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드디어 올 것이 왔다. 21세기 트로트 열풍을 넘어 우리 전통노래와 유행가를 버무린 조선 팝(Chosun pop) 깃발이 펄럭거린다. 앵무새처럼 리메이크 노래를 열창하게 하는 기획연출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반복하는 스핀오프(spin-off) 무대에도 경종을 울린다. 국악에 발라드·힙합·팝·트로트·클래식 가락이 혼융되고, 꽹과리와 해금에 기타와 드럼이 더해졌으니 융합창조이다. 이처럼 굿판과 같은 무대를 2021년 7월 31일부터 3일간 3부로 KBS 전주방송국에서 펼쳤다.

조선팝 드랍 더 비트(chosun-pop drop the beat). 제1부 천상의 소리를 만나다, 제2부 전설의 시작, 제3부, 신유행가의 탄생이다. 드랍 더 비트는 ‘뮤직 큐~’와 같은 의미의 음악 시그널이다. ‘음악~ 주세요, 비트를 깔아주세요~’라는. 이 무대를 풍성풍성 쿵쾅거린 노래가 <남원 가는 길>이다. 이 노래는 연대와 작사 미상의 소설 <춘향전>을 패러디 한 곡, 한양(서울)으로 떠난 이도령(몽룡)이 과거급제를 하여 남원에서 변 사또의 수청 요구를 거절하고 옥살이를 하고 있는 춘향(성춘향)이를 찾아가는 서정을 얽은 곡이다. 저 깊은 산을 넘어가면 춘향이를 만날 수 있을까.

이 깊은 산을 넘어서/ 저 넓은 강을 지나면/ 내 사랑하는 춘향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가벼웁고/ 새 소리마저 정겨운/ 이내 심정은/ 말할 수 없이 즐거워/ 이 기분 좋은 바람에/ 널 사랑하는 마음 담고/ 저 흐르는 강물 속에/ 지난 외로움 버리고/ 넌 잘 지내고 있을까/ 내 손길을 기억할까/ 난 있잖아/ 한 번도 널 잊은 적이 없어/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우리 만나면/ 내가 보고 싶던 만큼/ 꽉 안아주겠어/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우리 만나면/ 다신 이별 없는 사랑/ 영원토록 하고싶소// 어야디여차 가자/ 내님 있는 곳으로/ 어야디여차 가자/ 우리 춘향이 보러/ 어야디여차 가자/ 설레는 이 맘 안고/ 어야디여차 가자/ 어화둥둥 사랑가로/ 다시 한 번 놀아보자/ 어야디여라/ 둥둥둥 내 낭군/ 어야디여라 어허 둥둥 내 낭군/ 보고 싶던 만큼 꽉 안아주겠어/ 둥둥 둥둥/ 도련님을 업고 보니 어야디여라/ 좋을 호자가 절로나 어야디여라/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우리 만나면/ 내가 보고 싶던 만큼 꽉 안아주겠어/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우리 만나면/ 다신 이별 없는 사랑/ 영원토록 하고싶소/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우리 만나면/ 내가 보고 싶던 만큼/ 꽉 안아주겠어/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우리 만나면/ 다신 이별 없는 사랑/ 영원토록 하고 싶소.(가사 전문)

<남원 가는 길> 노래 속의 주인공은 오로지 춘향이 생각밖에 없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새 소리를 들으면서 옛정을 생각한다. 다시 만나면 보고 싶은 것만큼 꽉 안아주리라고 다짐도 한다. 도련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好) 자가 절로 난다는 춘향의 후렴은 이 도령의 속마음이다. 우리 다시 만나면 이별 없는 사랑, 영원토록 함께 하고 싶은 다짐은 해후(邂逅) 이후의 두 연인 약속이다. 이 메시지는 만나고 헤어짐의 갈림길에서 쉬이 손을 흔드는 오늘날의 가벼운 사랑 놀음과는 급(級)과 차원이 다른 연심곡(戀心曲)이다. 유행가는 통속적인 풍설인 듯하지만, 삶의 달고 매운 맛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서정이다. 이처럼 흘러온 유행가를 곱씹거나 패러디하면 선조들 삶의 향기가 가슴팍에 아롱아롱 매달린다.

