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은 우리네 삶과 기억에 어떻게 얽혀 있을까. 지금은 보물 취급을 받고, 산사(山寺)의 행랑 섬돌에서나 볼 수 있는 고무신은 우리 민족 삶의 진화와 함께 기억 속의 퇴적물이 되어간다. 더군다나 검정 고무신에 얽힌 기억을 되살피려면, 기인 세월 저편에 있는 추억 여러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 하지만 흘러온 유행가를 살피면, 고무신에 얽힌 서정과 애환을 되새길 수 있다. 유행가의 매력이다. 노래는 저마다 그 탄생 시점의 시대 상황과 민초(民草)들의 삶을 품고 있다. 각각의 노래가 세상에 처음 나올 당시 작사·작곡·가수·시대·사연·모티브·사람들 습생 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노래일수록 대중들의 입에 오래 불리고, 가슴팍에 애잔하게 도사려진다. 이런 노래가 국민애창곡이 된다. 2010년 한동엽에 목청에 걸린 <검정 고무신>을 보시라. 어머님 따라 고무신을 사러 5일 장터에 가던 기억이 대롱거린다. 밤이면 밤마다 검정 고무신을 머리맡에 두고, 보릿고개에서 잠이 들었었다. 잃어버릴라 닳아질세라 애도 태웠다. 그 고무신을 신고 고갯길을 넘을 때는 고무바닥이 닳을까 봐 신을 벗어들고 맨발로 흙바닥을 담방 담방 걷던 기억이 새록거린다. 아~ 추억 속의 검정 고무신.

노랫말이 어머님과 아들과 멍멍개의 발자국을 졸졸 따라간다. 길가에 들꽃도 들바람결에 팔랑거린다. 마음은 발걸음을 앞서가고, 고무신을 머리맡에 두고 자는 꿈도 꾼다. 어린 날의 기억이다. 노랫말을 얽은 김병걸·이충재의 검정 고무신에 얽힌 되새김이다. 607080세대들 삶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이런 대중들 삶의 발자국은 유행가에 얽힌다.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에 고무신은 어떤 모티브로 얽혔는가. 1960년대 최숙자는 <옥색 고무신>을 절창했다. 1956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흑백 TV가 방영되었고, 1960년대 불후의 인기 드라마가 <아씨>였다. 이즈음에 아씨들의 로망이 옥색 고무신이다. 지푸라기에 양잿물 비누를 묻혀서 싹싹 문질러 닦으면 옥색처럼 빛이 났었다. 흰색이었다. 이 시대 서정을 얽은 노래가 고무신 노래의 원조 격이다. ‘수줍은 분홍댕기 옥색 고무신/ 사뿐히 딛는 걸음 청초한 모습/ 달 밝은 보름밤에 꽃 내음 따라/ 살랑대는 치맛바람 나들이 가네/ 수줍은 분홍댕기 옥색 고무신.’이 보다 앞선 고무신이 검정 고무신이다.

1975년에는 한대수가 <고무신> 노래를 불렀다. 바다 어부인 아버지가 명태잡이에서 돌아오면 그 명태를 팔아서 고무신을 산다는 곡조. 그 고무신을 신고 사랑하는 촌색시를 만나러 간다는 시대 서사 곡이었다. 1990년대까지 뒤이어진 고무신 노래는 둘다섯의 <얼룩 고무신>, 오애란의 <검정 고무신>, 이미영의 <노랑 고무신>, 주병선의 <검정 고무신>, 김국환의 <검정 고무신>으로 이어져 왔다. 김국환의 노래는 할배 할매들로부터 아버지 엄니로 이어져 온 고무신에 얽힌 서사다. 우리 민족 삶의 줄기에 매달렸던 일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렸을 적에/ 신으셨던 추억의 검정 고무신/ 엄마 아빠도 어릴 적 신던/ 헐렁하고 못생긴 검정 고무신’노랫말 이야기가 꿈갔다.

