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순천만, 국가 정원 1호에 유행가 가락이 매달렸다. 2021년 트로트 전국체전에서 최종 2위를 차지한 재하의 목청에 걸린 노래, <순천만 연가>. 옛 노래를 다시 부르는 온고(溫故)의 열풍이 펄럭거리는 트로트 경연 무대에 신곡 깃발을 흔든 노래다. 트로트 열풍, 지신(知新)의 새바람은 언제 불어올까. 노래 경연장마다 흘러온 노래, 애청자들의 가슴속에 잠기어 있던 노래들이 무대 위에 저렁거린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 음원 창고에는 88만여 곡이 쟁여져 있다. 이 노래 중에서 경연 무대에 불려 나온 노래는 새 가수의 노래로 환생한다. 경연 다음 날 리메이크 가수 이름의 음원으로 재발매되는 상업적 프로세스다. 2021년 2월 결승전을 펼친 트롯 전국체전, 본선에 불려진 노래는 150여 곡인데, 신곡은 8곡뿐이었다. 이 중 한 곡조가 <순천만 연가>다. 이 노래는 순천만 갈대밭 밝은 하늘에 떠 있는 희미한 낮달,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을 얽은 노래다. 재하는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부른 트로트 가수 임주리의 아들, 1993년 미국 출생 본명 이진호다.

순천만 갈대밭에/ 바람에 지친 낮달은/ 누구를 기다리나/ 마음만 서럽다/ 미워해선 안 될 사람/ 나 홀로 우는 이 밤/ 그리워서 못 잊어서/ 가슴만 애태우다가/ 아 맴도는 그 얼굴/ 잿빛 하늘로 가려지고/ 아 그리다 지우다/ 지우지 못한 그 얼굴/ 미워해선 안 될 사람/ 나 홀로 우는 이 밤/ 그리워서 못 잊어서/ 가슴만 애태우다가/ 아 맴도는 그 얼굴/ 잿빛 하늘로 가려지고/ 아 그리다 지우다/ 지우지 못한 그 얼굴/ 지우지 못한 그 얼굴.(가사 전문)

밤새 그리움에 지친 달이 해가 밝아도 이지러지지 못했다. 그리다가 지우다가 지우지 못한 연인에 대한 미련이다. 애절한 사연을 품은 노랫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신유진이 노랫말을 얽고 임강현이 곡을 엮은 <순천만 연가>의 모티브는 낮달이다. 낮에도 지지 않는 이 낮달을 모티브로 한 노래와 시가 더러 있다. 김병걸이 노랫말을 짓고 정음이 곡을 얽어서 스스로 불렀던 <낮달>을 <순천만 연가>에 걸쳐보자. ‘외롭던 날에 서로 만나서/ 마음을 주고받았네/ 세상 끝까지 같이 가자고/ 다짐도 많았네/ 낮달처럼 잘 보이진 않지만/ 사랑은 그런 거라고/ 말 안 해도 우린 알기에/ 서로가 아껴주었네/ 아 이 사랑 이 마음이/ 영원히 지지 않도록/ 하늘 높이 높이 떠 있는/ 낮달 같은 사람아’이 곡의 감흥은 너무 먼 당신이다. 존재하지만 눈여겨 찾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나만의 연인, 그대 얼굴이라서 더 애가 탄다. <순천만 연가> 노래 속의 주인공이 찾는, 지우지 못하는 연인의 모습은 낮달을 닮은 인연이 아닐까.

엠시더맥스가 부른 <낮달>은 <순천만 연가>의 낮달과 어찌 다른가. ‘어서 내게 달아나/ 놔줄 때 날 떠나가/ 이 순간이 아니면/ 영영 못 보낼지 난 몰라/ 좋은 내가 못돼서/ 잘해준 기억도 없어/ 뒤늦게 정말 미안해/ 괜찮아져 시간이 가면/ 사랑했던 기억조차 희미해져/ 익숙해져 죽을 만큼 아파도/ 태양 빛에 가린 하얀 저 달처럼/ 볼 수 없는 건 이 세상에 없는 거야/ 넌 날 잊어야 해’ 노래가 역설적이다. 볼 수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인가. 태양 빛에 가려 있지만 낮달은 밤이 되면 다시 어둠을 비추이듯이, 네가 내게서 떠나가도 영원히 널 사랑할 터인데. 순천만에 떠 있는 낮달, 태양 빛에 가려진 달은 존재하지 않는 달인가, 응답하시라 떠나간 사랑님이시여.

