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행가가 고향을 머금으면 눈물이 아롱진다. 첫사랑 춘자도 그리워진다. 한국대중가요 100년 역사의 궤적에는 88만여 곡의 노래와 40만여 명의 가수가 매달려 있다. 이 노래 중에서 고향과 지명을 머금은 노래가 국민애창곡이 되고, 유구한 세월의 인기 강 물결 위에 돛단배처럼 흘러간다. 용두산·한강·대동강·백마강·목포·영산강·안동역·부산정거장·순천만·수덕사·서산·화진포·대관령 등이 아물고 있는 유행가 제목을 떠올려 보시라. 2021년 트롯전국체전에서 최향의 목청에 걸린 <회룡포>도 이런 노래다.

이 곡은 망향 노래다. 회룡포는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일대 내성천을 휘돌아 나가는 물길에 갇힌 듯한 육지 속의 섬마을, 곡류핵(曲流核, Meander Core) 땅이다. 용이 승천을 위하여 비상의 날개를 휘돌리듯 비룡산(190m)을 휘감아 돌아가는 강물 포구라는 의미의 이름. 휘돌아 되감는 각도는 350°이며 물굽이 안에 갇힌 듯한 땅은 섬처럼 고고하다. 회룡포의 회전축 같은 비룡산 중턱에는 신라 시대부터 전해오는 천년 고찰 장안사가 있다. 이 노래 속의 화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출향인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죽을 때에 고향 쪽 언덕으로 머리를 두고 숨을 거둔 여우같은 사람이다. 내 마음 받아주는 곳, 아~ 어머니 품속 같은 회룡포.

내 것이 아닌 것을 멀리 찾아서/ 휘돌아 감은 그 세월이 얼마이더냐/ 물 설고 낯 설은 어느 하늘 아래/ 빈 배로 나 서 있구나/ 채워라 그 욕심 더해가는 곳/ 이 세상이 싫어 싫더라/ 나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련다/ 내 마음 받아주는 곳/ 아 어머니 품속 같은 그곳/ 회룡포로 돌아가련다/ 채워라 그 욕심 더해가는 곳/ 이 세상이 싫어 싫더라/ 나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련다/ 내 마음 받아주는 곳/ 아 어머니 품속 같은 그곳/ 회룡포로 돌아가련다.(가사 전문)

<회룡포> 노래 속 화자는 어느 향객(鄕客)일까. 그곳은 10여 세대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다. 오늘날 지구상에 살아가는 호모사피엔스 인간은 75억 명, 3~6만 년 전부터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지구를 살다 간 사람은 230억 명 정도란다. 이들의 영혼을 해부하면 두 단어가 남는단다. 고향과 엄마. 이 고향을 중심으로 파생된 단어가 출향·타향·망향이다. 이 세 단어를 합치면 타향이고, 그들의 귀결점이 귀향이다.

<회룡포>를 부른 강민주는 이 곡을 작사·작곡한 고경환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노래 <삼강나루>를 부른 가수다. 삼강나루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낙동강 변에 있는 강 포구다. 삼강(三江)은 낙동강·내성천·금천이 합류하는 지점.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삼강주막이 있다. 1900년에 세워져 100년을 이어온 주막. 조선 시대부터 낙동강을 따라 한양을 오르내리던 장꾼이나 과거시험 길에 오른 선비, 삶의 애환을 품은 나그네들이 이 주막에서 투숙하며 숨을 고른 뒤 문경새재(조령, 鳥嶺)를 넘었다. 이 주막은 뱃가할매로 불렀던 유옥연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50여 년 동안 이 주막을 지키다 2005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삼강나루> 노래는 이 할머니의 삶을 이순창과 박용진이 얽은 곡조. <회룡포> 노래는 이런 노래에 뒤이어 예천군 홍보를 위하여 기획한 노래, 고경환이 노래를 만들어서 <삼강나루>를 부른 강민주를 찾으면서 작품자와 가수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회룡포는 수정처럼 맑은 물과 반짝이는 금빛 모래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예술품 같은 강마을이다. 노을이 질 때 반짝이는 황금물결, 2002년 방영한 KBS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주인공 어린 시절 촬영지다.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고, 마음이 외로우면 연인을 찾는다. 하지만 타관 객지에서 서러움이 넘치면 고향과 엄마를 찾는다. <회룡포> 노래 속 화자는 내 마음 받아주는 곳, 어머니 품속 같은 회룡포를 절규한다. 서러움 넘실거리는 목청으로.