우리나라 고무산업이 시작된 시기는 1919년, 부산 대륙고무주식회사가 시초다. 고무로 만든 구두모양 신발을 신은 시기는 1921년, 최초로 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대한제국 마지막 임금(조선 27대 왕,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 임금(1874~1926)이었다. 고무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처음 유입된 물품 중 하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용하던 신발은 짚신(짚세기)이었다. 이 시기 대세는 검정 고무신이었다. 이는 해방광복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1960~1970년대로 이어진다. 이 검정 고무신 상표들은 대부분 부산에서 생산되었으며, 국제화학·태화고무·삼화고무·동양고무 등은 한국 신발산업의 선봉이었다. 1950~1960년대 대표적인 고무신 상표는 경성고무 만월표·국제화학 왕자표·태화고무 말표·삼화고무 범표·동양고무 기차표·진양고무 진양·보생 등이 있었다. 이런 고무공장과 관련한 서글픈 역사의 면면도 유행가 속에 아롱져 있다.

1960년 3월 2일 아침 주야간 작업조가 교대하던 시간,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있던 국제화학공업사 제2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었다. 60여 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 신입직원이(1935년생, 당시 26세)이 작업대 위에 있던 성냥을 장난삼아 켠 순간 옆에 있던 동료 직원이 제지하자 놀란 나머지 연료통에 던져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 화재로 600여 평의 건물이 불에 타서 1억 환(약 10억 원)의 재산피해도 발생했다. 이 사연을 얽은 유행가가 남인수의 목청으로 세상에 나온 <한 많은 내 청춘>이다. ‘열여덟 꽃봉오리 열아홉 꽃봉오리/ 눈물의 부산 처녀 고무공장 큰애기야/ 하로에 사백환에 고달픈 품 삵으로/ 행복하겐 못 살아도 부모 공양 극진 터니/ 한 많은 네 청춘이 불꽃 속에 지단 말이냐.’이 공장 직원들은 17~8세 전후 여직원들이었다. 하루 24시간을 3~4조로 나뉘어 일한 그들의 하루 일당은 400환 내외였다. 1960년 당시 80㎏ 쌀 1가마는 3만 환, 자장면 한 그릇은 150환, 맥주 1병에 400환, 4식구 하루 보리밥 끼니 식대가 400환 정도였다.

<검정 고무신> 노랫말을 지은 김병걸은 의성에서 출생하여 안동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낙동강 변 부자집 9형제 중 일곱째. 대구예술대에서 방송연예 전공 후 월간 문학세계를 통하여 시인으로 등단했었다. 그의 노랫말을 스승은 <마포종점>을 작사한 삼포 정두수(1937~2016. 하동 출생 본명 정두채)다. 그는 2천여 곡의 대중가요를 만들었다. <안동역에서>(원곡, 안동시청 분수대 앞에서)로 전통가요대상 작사 부문 대상도 수상했다. 가요·찬불가·동요·지방자치단체 헌정가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는 <다함께 차차차>·<찬찬찬>·<서울아 평양아>·<삼각관계>·<사나이 눈물> 등의 노랫말도 지었다. <검정 고무신> 원곡 가수 한동엽(거제 출생, 본명 한천도)은 1980년대 그룹 블랙이글스의 보컬 출신으로 <휴전선아 말해다오>로 솔로로 데뷔하였다.

한국 근현대 100년사에 얽힌 유행가 중에서 고무산업과 고무신만큼 역사를 아물고 있는 노래도 드물다. 순종 임금이 고무신을 처음 신은 1921년은 우리 대중가요 100년의 시초 곡이라고 할 수 있는, <희망가>(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를 민초들이 본격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때다. 그래서 2021년을 한국대중가요 100년의 해라고 하는 것이다. 아~ 꿈에서 깨어보니 아무도 없구나, 가슴만 휭휭. 검정 고무신 우리 어머니~.

유차영 대중가요 평론가·한국유행가연구원 원장