이경선의 시 <낮달> 속의 달을 <순천만 연가>에 오버랩해보자. ‘낮달아 너는/ 어떤 마음이기에/ 어인 슬픔이기에/ 여직 깨어 있는지/ 지난밤의 그리움으로도 부족했는지/ 얼마나 오래 사무치고 아파해야/ 고이 잠들 수 있는지/ 언젠가는 밤 자락 한 올/ 너의 자리 고이 품어주길 바라면서/ 다만 너의 그리움/ 고독의 발로(發露)가 아니길 바라면서.’이 시의 결말, 발로(發露)는 숨은 것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혹은 자기의 죄와 허물을 여러 사람에게 고백하여 참회함이다. 그래, 낮달이여~ 그대 얼굴을 보이시라, 어둠이 내리기 전에라도.

<순천만 연가> 노래의 모티브 지역 순천만은 여수시·고흥군 여자만(汝自灣)을 포함하는 풍덕동·오천동 일대 연안습지다. 2008년 순천만 일대가 국가정원 1호로 지정되었다. 남북 30km 동서 22km이다. 이곳의 S자형 수로는 우리나라 10대 낙조(落照) 중 하나이고, 철새가 떼 지어 날아오르는 광경이 장관이다. 112만여m²34만여 평에 이르는 이곳은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폐막 후 그 장소를 개조하여 조성했다. 이 정원에는 86만여 그루의 나무와 장미·해바라기·코스모스 등 65만여 그루 꽃이 심겨 있다. 정원박람회 기간에는 440만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으며, 23개국에서 83개의 정원을 바다 위에 그림처럼 펼쳤다. 특히 프랑스·중국·네덜란드·미국·독일·스페인·이탈리아·영국·일본·태국·멕시코 등 참가국에서 11개의 세계정원을 선보였다. <순천만 연가> 노랫말을 지은 신유진은 왜 순천만의 낮달을 노랫말의 모티브로 삼았을까. 혹여라도 그녀는 순천만에서 해맑은 대낮에 사랑하는 연인들 떠나보내지는 않았을까. 밝은 태양 빛에 가리어 스스로의 빛을 잃어버린 낮달 같은 인연을.

<순천만 연가>의 주인공 재하 어머니, 임주리는 1958년 영광 출생 본명 임윤정이다. 그녀는 1977년 미8군 무대에서 풀케치의 리드싱어로 활약하다가 1979년 TBC 드라마 인기 여배우 정윤희가 주인공 곰례 역을 맡은 ‘야 곰례야’의 주제가 <야! 곰례야>를 부르면서 데뷔했다. ‘눈감으면 보여요/ 고향의 오솔길/ 그리운 것 같아요/ 고향의 새소리/ 메마른 가시덤불 헤치며 살지만/ 마음속엔 꽃내음이 가득찼어요~’이 주제가는 히트했지만 무대에서 알릴 길이 없어 얼굴 없는 가수로 남았다. 그러던 중 1987년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발표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아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3년 이 노래를 배우 김혜자가 MBC 연속극 <엄마의 바다> 속에서 혼자 흥얼거리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다. 이를 계기로 임주리는 귀국하여 다시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 엄친아(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아들) 재하(이진호)는 미국에서 귀국하기 전에 낳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알게 된 유부남, 이후 한국으로 찾아와서 임주리와 혼인을 하지만 다시 결별한다. 재하는 임주리가 의지하는 남편 같은 아들이다. 재하는 엄마 임주리의 달이다. 낮이나 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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