<남원 가는 길>은 2014년 EBS 제1회 K-Story Pop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받았다. 억스는 2009년 복촌창우극장 천차만별 콘테스트 참가를 시작으로 국악과 양악을 혼융한 노래와 연주를 하는 밴드다. 이들 노랫말 모티브와 멜로딩은 퓨전감흥을 지향한다. <남원 가는 길>은 판소리 춘향난봉가 OST 중 한 곡, <새타령>·<사랑가>·<이별가>·<구애>·<Hero>·<사랑>·<아리랑> 등이 같이 불린 노래다. 억스가 절창하는 노래는 과거와 현대를 대비시키고, 태평소(날라리)와 꽹과리와 해금을 동반한 기타와 드럼의 앙상블은 우리의 고유 악(樂)에 서양 악을 더한 퓨전이다. 우리 고유의 토색(土色)에 양색(洋色)을 더한 신토색(新土色)을 창안하여, 인류의 감흥을 선도하는 글로벌 K-POP의 깃발을 흔드는 것이다. AUX 멤버는 배두훈·서진실·최순호·한두수·홍정의·박세라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서 소설 춘향전을 모티브로 한 유행가는 1953년 김용만의 데뷔곡 <남원의 애수>가 서단(緖端)이다. 김부해 작사 김화영 작곡의 노래. 이 도령의 연인 성춘향, 그녀는 남원 골 변 사또의 수청 핍박을 옥살이로 견디어 낸 주인공이다. 그래서 <남원의 애수> 노래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양 천리 떠나간들 너를 어이 잊을 소냐/ 성황당 고개 마루 나귀마저 울고 넘네/ 춘향아 울지 마라 달래였건만/ 대장부 가슴 속을 울리는 님이여/ 아~ 어느 때 어느 날짜 그대 품에 안기려나.’<남원 가는 길> 노랫말과 <남원의 애수> 노랫말은 오버 랩 되는 소절과 의미가 많다. 그래서 신유행가의 탄생이라는 모티브에 걸 맞는 것이다.

이 두 노래는 고전소설 <춘향전>을 얽은 노래다. 노래 속의 광한루(廣寒樓)는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누각으로 조선 태조 때 방촌 황희(1363~1452)정승이 세웠고, 본래 이름은 광통루(廣通樓)였으나, 정인지(1396~1478)가 광한루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1638년(인조 16)에 재건되었고,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각지붕 양식이다. 이곳은 이몽룡과 성춘향이 첫사랑 인연을 맺은 곳으로 경내에 춘향사당이 있다. 춘향전은 작자·연대 미상 소설로 국한문 70여 종이 전해온다. 줄거리는 남원기생 성춘향이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나 장래를 언약한다. 두 사람이 남모르는 사랑을 하던 중 사또가 서울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된다. 춘향은 지조를 지키느라 다른 사람을 만나려 하지 않지만 새로 부임한 변 사또는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강요한다. 춘향은 죽기를 무릅쓰고 신관 사또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옥(獄)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한다. 이때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온 이몽룡이 춘향의 목숨을 구하고 함께 서울로 올라가 평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

노래 중간에 소설 내용을 대사로 엮은 구절이 절절하다. ‘도련님 저만 두고 가시나이까/ 춘향아 우지마라/ 내가 가면 아주 가냐/ 간다고 잊을 소냐/ 광한루에 봄이 오고/ 오작교(烏鵲橋, 까마귀와 까치가 지은 다리)에 꽃이 피면/ 님 그리운 회포를 어이 풀란 말이요.’소설을 대사 화한 중간 멘트, 노랫말에 귀가 쏙쏙 끌리게 한다. 흘러간 대중가요에 역사의 옷을 입히면 개인사가 민족사가 되고, 민족사가 인류사가 되며, 인류사는 인류학으로 승화된다. 백성들의 규범이 통일되면 다스리기가 쉽고, 제각각이면 어지러울 수가 있다. 하지만 문화예술은 백화제방처럼 피어나야 한다. 그래서 대중가요계에는 금지곡도 블랙리스트도 접근 금지되어야 한다. 이는 2021년 조선팝 드랍 더 비트(chosun-pop drop the beat)에서 ‘천상의 소리를 만나다, 전설의 시작, 신유행가의 탄생’을 열연한 메시지이다.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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