지고 대한민국의 번영이 이루어지겠는가. 역선택을 선거전략이라고 말하는 자들이야말로 우리 정치권에서 곧바로 퇴출시켜야할 최우선대상이다. 역선택으로 온 산에 삐뚤빼뚤한 나무가 뒤덮힌다면 그 산은 가치를 잃은 산이다. 대한민국이 번영하려면 최상의 대통령을 최선의 방법으로 뽑아야 한다. 역선택으로 인해 빠뚤빼뚤한 나무같은 후보가 쭉쭉뻗은 나무같은 후보를 치고 올라오는 일만큼은 유권자가 반드시 막아야 한다. 대통령은 나라의 운명을 이끄는 사람이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전 중앙공무원교육원장·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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