<회룡포> 원곡 가수 강민주는 본명 김화연, 1965년 경기도 연천 출생이다. 그녀는 2019년 제6회 한중치맥축제 홍보대사를 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1987년 KBS 신인가요제 대상 수상자다. <여백>, <난 너무 뜨거운가 봐>, <사랑의 성(城)>, <톡톡 쏘는 남자>, <로맨스 사랑>, <욕심 없는 여자>, <내 사랑 연가> 등으로 대중들과 소통한다. 2021년 트롯 전국체전에서 <회룡포>를 절창한 최향은 본명 박지희, 1995년 익산 출생 전남대 재학생이다. 그녀는 2017년부터 국내 각종 가요제에 참가하여 받은 상이 20개가 넘는 아마추어 베테랑, 알앤비·힙합·국악·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기량을 보유하였지만 초보자 같은 매력 무대 울렁증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회룡포를 굽어볼 수 있는 장안사는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왕실이 국토 세 곳의 명산에 같은 이름으로 건립한 사찰 중 하나다. 기장군 장안읍 불광산에 있는 장안사, 통일신라 승려 원효 창건했다. 회양군 장양면 장연리 금강산 장경봉에 있던 장안사. 회룡포 비룡산 장안사 등. <회룡포> 노래를 만든 고경환은 강원도, 원곡 가수 강민주는 경기도, 리메이크 가수 최향은 전라북도 출생이다. 노래 모티브 지역으로 치면 모두가 타향 사람들이다. <안동역에서>로 스타가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진성(1960년 부안 출생)이 경북 노래를 부른 것과 같다. 가수의 인기와 노래의 고향은 비례하지 않는다.

유행가만큼 시대와 역사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구전(口傳)할 수 있는 수단도 드물다. 편년체 기록역사에 더하여 사람들의 삶을 골간으로 하는 인류학적 유물로써 유행가의 값어치를 어찌 산술 합산할 수 있으랴. <회룡포> 노래는 역사를 품고 있다. 유행가는 노랫말로 그 시대를 살아낸 대중들의 정서와 이성을 대변하고, 가락과 장단으로 민중의 감성과 서정적 음유를 내포한다. 이러한 노래는, 머리로 부르는 노래·입으로 부르는 노래·가슴으로 부르는 노래·영혼으로 부르는 노래·몸으로 부르는 노래로 분류할 수 있다. 머리로 부르는 노래는, 사유와 음유를 동반하는 노래다. 입으로 부르는 노래는, 이쪽 귓구멍에서 저쪽 귓구멍을 관통하는 노래이고, 가슴으로 부르는 노래는 대중들의 가슴 방에 녹아들어 묶고·삭고·익어서 세월을 더 할수록 맛을 더하는 토종 간장처럼 우려진다. 영혼으로 부르는 노래는, 깨어 있는 영혼을 흔들거나 잠들어 있는 영혼에 자극을 가하여 깨운다. 한편 몸으로 부르는 노래는, 가사와 가락보다는 퍼포먼스 같은 율동과 안무에 더 비중을 두어 청각적 음유보다는 시각적 유희의 역할을 한다. 최향의 <회룡포>는 영혼으로 부르는 노래다. 고향을 생각하며 눈물 그렁거리는 망향 노스텔지어여~.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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