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콜마 연수원장

가을 빛깔이 자꾸 말을 걸어온다. 서걱거리는 소리도 눈에 보인다. 가을은 푸르름 속 붉은 한 잎으로 시작된다. 홍일점(紅一點)이 가을의 불씨다. 이 말은 원래 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이란 시의 끝부분이다. 새파란 덤불 속 빨간 꽃 한송이가 피어 있다는 뜻. 송나라 시인 왕안석(1021~1086)의 <영석류시>(詠石榴詩)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에 청일점(靑一點)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홍은 많은 남성 중의 한 여성, 청은 많은 여성 중에 있는 한 남성을 의미한다. 이 점(點)은 바로 내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얻는 것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다. 인생사 여기에 속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돈·명예·직위·벗·건강·전쟁의 승패·직장도 이와 같다. 이 모든 것을 오래 간직해가는 것, 그것은 바로 장생(長生)이다. 이 장생을 유지하지 못하고 떠나간 사랑, 그 서글픔을 얽은 노래가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이다. 가을 노래다. 그 가슴 아픈 이별은 낙엽의 뜻이었던가? 코리언 엘비스 프레슬리, 차중락의 서글픈 사연. 찬바람이 싸늘한 날, 몹시도 그리운 따스하던 너의 뺨. 낙엽이 지면 사랑도 떠나가는 줄을 왜 몰랐던가~.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고이 간직하렸더니/ 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 따라 가버렸으니// 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하오 어찌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 따라 가버렸으니.(가사 전문)

사랑의 꿈이 떨어지는 낙엽을 따라 시들었다. 사랑도 멀어져간다. 이쯤 되면 동인춘색불수다(動人春色不須多)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색깔은 모름지기 많을 필요가 없다. 사람은 많은데 내 사랑은 오직 하나다. 왕안석이 얽은 홍일점은 바로 석류꽃이고 열매다. 꽃도 발갛고 무르익은 열매의 낱알도 빨강 립스틱을 머금은 여인네의 이 싹 같다. 통속 여인네의 헤픔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고고하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속 여인네도 석류 같은 아낙이었나. 신라시대 우리나라 최초로 당나라 유학을 한 고운 최치원도 <석류> 시를 남겼다. ‘뿌리는 진흙 사랑 성품은 바다 사랑/ 열매는 진주 같고 껍질은 게 같아라/ 새달콤한 고것 언제나 맛볼까/ 잎 지고 바람 높은 10월이라네.’가을을 상징하는 석류 꽃말은 바보스러움·원숙한 아름다움이다.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발표할 당시 24세, 차중락은 194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라톤 선수이자 인쇄소를 경영하였고, 어머니는 육상선수였다. 시인 김수영과는 이종사촌 간이었다. 그는 중고등시절 육상선수로 활약하였고, 한양대 연극영화과 1학년 때인 1961년 보디빌딩으로 미스터코리아 2위에 입상하였다.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영화감독,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 어머니 친구 아들이 일본에서 활동하다 귀국하여 차중락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넌 일본에 가면 대성공을 거둘 것이다’라고 한 말을 듣고 일본행을 결심하고 인천 앞바다에서 밀항선(密航船)을 탔었다. 그러나 그 배가 도착한 곳은 부산이었다. 밀항 사기에 걸려든 것이었다. 1963년 서울로 돌아온 그는 사촌형 차도균(키보이스 멤버)의 권유로 키보이스에 합류하였으며, 미8군무대에 오른 첫날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시민회관 공연 때는 검은 장화를 신고 나갔는데, 이 모습이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 미국 로큰롤 가수)와 비슷하다고 한국의 엘비스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누렸었다. 하지만 운명(運命)인가 숙명(宿命)인가. 그는 1968년 11월 10일 서울의 어느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던 중 뇌막염으로 쓰러져 회생하지 못하고 27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42세로 이승을 등진 미국의 엘비스를 따라간 것인가. 그의 묘는 망우동 공원묘지에 있고, 조병화 시인이 쓴 추모시 <낙엽의 뜻> 묘비가 지난 세월을 기억하며 풍상을 이기고 서 있다. 묘비문은 이렇다. ‘세월은 흘러서 사라지미여, 소리 없고/ 나뭇잎 때 따라 떨어지매, 소리 없고/ 생각은 사람의 깊은 흔적, 소리 없고/ 인간사 바뀌며 사라지매, 소리 없다/ 아, 이 세상/ 사는 자, 죽는 자/ 그 풀밭/ 사람 가고 잎 지고 갈림에, 소리 없다.’

그렇게 한국의 엘비스는 불후의 노래만 남겨놓고 낙엽처럼 떠나갔다. 다음 해부터 가요계에서는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落葉賞)을 제정하여 시상하였으나, 지금은 사라졌다. 그 시절 낙엽상을 받은 가수가 이수미다. 1972년 우수한 활동을 한 남녀신인가수에게 시상한 상. 수상 노래는 <여고 시절>이었다. ‘어느 날 여고 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 변치 말자 약속했던 우정의 친구였네/ 수많은 세월이 말없이 흘러/ 아~ 지나간 여고 시절 조용히 생각하니/ 그것이 나에게는/ 첫사랑이였어요.’이수미는 1952년 영암 출생 본명 이화자다. 1969년 <당신은 갔어도> 노래를 부르면서 이수미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그 이수미도 2021년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향년 69세의 낙엽이다. 낙엽 따라 떠나간 사랑이다.

1969년 김기덕 감독이 당대 최고의 여배우 문희 주연으로 이 노래 영화를 제작하였으나, 흥행에 실패하였다. 감동을 선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혼은 감성의 불꽃에 휘발유를 뿌리듯 타오르게 해야 한다. 인기는, 돈은 사람을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도(道)를 뒤따른다. 송나라 부자 감지자의 돈 버는 방식은 특이했다. 그는 파격의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는 다듬지 않은 박옥덩어리를 사려고 흥정을 하다가 일부러 떨어뜨린다. 아뿔싸, 그리고는 얼른 정중하게 변상해주고 부스러기를 긁어 담아온다. 그리고 가공하여 몇  갑절 이득을 챙겼다. 감지자는 《한비자》(韓非子)의 설림편에 나오는 장사꾼이다. 유행가의 히트와 장사는 다르지만 도(道)는 하나다. 요즈음 유행가 트로트 프로그램은 본방송에서 파생된 스핀 오프(spin-off)가 더욱 요란하다. 흘러온 노래를 리메이크로 부른 다음 날 정오가 되면 새 가수의 음원으로 발표된다. 상업적인 전략이다. 노래가 전하는 철학적 메시지는 없고, 유희의 풍물(風物)이 난무한 끝은 코로나19의 터널을 빠져나갈 시점이 될 터이다. 그때를 대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시라. 조선팝 드랍 더 비트와 조선판 스타 등이 그 깃발이다.

2017년 가요무대에서 진해성이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열창했다. 영동으로 떠나는 가을 여행 편, 태백준령 동녘에는 단풍 물결 낭랑하다. 가을은 떨어지는 오동잎 한 잎으로 왔다가 마른 잎으로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단풍잎 속으로 사라진다. 차중락의 친동생 가수 차중광이 2020년 하늘의 별이 되었다. 대학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하던 그는 형 중락이 요절한 후 가수로 데뷔했었다. 그는 <영원한 나의 집>·<낙엽 따라 왜 갔나>·<내 사랑 미나> 등을 남겼다. 선배 가객이기도 했던 형 중락이 하늘로 간 52년 만이다. 그들 형제는 하늘에서 듀엣으로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열창하고 있을까. 낙엽 지는 소리가 스산하다.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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