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새정치’에 대한 논쟁은 실종되고, 후보자의 지지율과 네거티브 선거캠페인만 난무하는 제20대 대선전을 보고 있다. 지금까지 새정치에 대한 언급이 없다. 새정치가 필요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포기해 버린 것인가. 겉으로 볼 때 새정치에 대한 욕구와 희망마저 꺽인 것은 아닌가 많은 우려가 있다.

한국정치의 진화가 필요할 때다. 모든 정치주체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정치토론을 하고 보수·진보의 정당들이 이를 수렴하고 생산하는 정상적인 정당정치를 할 시점이 이제 와야 할 것이다. ‘새정치’는 정권논쟁만 일삼는 보수·진보, 여·야 간 양극단의 대결구도를 끊고 대화하고 타협하는 정치논쟁을 하라는 것이다. 한국 정당정치 역사 속에서 새정치로의 발전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권력논쟁→체제논쟁→정권논쟁의 과거 정당 역사를 정리하고, ‘정치논쟁’을 하는 새정치(제4 정당정치)의 개막과 그 당위성을 탐문한다.

◆ 자유당 권력중심의 제1 정당정치 시기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모델로 삼아 “나는 어떤 정당에도 속하지 않겠다”고 국부로서 정파 초월의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러나 1948년 8월 15일 일정에 헌법제정을 맞추느라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는 세계에 유래 없는 제헌헌법이 탄생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국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고 2년 후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곧 닥쳐올 2년 후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야 하는데 대통령을 뽑을 의회는 완전히 야당뿐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대통령 선출방식을 국회 간선제에서 국민에 의한 직선제로 개헌하고 최초의 집권당인 자유당을 창당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다른 것은 스스로 다짐했던 것과는 달리 집권을 위한 정당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국의 집권정당은 처음부터 대통령의 권력을 위해서 종속된, 정치권력에 줄을 서는 정당으로 출발되었다. 이승만이 건국 대통령으로서 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정치적 측면에서는 좋지 않은 집권정당을 탄생시켰다는 것은 큰 유감이다. 모름지기 정당이란 민주적으로 권력을 창출하는 결사이건만, 정반대로 권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자유당이 제1 정당정치 시기 한국 집권당이었다. 4·19혁명에 의해 민주당 중심의 정당정치가 부활하는 듯했으나 5·16군사쿠테타는 이를 종식시켜 버렸다.

◆ 쿠데타와 체제논쟁의 제2 정당정치 시기

5·16군사 쿠데타는 군의 정치개입에 의한 대한민국 헌정의 파괴로서 정당정치에도 불가역적 내상을 주었다. 5·16군사 쿠데타→3선개헌→유신의 영구집권으로 진행된 권력집중의 단계적 제도화 과정에서 박정희 정권의 헌정체제는 한국정치문화와 환경의 후진성을 강조하는 논리를 개발하여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제5공화국 전두환은 박정희 정권을 노골적으로 답습했다.

양김과 신민당 및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야당의 정치도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토론·타협과 정권교체의 궤도가 아닌 반체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심지어는 체제논쟁 과정에서 ‘사쿠라’, ‘어용’의 오명을 달기도 했고, 상당 부분 정당 아닌 반체제 인사에 의하여 체제논쟁이 주도되었다.

한국정당정치 역사상 가장 안좋은 시기로서, 쿠데타 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민주공화당과 민주정의당의 집권당이 생겼던 때를 제2 정당정치 시기로 분류할 수 있으며, 야당도 정당민주주의에 있어서는 최악이었다. 호남·영남에서 DJ와 YS가 어떤 당을 만들어도 그 당의 공천자는 무조건 당선되는 현상을 보여서, 야당 역시 정당의 권력자에 종속되어 자율성이 없었던 것이다. 제2 정당정치 시기에 있어서 야당의 역할은 반체제논쟁의 중심이 되는 것이고, 여·야 정당정치는 극렬투쟁의 행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6·10항쟁은 군부독재자와 체제논쟁의 한국정당정치의 시대를 종결지었다.

◆ 6·10항쟁과 정권논쟁의 제3 정당정치 시기

‘87체제 출범 이후 헌법 규범대로 정권교체가 수시로 이루어졌다. 정권교체논쟁을 계속 해 오고 지금까지 수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으나 그 밑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지역주의라는 것이다. 지역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가끔 도래하기도 했지만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는 전가의 보도로서 그 위력을 발휘해 왔고, 요즘은 이념적 대결 구도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화·타협과 상생·협치의 정치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이 시기를 크게 DJ·노무현 대통령 시기와 MB·박근혜 대통령 시기로 구분하면 DJ와 노무현 시기는 정치과잉의 시대로서 이념이 많이 난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MB가 들어서면서 경제가 제일 중요하다는 논리를 우선시하면서 MBㆍ박근혜 시기에는 정반대로 정치가 실종되었다. 정치 없이 대한민국이 잘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정치실종은 국민통합과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괴멸되면서 국가 전체가 침하되는 위기로 갔다. 이에 정치부활은 시대적 요구이고, 바로 이 부분이 ‘새정치’ 내지 ‘새로운 정치’로 명명되었으며, 안철수 같은 아웃사이더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정치논쟁의 새정치가 촛불혁명의 국민적 요구이자 명령이었고, 춧불혁명은 한국민주주의를 재점화하고 있다.

◆ 촛불혁명과 정치논쟁의 제4 정당정치론

‘제4 정당정치론’이라는 것은 이 땅에 기본이 있는 상식의 정치를 다시 시작해 보자는 것이고, 과거에 새정치라 불려왔다. 정당정치가 정상적인 선진국의 경우 정당의 힘이 강하여 정당이 합의하면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결정된다. 좌파든 우파든 정당에 각종 조합을 비롯하여 관련 사회단체가 거의 정치적으로 편입되어 있어서 국가를 움직이는 정당의 힘이 막강하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정당이 자기 구실을 전혀 못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정당 간의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관련 단체들이 안 한다고 하면 그 합의는 유명무실해져 버린다. 정치적 결단의 전당으로서의 정당이 간판만 정당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 간판도 공천을 받으면 괴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자율성과 사회적 리더십이 전혀 없는 정당들이 건재하고 있는 것이 한국정치의 현주소이다.

‘87체제 이후 정치적 민주화는 달성되었지만, 삶과 민생에 동원되어야 할 정치의 목적성이 정권 재창출과 정권교체만을 노리는 정권논쟁에 번번이 휩쓸려 가 버렸다. 4·19혁명 후 반독재개헌, 6·10항쟁 후 직선제 개헌을 하였다면 2017 광화문 촛불혁명은 국정농단을 심판하고 정치권의 정상화를 명령하였다. 촛불혁명은 진보만의 승리라기보다 전국적 범위의 국민 주도적 정치 결단으로서, 극단적인 여야 대결구도가 아닌 타협과 상생의 새정치를 요구하고 있다.

새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은 대통령 선거때마다 싸움과 편 가르기에 능한 여의도 정치가 아닌 아웃사이더를 선택해 왔다. 제20대 대선전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야권에서 이재명과 윤석열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어느 누구와도 사회민주화와 경제민주화에 대하여 정치논쟁을 할 수 있는 대통령이 탄생할 때가 되었다. 2022년 3월 9일 새정치에 걸맞는 대통령을 결정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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